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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Jan 16. 2023

에어로빅이 뭐라고

팔꿈치 통증으로 골프를 치지 못하게 되면서 운동이 될 만한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에어로빅’이 떠올랐다. 언젠가 남편과 산책하던 중 도롯가에 있는 한 건물에서 나이트 불빛 같은 요란한 불빛과 큰 음악에 맞춰 수많은 여자들이 (마치 광신도처럼) 소리를 지르며 온몸을 흔들어대던 에어로빅이 말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흥이 있기에 한번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과연 몸치인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에어로빅”을 검색했더니 우리 동네에 두 군데가 떴다. 그중 한 군데에 전화해서 에어로빅 하는 걸 먼저 봐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프로그램 시간표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알아보고 나서도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며칠 전, 드디어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침 10시 타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을 혼자 가게 되니 괜히 긴장되고 뻘쭘해서 ‘그냥 가지 말고 홈트나 할까?’ 생각하다, 기다리실 강사님을 생각하니 그건 또 아니다 싶어 서둘러 갔다.


에어로빅 강습소는 목욕탕이 있는 건물의 4층이었다. 꽤 오래된 건물인데, 이런 곳에 에어로빅 강습소가 있는 게 신기하면서도 괜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린 순간. 나는 잘못 내린 줄 알았다. 에어로빅 강습소라기보다는 그냥 목욕탕같았다. 입구에 신발을 벗자마자 쿵쿵쿵 하는 큰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데, 앞쪽에 보이는 건 목욕탕에서 쓰는 사물함과 평상. 그리고 목욕 바구니들이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나는 누구인가. 여긴 또 어디란 말인가. 난 분명 에어로빅을 하러 왔는데… ’


조심스레 들어가서 살펴보니 왼쪽 공간에서 열심히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평상에 조심스레 엉덩이 끝만 걸쳐놓고 앉아 춤을 추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한 곡의 음악이 끝나자, 강사님이 밖으로 오셔서 50분 강습이니 다 끝나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셨다. 약속이 있어서 그렇게 오래는 못 있고, 보다가 가고 난 후 연락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평상에서 아주머니들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봤다.


연령대는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했는데, 가장 놀라운 게 강사님 바로 앞에 서서 열심히 움직이시(지만 팔만 열심히 움직이시)는 80대로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 연세에 뭔가 배움의 길에 서 계신다는 점이, 비록 잘하지 못할지라도 땀 흘리며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도전이 되었다.


 ‘저 연세에도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나?’


게다가 60대로 보이는 두세 분도 음악에 맞춰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어대시는 모습이 경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50대로 보이는 대여섯 분은 패기가 넘치는 동작으로 소리를 질러가며 강습실이 떠나갈 정도도 열심히, 그리고 매우 잘! 추었다. 아. 내가 여기에서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내가 가장 막내가 될 것 같은데 이 열정 가득한 언니들 틈에서 내가 춤을 출 수 있을까? 혼자 상념에 젖어있는데, 새까만 에어로빅 의상을 입고(배가 다 드러난 꽉 끼는 의상) 까만 마스크를 쓰고, 머리도 새까맣게 염색한 50대 아주머니(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60대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께서 들어오셨다. 들어오시자마자 외투를 벗고 나를 보더니 미소를 날리셨다.(헐리웃 배우들이 웃듯 그렇게 시원하게 웃으시며 눈웃음까지 날리심)


처음 왔어?


아. 네-에.


자, 옷 벗어


아-니-요-오-.
 저. 오늘은 그냥 구경만-


처음 봤는데, 반말도 반말이려니와 다짜고짜 옷을 벗으라고 하니 당황스러워 쩔쩔맸다.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내 오른쪽 팔에서 옷을 빼셨다. 허허. 이건 무슨 상황이지?



제가요-오.
몸치라서요-오.



내 말에도 이분은 계속 웃으시며 내 외투를 벗기시더니, 손을 잡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셨다.


아니요-오!



괜찮아. 그냥. 움직여 봐!


춤을 추던 회원들이 거울을 통해 나를 살폈다. 나는 맨 끝줄 가운데에 서서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 어쩔. 이대로 다시 나가면 데려오신 분이 민망하실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둘째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 교회에서 유치부에 넣어놓고 밖에서 몰래 살펴봤는데 모든 아이들이 율동을 신나게 하는데 이 녀석은 혼자 가만히 차렷 자세로 서 있었던 게 떠올랐다. 남편과 나는 둘째가 다른 아이들처럼 율동을 따라 하지 않고 왜 저렇게 서 있을까 걱정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둘째도 딱. 지금 나와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다. 잘 모르는데 따라 하자니 틀릴 것 같고, 그러면 웃음거리가 될까 봐 두렵고, 그래서 눈으로 동작을 살피며 어느 정도 따라 할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 기다렸던 게 아니었을까?


한참을 지켜보던 나도 뭐라도 따라 해봐야겠단 생각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과 음악과 팔다리가 따로 놀았다. 보기엔 쉬워 보이는 동작도 머리로는 움직이는데 몸이 따라오질 않았다.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천사가 찾아왔샤바! 샤바 샤바!”
 “나 이제 알! 아! 혼자된 기분을!


