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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Jan 11. 2023

먹는게 뭐라고

단순한 여자


문제는 팔이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펄꿈치가 석회화 되어있고, 팔꿈치 주변 근육들이 닳아져(?) 팔을 쓸 때마다 아픈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어떻게 주부가 팔을 안 쓸 수가 있나.


식사준비부터 시작해서 빨래며 설거지, 분리수거, 기타 등등. 물론 우리 바지런한 둘째씨가 많은 것을 도와주긴 하지만 그래도 내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팔을 안 쓰면 빳빳하고 당기는 느낌만 있지 가만히 있어도 아픈 증상은 없는데, 이런저런 일을 조금만 하면 다시 팔꿈치 주변이 찌릿하게 아파와서 신경을 자극한다.


그러다보면 괜히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짜증이 올라오기도 한다.

(아, 아픈 사람들이 왜 그토록 날카로워지는지 이제야 새삼스레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어제 아침도 그런 날이었다.


그젯밤에 아이들이 컵라면을 먹고 국물도 버리지 않은 채로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라면 국물이며 김칫국물이 식탁이며 싱크대 위에 엉망이었다. 


게다가 귤껍질이며, 온 거실에 굴러다니는 과자 봉지까지.


아침에 눈을 떠서 거실로 나왔는데, 그런 장면을 맞닥뜨린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짜증의 가장 큰 원인은, '왜 이렇게 지저분한 집을 내가 항상 치워야 하지?' 하는 생각때문이었을 것이다.


(컨디션이 좋을 땐 아무렇지 않게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하던 일도,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왜 이걸 내가 하고 있는 거냐며 스스로 태클을 걸게 된다. 그러다보면 마음은 더 무거워지고 스트레스 지수는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르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바닥을 치게 되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거실에 보이는 큰 쓰레기들이며 옷가지들을 먼저 정리하고, (도저히 가고싶지 않은) 주방으로 가서 고무장갑을 꼈다.


고무장갑을 끼고, 컵라면의 국물을 따르고 용기를 씻고, 개수대 안에 놓인 그릇들을 한번씩 헹궤 식세기에 넣는데 또다시 오른쪽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


그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마음속에서 짜증이 솟아 올라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먹었으면 정리를 해둬야지. 이게 뭐야, 지저분하게!!!!"


나의 투덜거림을 듣고 내 뒤를 쓰ㅡ윽 지나가던 남편님이 말했다.


"그래도, 먹은 자리에 두지 않고 이렇게 갖다둔 게 어디야?"








순간.

내 표정은 돌처럼 굳어졌고, 목까지 차올랐지만 참고 있었던 속상함과 원망같은 감정들이 치솟았다.






"내가!내가, 왜 그러는데!!!....아프니깐 ㅍ그러지....잉...잉..잉...!"





아.

나의 가장 큰 단점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전에 눈물부터 쏟아져버려서 말을 잘 못한다는 것.


역시나 이날도 그랬다.


어지럽혀진 집을 보니 짜증이 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팔까지 아프니, 왜 나는 이렇게 아픈 팔로 혼자서 정리를 해야 하는가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도 나고 그렇다.. 라고 말을 해야지 말을. 왜 눈물만 바보같이 나오냔 말이다.


거실 책상에 앉아 열심히 게임을 하시던 우리 둘째님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왜 엄마를 울리고 그래요?"


그러게. 둘째씨야. 네가 거기 앉아서. 엄마가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동안 게임만 열심히 했구나. 음. (하지만 평소에 네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패스__!)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남편님이 얼른 비키라면서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나를 밀어내고 정리를 시작했다.


남편이 그릇을 하나 집어드는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고(하하하. 난 너무 단순한 뇨자), 말로 하면 될 것을 아이처럼 운게 민망해서 거실을 어슬렁거리며 정리할 건 없나 돌아다녔다.






주방정리를 마치고서도 마눌님의 상태가 걱정되었는지, 남편님이 내게 말했다.


"오늘, 드라이브나 갈까?"


"응.! 좋지! "


"그래! 그럼, 고창 가서 자기 좋아하는 장어 먹고 오자!"






자꾸만 승천하려는 광대뼈를 간신히 누르고, 아이들 점심 준비를 했다.


"친구들도 같이 갈까?"


"그럼 더 좋지! 근데 시간이 될까?"


이리하여, 2022년의 마지막날.


마음이 통하는 친구 부부와 눈이 쌓여있는 고창 선운사를 산책하고, 바삭바삭 맛있는 풍천 장어구이를 먹으며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햇살씨를 달래는 최고의 비법은, "맛있는 음식!"


아, 부끄럽지만, 참 단순하다 단순해.



P.S. 고창에 가면 꼭 드셔야 할 풍천장어.

최고의 맛집은 "맹구네"!


맹구네

전북 고창군 심원면 검당길 52 

https://naver.me/x35dyBaC

1시간 30분 대기가 기본이지만, 왜 이렇게 대기할 수밖에 없는지는, 먹어봐야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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