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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Mar 09. 2022

3월의 바람이 부는 어떤 날

시골사람의 서울 단상

빨래방에 앉아서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이건 젊은이들이 드라마에서나 하는 일 아닌가.

따로 살던 아들, 딸이 한 집으로 이사를 해서 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서울엘 왔다.

서울은 그냥 숨만 쉬어도 돈이 드는 곳 같다. 무시무시한 집 값과 숨 쉴 곳 하나 없는 빽빽한 공간들…

쓰레기는 어찌 버리나, 차는 어찌 주차하나, 장은 어디서 보나….

시골사람에게는 모든 게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투룸에 장착된 세탁기로 이불 빨래를 할 수가 없어서 검색해 빨래방을 찾아왔다.

어떻게 사용하나를 연구하는데 한 30여분이 걸렸다. 어쨌거나 돌아가긴 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하고는 있는데, 내가 쓰던 세제가 아닌 장착된 세제가 들어가는 것도 마뜩잖고 그 세탁통들은 과연 깨끗한지 그것도 모르겠고 깊이 생각하자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요즘은 이 빨래방이 거의 카페 같은 분위기로 세팅되어서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걸로 아는데 웃기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간 사람들 옷에서 모두 같은 향기가 나겠구나…

이사를 하면 자잘한 생활도구들이 많이 필요해서 끝도 없이 뭔가를 사게 된다.

수세미 걸 핀, 비누대, 칫솔대, 커튼봉 등등. 집의 구조나 사이즈가 달라지면서 쓰던 것들을 못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별로 아까워하지 마라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별 것들이 다 있는 다이소가 동네마다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애들이 새로 구한 집도 길만 건너면 다이소가 있다. 본 적은 없지만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싶은 아이템을 검색해보면 진짜 다 있다. 다이소에.

그냥 만만하게 살만한 가격에 많은 것들이 구비되어 있으니 쉽게 사고 버리기도 쉽다.

더구나 요즘은 당근 마켓이라는 중고물품 거래 앱이 있어 물품을 서로 나눠가며 잘 활용하는 것도 같지만 오히려 맘에 안 들면 그냥 당근에 내다 팔면 되지 하고 더 쉽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딜 가나 물건이 쌓여있다. 한 아이의 자취방 살림과 한 아이의 기숙사 살림에서 버릴 것이 많이도 나온다. 너무 많은 물건들과 포장들….

진지한 환경론자는 아니지만 정말 이대로 가도 지구는 괜찮나 싶은 걱정이 절로 올라온다. 우리만 살면 되나…. 정말 이다음 세대 애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나 싶어 마음이 무겁다.

시골 살며 도시에 대한 피해의식이 들 때가 많았다. 문화적으로 너무 소외된 느낌 때문에.

그래서 지금도 퇴직하면 서울에 와서 살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일반적인 추세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남들은 나이 들어 퇴직하면 귀농이다 뭐다 하면서 한적한 곳으로 찾아들어가는데 어려서부터 중년이 되도록 시골에 살다가 노년에 서울로 오겠다고 하는 것은 무슨 청개구리 심사인가. 그놈의 뭔지 모를 막연한 피해의식 때문이다. 정작 도시생활은 잘 모르면서 말이다.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것 같은 도시, 여기저기 많기도 한 공연과 전시회들, 그리고 tv에서 보는 모든 유명하거나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에 산다. 도대체 이 서울은 뭘까?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에 휩쓸려 걷거나 지하철을 탈 때면 나는 내가 참 하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에 빠지곤 한다.  하찮은 사람들이 지하철에 가득 앉아있거나 서있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선지 사람 귀함이 안 느껴진다. 대도시의 가장 기형적인 현상이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까지 어느 특정지역에 몰려 사는 것은 너무 기형적이지 않은가?

희한하게 서울에 오면 사람이 잡다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뭔가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잡다한 뉴스나 보게 되고 지하철에서도 계속 뉴스를 뒤적이게 된다. 시골에서라면 한나절이면 끝날 일을 하루 종일 걸려 한다. 이동시간들 때문에.

많은 시간이 이렇게 흩어지겠구나. 아무 말없이 지하철에 실려 옮겨지며 짧은 뉴스거리나 읽다가 내려서 집 찾아들어가 빠듯하게 살고 아침이면 또 후다닥 나와야 하는 생활들. 무슨 깊은 생각과 원대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서울에서 꽤 오래 지내다가 내가 사는 남도의 도시 역에 막 도착했을 때 역 광장을 나서며 소스라치게 놀라며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space. 빈 여백 같은 공간.

하늘도 푸른 빈 공간으로 가득 열려 있고 땅도 빈 공간으로 펼쳐져 있다. 거리도 빈 공간으로 길게 앞에 펼쳐져 있었다. 많은 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지 않다.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space가 가득한 것이다.

빈 공간이 가득 채워진 곳, 그것이 그렇게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시골 사람은 시골 사람이다.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나는 그 비어있는 공간 속에 놓여있지 않으면 숨을 못 쉬게 될 것 같다.

이러면서 서울살이를 감히 꿈꾼단 말인가.

아주아주 돈이 많지 않다면 비루해지기 십상인 것 같은 서울. 서울에 살지 않는 지방러가 어쩌다 서울 와서 느끼는 단상이다.


어제는 동네를 걸어 다녔다. 3월의 바람이 아주 아주 많이 불던 날이었다.

볕은 어쩔 수 없이 봄을 담고 있는데 바람은 거셌다. 환한 햇볕 속에 바람이 거세 몸을 못 가누게 하던 바람이 불던 날.

사전 투표도 할 겸 나가서 동네 골목골목을 걸었다. 언제 바뀌었는지 모르게 바뀐 가게, 바람에 떨어져서 나부끼는 창문 벽지들…

3월이면 왜 이렇게 뭔지 모르게 시작이라는 느낌이 올까. 살아야 할 것 같다. 어떻게든. 어디서든.

살자 살자 살아보자.

동네를 걷다가 어느 집 창틀에 화분 두 개 있는 것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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