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늘 명절날 아침에 그러하듯이 고향들 찾아가는 이야기로 부산을 찾아간 세 연예인들이 나온다.
배경음악에 조용필의 꽃피는 동백섬이 흐른다. 동백섬 근처인가 보다.
내가 무심코 한마디 던진다. '저 노래는 예전에 듣던 것보다 요즘 들으니 더 좋네'.
저 노래가 한참 히트할 때당시 어렸던 내겐 그렇고 그런 뽕짝으로 들렸었다.
노래를 들으시던 어머니가 우리 애들에게 옛날이야기를해주신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너희 엄마 놀리려 꼭 밥상 앞에서 밥 먹을 때 조용필 노래 못한다고 놀리기 시작하셨다고…그러면 분이 나서 항변하다가 결국 눈물 뚝뚝 흘리며 숟가락 놓고 나갔다는 이야기.
그게 재밌었던지 아버지는 밥 먹을 때 조용필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슬슬 시작하셨다. 그때 우리가 저녁을 먹던 그 시간대에 조용필을 안보기도 어려웠다. 거의 모든 쇼프로에 다 나오다시피 했었고 채널이 한두 개가 다였든 시절이었으니까.
그저 곱디고운 미성으로 노래하는 게 최고의 가수였던 시절에 조용필은 마치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 내는 듯한 소리로 노래를 했다. 아버지는 저렇게 노래하다간 얼마 못 살 거라고도 하셨다. 조용필 씨, 지금 잘 살고 계신 걸로 안다.
그 이야기에 아이들이 크게 웃는다. 그랬다. 내가 중학교 학생이었을 때조용필을 정말 좋아했다. 조용필의 첫 소절이 시작되면 꺄악~하던 팬들의 외침 소리가 첫오빠 부대의등장이었다. 시골에 살아서 콘서트나 방송 현장을 가 본 적 없어소리를 지른 적은 없지만 조용필의 노래를 무던히도 많이 들었다. 어렸는데 어찌 그리 한이 서린듯한 탁성을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창 밖의 여자>, <돌아오지 않는 강> 등등의 노래들을 들었을 거다. 오히려 그때 신곡이던 <창밖의 여자>보다는 무명가수 시절 미 8군 무대에서 불렀다던 노래들을좋아했었다. 그 노래들 중 쏭바강이었나.. 하는 무슨 강을 노래한 것도 있었는데 이제 기억이 희미해진다. 그 노래들은 인터넷에서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
어느 새벽엔 왜 그 이른 시간에 외딴 친구 집을 가게 되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제 막 날이 푸르스름하게 밝기 시작하던 여명의 시간에 어디선가 들려오던 조용필의 <한오백년>에얼어붙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와 같이 조용필이라는 인간에도 푹 빠져들었다. 그렇게 사람의 혼을 사로잡는 노래와 가수가 인생 한 두 번은 있는 것 같다.
일기장에 그의 사진을 오려서 붙여놓고 또 그가 결혼한다 했을 때는결혼한다던 여자분 사진까지도 같이 일기장에 붙일 만큼 관대하고 아량 넓은 진정한 팬이었다.
그 후 참으로 많은 노래들을 들었고 좋아했지만 그렇게 가수까지 같이 좋아한 적은 거의 없었다. 지금도 나는 조용필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깊이 있게 살아가는 그의 인생 여정이더욱 존경스럽다.
언젠가 바운스라는 노래로 환호받았을 때 나는 좀 실망스러웠다. 노장이 현대의 감각을 받아들이고 세대를 아우르는노래를 한다는 의미로 그에게 환호를 보냈었던 것 같은데 조용필은 감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용필에겐 그만이 가지고 있는 노래의 원형이 있다. 옛적 것을 고수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용필의 노래에서 나오는 원형적 소울이 있어 그것은 세월도 시간도 타지 않는 어떤 것이기에, 굳이 그런 시도를 해야 하나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노래에서 내가 좋아하는 조용필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씁쓸했다.
나는 지금도 조용필이 부르는 <돌아오지 않는 강>이나 <쏭바강>이런 노래가 듣고 싶다.
나이 든 그의 음성으로 부르는....
최근 나는 한 가수에 푹 빠져있다. 이미 말한 대로 좋아한 노래는 많았지만 가수가 좋아서 그 가수가 부르는 모든 노래를 다 좋아해 보기는 조용필 이후 처음이다. 소위 말하면 팬질이요 덕질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 가수가 이승윤이다. 싱어게인이라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다.
음악은 좋아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거의 안 본다. 오디션프로그램이 너무 많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심사위원 말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누가 누구를 평가하는 거 자체가 보기 불편했다. 싱어게인은 그런 면에서는 좀 덜했지만 숫자로 가수를 지칭하는 것은 아주 맘에 들지 않았다. 하다 하다 별짓을 다하는구나 하는 지극히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다.
