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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Nov 10. 2021

기숙사와 룸메이트

내가 기숙사에 살기 전까지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단체생활을 잘 하는 것을 넘어서서 좋아하기까지 하리라고는 스스로도 생각치 못했었다. 


하지만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기숙사 생활이 꽤, 아니 무척 재미있었다. 규칙적인 생활도 그렇고 학교와 가까운 것도 그렇고 다양한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도 그렇고 말이다.


한 방을 6명이 함께 썼고, 2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나의 룸메이트는 총 10명이나 되었을텐데 사실 기억에 강하게 남는 룸메이는 딱 셋 뿐이다. 생각해보니 다른 룸메이트들은 모두 평범해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먼저 기억에 남는 J. 

이 친구가 기억에 남는 건 '외모' 때문이다. 아니 외모라기 보다는 '머리카락'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보통의 여학생들이 날마다 머리를 감는 것에 비해 이 친구는 2-3일에 한 번씩 머리를 감곤 했는데, 머리를 어찌나 야무지게 올백으로 빗어 올려서 묶는지 정말 파리가 앉으면 '좌르르르' 미끄러질 것만 같은 머리를 자랑했다. 


특히나 머리감은 첫 날에 비해 이틀 삼일째 갈수록 그 윤기와 광택은 더해졌으며 눈꼬리는 날이갈수록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 한 번씩은 머리에 기름기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머리를 감으라고 말을 해주고 싶은 적도 있었으나, 그런 말을 해줄 만큼 관계성이 깊지 않아 차마 말을 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S. 

이 아이는 1년 후배였는데 하얀 피부에 노랗고 곱슬거리는 머리를 가진 아이였다. 목소리도 걸걸하고 웃음소리도 커서 S와 얘길 나누다보면 마치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처음엔 무척이나 얌전하고 조용하던 S가 하루 이틀이 지나고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바로 '트로트 흥얼거리기'였다. 


그동안 그 많은 노래들을 어떻게 마음속에만 담고 있었는가 궁금해지도록 만들 정도로 눈을 뜨는 순간부터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은 야자를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와서 잠들기 바로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아빠가 [전국 노래자랑]을 빼놓지 않고 보셨기에, 나 또한 덩달아서 출연자들의 노래에 아빠와 함께 점수를 매겨가면서 보곤 했었는데 나를 능가하는 [전국 노래자랑] 팬이 바로 S였다.


 S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했고 그녀의 아버지 또한 노래를 엄청 좋아하셔서 집에 노래방 기계까지 아예 들여놓았다고 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부르는 트로트엔 내가 흉내내지 못하는 구수함과 맛깔스러움 같은 것이 늘 배어나오곤 했다.


 노래를 싫어하는 친구들이었다면 아마 S의 흥얼거림이 싫었겠지만 나는 때로 그녀의 노래에 덩달아서 흥을 맞춰주기도 했고 같이 불러보기도 했던 것 같다.


졸업하고 대학을 다닐 때였다. 언젠가 집에 내려가서 쉬다가 그날이 또 [전국 노래자랑]하는 날이라 점심을 먹으며 아빠와 함께 출연자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있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아가씨가 나와서 구성지게 트로트 가락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 귀에 확 다가왔다. 


'어? 어? 저건?' 하는 순간, 아래에 자막으로 뜨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주소가, 나의 룸메이트였던 그녀  S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아는 사람이 TV에 나오니 어찌나 반갑던지. 같이 TV를 보던 아빠께 후배가 나왔다며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할 일도 아닌데 자랑까지 해가면서 그녀의 노래 실력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왕 나왔으니 좋은 상이라도 탔으면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인기상을 타고 들어갔다. '그렇게 노래를 즐기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더니 저렇게라도 푸는구나' 생각하니 재밌기도 하고 또한 삶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대견해보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건 K 이다. 

작은 키에 새까맣고 숱 많은 단발머리의 그녀. 그녀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룸메이트였다. 


당시 기숙사 방엔 2층 침대가 3대 놓여있었는데, 나는 2층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2층에서  나와 머리를 맞대고 눕는 룸메이트였다. 그녀의 작고 여린 체구에서 어쩌면 그렇게 큰 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같은 방을 쓰기 전까진 몰랐었다. 


