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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Mar 19. 2022

세르방도니 거리

그곳을 꿈꾸며….

팬데믹으로 어디든 가기가 쉽지 않아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은 여행을 다니곤 했었는데  지금은 집에 박혀 사는 낙을 알아가고 있어 아주 은둔자마냥 여유자적하며 나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퇴근해서 들어오면 거의 나가질 않는다. 주말엔 특히 거실에 드는 햇볕을 따라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낙이다.

어제는 파리 시내를 걷는 이들의 글을 읽다가 문득 책을 멈추고 구글 지도를 열어 찾아봤다. 그 사람들이 걸었다는 거리를.

지도를 보니 괜히 마음이 설렌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세느강을 보며 그림으로 작게 표시되어 있는 에펠탑과 이러저러한 유명한 건물이나 지명을 훑어본다.

가느다랗고 푸른 센강을 손가락으로 따라가 본다. 마치 그 강변을 걷는 것처럼.

책을 보다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에 혹하면 나는 곧잘 그 여행지를 메모해둔다. 마치 언젠가 꼭 갈 것처럼.

예전에 언젠가 파리에 대해 써 놓은 것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페르라셰즈 묘지다.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니 사진까지 나오며 영업 종료라고 떠서 마치 그 앞에 가서 문이 닫혀 못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일 전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나무는 아직 앙상한데 그 사이로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다. 그 묘지에도 봄이 찾아오나 보다. 쇼팽의 묘지도 있고, 프루스트, 에디뜨 피아프,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도 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구글맵

저곳엘 가기 전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고 가야지 않을까? 세로줄로 쓰인 그 책을 대학생 때 읽기 시작했다가 끝을 못 보고 몇 년 전엔 또 새로이 사서 한 동안 책 표지가 너무 좋아서 세워놓고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저 묘지를 찾아가기 전 읽어봐야 할 텐데... 이러다 저 책을 안은 채로 내가 먼저 묘지로 들어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실실 웃는다. 좀처럼 끝을 못 보는 책들이 있다.

또 그곳에 가기 전에 오스카 와일드의 책도 좀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가 진짜 그렇게 냉소적으로 재치 있는 글들을 썼는지 한번 확인하고 나서 그가 썼다는 그 유명한 묘비명이 진짜 있는지 확인도 해보고 싶다.

쇼팽은 충분히 좋아하고 있으니 그냥 가도 되겠지. 그 묘지 앞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의 어떤 음악이 떠오를까? 하지도 않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면서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 해서 그 자리에서 chopin을 넣어 이름지을 정도로 쇼팽은 내 뇌리 속에 있는 인물이다.

에디뜨 피아프의 묘지 앞에 서면 그렇게도 신산스러웠던 그녀의 인생에 어떤 마음이 들까? 샹송의 고전처럼 되어가는 라비앙 로즈의 이상한 그녀의 바이브레이션을 좋아할 수 있을까?

뻬르라셰즈 묘지를 떠나 세느 강까지는 걸어서 얼마나 걸릴까? 강을 건너 생쉴피스 성당까진 얼마나 걸어야 할까? 생쉴피스 성당 앞 분수가 지금 혼잡하지 않다고 구글 지도에 뜬다. 음… 그렇담 성당을 어서 후딱 둘러보고 이 분수가에 앉아 있으면 좋겠구나.

지난달에 그곳을 방문했다는 사람이 올려놓은 사진엔 하늘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다. 그 시린 햇볕 속에 물이 튀기는 분수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분수에서 한동안 몸을 쉬었으면 드디어 그 동네 어떤 골목으로 찾아가 볼 심산이다.

세르방도니 거리.

지도를 보면 성당 앞 큰길을 넘어 작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 지도를 손가락으로 벌려 아주 키워야 그 거리 이름이 나온다.

이 골목이 얼마나 작은지 혹은 구불거리는지는 지도를 봐서는 잘 모르겠다. 단지 이 거리가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집이 있는 거리로 나왔다 해서 또 뒤마가 삼총사 중 한 사람의 집으로 설정했다 해서 그 작가들의 머릿속에 있었을 그 거리가 보고 싶어 찾아봤다.

지도 속에선 그저 단조로운 작은 선에 지나지 않는 그 거리를 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런던의 베이커가 221번지가 소설 셜록 홈즈 때문에 생겨났듯 파리의 소설가들이 자신의 소설속으로 불러들인 그 거리에서 장발장이나 삼총사혹은 누군가가 낡은 문을 열고 나올 것 같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파리 시내 어느 뒷골목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과거속의 소설가 화가들을 만나 보게 되듯이 말이다.

그 골목은 돌바닥으로 되어있을까? 삐거덕거리는 나무문을 자닌 건물들이 있을까? 밤이 되면 너무 으슥해져 돌아다니기 어려운 그런 길일까?

파리 여행기를 별로 본 적이 없어 상상은 내 멋대로 한 없이 이어진다.

왜 빅톨휘고는 이 거리에 장발장의 집을 마련해주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지도를 보며 재미있어진다. 손가락으로 파리를 주욱 잡아끌었다 놓아주고 작은 구석까지도 키워서 보고 손가락으로 끌어당겨 전체를 보기도 하면서 가지고 논다.

손가락과 눈이 파리에서 놀 때 우리나라 가장 남쪽 즈음에 있는 우리 집 거실 햇살은 점점 기울어 사라져 간다. 언젠간 갈 수 있을까? 그 작을지 클지 모르는, 구불거릴지 반듯할지 모르는 세르방도니 골목길에….

사라져버린 파리의 뒷골목 1860년쯤  샤를 마를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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