우연히 인터넷 포털에 걸린 그 30호 가수가 노래하는 영상을 보고 그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듀엣으로 하는 <연극 속에서>를 듣고서는 정말 빠져들었다. 그 곡의 분위기도 너무 남달랐고 딱 노래가 되어서 움직이는 그의 몸짓이나 소리가 정말 멋졌다. 통기타 두대로 만들어 내는 사운드도 아주 세련되었었다. 논란의 3회전 '치리 치리 뱅뱅'은 전율이었다. 이런 노래를 좋아할 리가 없는 나이고 평소 댄스음악 같은 것은 당연히 듣지 않는다. 그런데 이승윤의 치리 치리 뱅뱅은 뭐라고 말을 못 하겠는데 사람을 홀렸다. 홀린다는 표현이 딱 정확한 것 같다. 그리고 이상한 그의 몸동작은 (춤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그냥 노래의 한 부분 같았다.
오우… 나는 그 3라운드 이후 이승윤의 팬이 되었다. 그 이후의 다양한 노래들도 그의 배짱, 용기, 음악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자작곡들이 의외로 많았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경연용 무대가 아닌 평소 그가 사유하고 불렀던, 읊조렸던, 또는 친구들과 방방 뜨며 불러대는 노래들 속에서 읽히는 인간 이승윤은 이상하게 마음속 깊은 지점 한 코드를 건드렸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우리가 거쳐온 불확실함과 슬픈 배회의 삶, 그 가장 내밀한 지점을 건드리며 아픈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내 지나간 젊음을 조우하는 느낌.
그중 <사형선고>라는 노래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가요가 가지는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 또한 막연한 감상적인 회한보다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간 속의 슬픔과 고민들을 상투적이지 않은 일상의 언어로 그러나 아름다운 은유로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적으로도 그 사운드나 화음들이 매우 독특하고 세련되면서 멋졌다.
- 난 사형선고를 당했지,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렇게 시작되는 나직한 그 읊조림은 지나간 20대를 떠올리게 했다. 숱하게 내리고 당했던 사형선고들.
- 고요를 깨지 않는 것보다 적절한 말을 몰라 그냥 입술을 뜯고만 있었던 거죠 그땐 /
시적 허용 속에서 부유하는 꿈들은 고요해 /
시적 허영 속에서만 살고 있는 마음은 불안해요/
어수선한 밤거리엔 가야 한다고 새겼던 주소들이 없어요 - -이승윤 <시적 허용>-
이승윤 노래 중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노래다. 듣고 있으면 어느 먼먼 인생의 페이지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가야 한다고 새겼던 주소들… 어수선한 밤거리…> 이런 표현들이 마음에 스며들어온다.
생각을 정돈하려다 맘을 어지렵혔나봐 / 대충 이불로 덮어놓고 방문을 닫았어 /
선반에 숨겨놓았던 후회를 하나 둘 꺼내서 읽으려다 그냥 말았어 거의 다 외웠으니까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 걸 / 왜 내가 바라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 그럼 난 무얼 훔치지.
텅 빈 하루를 채우다 잠은 가루가 됐나 봐 쓸어안아 누워 있다가 그냥 불어 버렸어
옷장에 숨겨 놓았던 꿈들을 몇 벌 꺼내서 입으려다 그냥 말았어 어울리지 않잖아. - 이승윤 <무얼 훔치지> -
이 노래를 유희열의 스케치에 나와서 부를 땐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불안과 상실의 청춘, 그 한가운데의 시간들을 사는 슬픔이 느껴지며, 깊숙이 켜켜이 가라앉아 있던 오래전 그 감정들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요즘 싱어게인 오디션 2가 진행 중이다.
기가 질릴 정도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필사적으로 노래를 할까. 왜 노래는 끊임없이 나올까.
이렇게 많은 노래들이 나왔는데 더 나올 노래들이 있을까?
지금 싱어게인 2에 나오는 가수들이 어쩌면 이승윤보다 다들 더 노래를 잘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그들이 노래를 참 잘 부른다면, 이승윤은 노래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 차이가 내게는 이승윤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인간의 삶은 이야기다. 다들 자기만의 이야기를 살고 있다. 또는 과거의 이야기 중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모델 삼아 살아가기도 한다.
인간의 삶이 끝없이 이어지기에 이야기도 끝이 없고 노래도 끝이 없다.
이승윤 노래는 대체적으로 그래도 따뜻하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멀리 아스라이 있는 아름다운 별을 바라보기보다는, 허리 굽혀 내 손에 닿는 흙 한 줌을 더 사랑하고 느끼겠다고 한다. 자신의 책상 위 액자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겠다고 한다. 요즘을 사는 청년이 이렇게 노래했다는 것이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