그리고 내가 한 번 잠이 들면 통잠을 자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잘 잤는데, 어느 날은 도서실에서 늦게까지 있다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복도에서부터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설마설마 했는데, 우리 방문을 열어보니 바로 그녀. K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신경을 쓰지 않고 잠을 자보려 했으나, 코를 골 뿐만 아니라 이도 갈았다. 대략난감이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던 아이들도 일어나서는 잠을 못자고 있는 나를 보더니 역시나 잠을 못 이루고 있던 누군가가 불을 켰다. 불을 켜도 K는 여전히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이까지 갈아대며.


잠자던 친구들이 모두 깨어 내 침대로 올라와서 잠자는 K의 모습을 구경(?)했다. 어떻게 이렇게 큰 코골이 소리를 내며 게다가 이까지 갈 수 있나 신기한 마음과 잠 못들어 짜증나는 마음 모두 반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장난기로 번져서 누군가가 수건을 집어두었던 빨래집게를 코에 집어 두고 살펴보았다.


잠깐동안 숨쉬기가 힘든 듯, "헉!" 하더니 다시 연이어서 코를 골아대는 모습에 모두들 까르르 하고 웃고 말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코를 골고 자는 그녀에게 두손두발 다 들고 귀를 틀어막고 잠들기를 청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시험기간 중인 어느 날이었다. 10시까지의 야자를 마치고 씻고 다시 기숙사 도서실로 내려가서 공부를 하러 내려가려는데,K는 먼저 잠을 자고 나서 공부를 하겠다면서, 우리가 공부하고 올라와서 자기를 좀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래. 그럴게.'하고 몇몇은 도서실로 내려가서 공부를 하다가 방으로 올라왔다.


방에 들어온 우리는 자고 있는 그녀를 깨웠다.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와 좀 더 친한 다른 친구가 몸을 주무르고 얼굴을 꼬집어서 깨우자 겨우 몸을 일으켜 눈을 감은 채로 이층 침대에서 아래로 내려와 방바닥에 앉았다.


얼른 세수하고 공부하러 가라는 우리의 말에도 여전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그녀. 그녀에게 '공부하러 간다고 깨워주라면서?' 하고 말했더니, '아니야. 사실은 그게 아니고~'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막 해댄다. 


잠꼬대가 분명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던지니, 잠을 자는 채로 계속해서 대답을 하는 그녀. 재미를 붙인 우리들은 돌아가면서 질문을 해댔고 ,  마지막에 이르러선 그녀가 누굴 짝사랑하고 있는지까지 알아내기에 이르렀다. 


마지막 대답까지 마친 그녀는 장렬히 전사하는 군인이라도 되는 양, 바닥에 그대로 누워서 잠들었다. 그리곤 아침에 일어나서 왜 자신을 깨우지 않았냐며 도리어 우리에게 화를 냈다. ㅡ,ㅡ


여럿이 함께 생활해서 불편한 점도 꽤 많았을테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추억들을 꺼내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더 많다. 


분명 취침 점호를 마쳤는데도 계속 이야기 소리며 웃음 소리가 나서 이상하게 느낀 사감 선생님이 복도를 몇 번이나 돌아다녀도 불은 다 꺼져있어서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여기던 차에, 기숙사 밖으로 나가서 보았더니 바깥쪽 창문들은 모두 불이 밝혀져 있는 것을 보고 황당해 하셨던 사건.


복도에서 선생님이 보시지 못하도록 복도쪽 창문에 검정 비닐을 대고 테이프로 바르고, 문 아랫쪽은 신발이며 수건 따위로 빛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두었던 것을 선생님들은 한참동안이나 알지 못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또, 깊은 밤. 기숙사 식당에 몰래 들어가서 전을 부쳐 먹다가 들킨 간 큰 선배들. (그 선배들은 다음날 아침 운동장을 몇 십 바퀴 도는 벌을 받았다.)


이른 아침 안개 자욱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장을 돌았던 아침 운동, 그리고 어느 겨울엔가 물이 나오지 않아 차가운 물로 머리감고 세수하면서 덜덜 떨었던 기억들.


모두가 다 도화지에 예쁘게 그려넣어둔 예쁜 그림들마냥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제는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때 그시절. 함께 보냈던 친구며, 후배며, 선배들은. 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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