그러자 갑자기 옆에 계시던 분이 내 손을 잡아 이끌고 맨 앞으로 갔다. 아니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으면서 어정쩡하게 끌려 나가니 모두 한 줄로 줄을 맞춰 엉덩이를 두드리며 “샤바샤바~샤바샤바~”를 했다. 엉덩이를 두드리는 시간이 끝나고도 어리바리 서 있으니 다시 나를 끌고 맨 뒤 내 자리로 나를 갖다(!) 놓으셨다.


뭔가 신이 나긴 한데, 즐기고 싶은데 몸이 따라줘야 말이지. 거울을 통해 나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누가 80대 할머니께서 발은 안 움직이고 손만 움직인다는 말을 했던가. 내 모습은 길가에 뻣뻣하게 서 있는 전봇대와 다름없었다. 나야말로 팔만 움직이고, 다리도 움직이는 시늉을 하긴 하지만 80대 할머니보다 덜 움직이고 있었다.(음냐.) 아니, 마음은 이렇게 신나서 얼른 하고 싶은데 왜 안 되느냔 말이다. 결국. 30분 만에 몸에 땀이 나고, 더는 따라 할 엄두가 나지 않은 나는 또 한 곡이 끝났을 때 엄청 바쁜 사람처럼 조심히 나왔다.


나오고 있는데 뒤에서 “어디가?” 하고 물었다. (앗 깜짝이야!) 괜히 도둑놈처럼 뜨끔해졌다. 내 옷을 벗겼던(?!) 그분이었다.


아, 네-. 제가 일이 있어서요.


저기 언니들이, 자기가 내 딸이냐고 물어본다?


(아니, 이분이 50대로 보이는데 내가 딸이면 곤란한데? 그럼 이분이 6,70대란 말인가???)



하하하. 네.


내일도 올 거지? 해봐. 재밌어.



네. 헤헤헤-.



이렇게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황급히 집으로 왔다. 집으로 와서 가만히 생각한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뻣뻣하게 나무토막처럼 서 있던 나와, 처음 보는 내게 다정하게 말 걸어준 나이를 알 수 없는 언니(?)와, 그리고 목욕탕 탈의실 느낌의 에어로빅 강습소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을 다니긴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집에서 몸을 먼저 좀 풀어본 후에, 다른 곳을 알아보는 걸로!     


며칠 후, 절친한 Y를 만났다. 내가 에어로빅을 배우고 싶어 강습소를 찾았던 경험을 들려주니 Y가 씩 웃으며 말했다. 굳이 돈 내고 거기서 배우지 말고, 구청에서 주관해서 시민 공원같은데서 하는 에어로빅을 해보라고. 그러면서 Y가 에어로빅을 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월. 수. 금. 집 앞 공원에서 하는 에어로빅을 가기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데려갔더니 그 딸아이가 뭐라고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 열심히 운동을 했더란다. 때때로 강사가 잘하는 사람을 불러서 시키기도 하고 그러는데, 어느 날 “거기! 멀리 올린 여자분 나와보세요!”라고 하며 Y를 지목했단다. 들으면서 나는 놀라웠다.


왐마! 잘했나 보네!


내 말이!



씩 웃으며 Y는 말을 이었다. 강사가 Y를 불러내서는, 에어로빅을 잘하니 대회에 나가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대박! 놀라웠다. Y도 강사의 말을 듣고 놀라서, “저는요. 잘 하지도 못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 주목받는 건 더 못해요. 죄송해요.” 하지만 끈질긴 강사의 제안에 결국 수락했단다. 브라보! 하지만, 에어로빅 의상을 구입한 Y는 끝내 에어로빅 대회를 포기하고 말았단다.


아니 왜?


그게 말야.
꽉 끼는 옷도 부담스러운데
짧은 핫팬츠 같은 옷이었어.
아무리 봐도 그 옷을 입을 수 없어서
정말 죄송한데 대회 나갈 수 없겠다고
 말씀드리고 말았지 뭐.


아쉬웠다. 그래도 Y가 대회에 나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Y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데, 앞에 앉은 남자샘이 말을 걸어오더란다.



저기, 선생님!


네!?


에어로빅, 하시죠?


놀란 Y는 당황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단다. 근데 옆에 계시던 교장 샘이 물으셨단다.



뭐라고? Y선생님이 에어로빅을 해?



네에!


그래, 어쩌든가? 잘 하든가?


네. 엄청 잘하세요.
학교에서랑은
딴판이에요.


순간 주변 사람들은 빵 터졌다고.


Y와 같이 근무하던 시절, 함께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다. ‘보랏빛 향기’를 부르며 음악에 맞춰몸을 흔드는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고 여겼는데, 역시나! 춤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 Y가 에어로빅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그녀의 새로운 도전을 봤더라면 나 또한 용기 내어 에어로빅 강습소에서 망설이지 않고 등록을 했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그나저나 구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우리 동네 야외 에어로빅은 5월부터나 할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집에서 아이들의 야유를 받으며 너튜브를 보며 에어로빅을 해야 할 것 같다. 올해는 좀 더 부드러운 몸이 되길.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길. 그래서 올해가 끝날 즈음엔 전봇대보다는 부드러운 갈대 정도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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