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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Jan 31. 2022

낡고 오랜 세계

누추하고 누추한 엄마 집에서의 떡국 한 그릇.

뒷동에 사시는 엄마 집에서 애들이랑 같이 떡국을 먹었다.

애들이 상경할 표를 못 구해 정작 구정 전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하루 당겨 할머니 집에서 떡국을 먹기로 했다.

올해 86세 어머니는 배앓이를 하시면서도 우리가 간다니 후딱 일어나서 기어이 떡국을 끓이신다.

반찬이랑 다 가져갈 테니 그대로 계시라 해도 그 사이 달걀지단이랑 곱게 부쳐 놓으셨다.

떡국을 끓여 내어놓을 탕 그릇 하며 숟가락 , 젓가락, 반찬 그릇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다.

엄마 집은 총천연색 골동품 세상이다. 고집도 어지간히 세서 새것을 사는 것도 질색하시고 갖다 주는 것도 싫어하신다.

살면 얼마나 살겠냐며 옛 적 살림살이 이끌고 살고 계신다. 얼마나 살겠느냐는 사이에 집은 낡디 낡아 내가 다 부끄럽다.

엄마 친구들 오시면 다 앞 동 사는 딸내미 흉보실 거라 해도 끄떡도 안 하신다. 젊어서부터 고집이 세고 기가 세서 아무도 꺽질 못한다.

지금은 늙어 힘이 빠지셨지만, 우리 가족에 오랜 세월 새겨진 질서상 아무도 어머니를 못 이긴다.

그냥 다 어머니 집에 오면 그러려니 하고 누런 벽지를 보고 낡아빠진 그릇에 밥을 먹고 덜렁거리는 싱크대에 그릇을 씻어 놓는다.

특히 한평생 같은 동네 사는 나는 이제 어머니 집 모든 물건이 그러려니 하고 보인다.

그런데 문득 오늘 떡국을 담다가 그릇들, 국자. 싱크대 서랍 등 모든 게 낯설게 보였다.

모든 비닐들은 뭐 하나 허투루 버린 것 없이 다 개켜져 서랍 사이사이 끼워져 있고, 얼기설기 매여놓은 그릇 수납대들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누덕누덕 한 집….

그나마 어머니가 서울 간 사이 몰래 바꾸어 놓은 tv도 이제는 그냥 큰 컴퓨터 화면처럼 보이고 거실 창 블라인드도 다 떨어져 간신히 걸쳐져 있다.

뒤꽁무니 길게 달려있던 금성테레비를 저 벽걸이 형으로 사놓은 게 벌써 십여 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 나이도 너무 많아 집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으시다. 그러니 몰래 뭘 해놓을 수도 없다. 돈 쓰는 것에 진짜 화를 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화내는 것이 세상 제일 무서웠기 때문에 어머니 싫다는 것은 어찌해볼 수가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은 타고 나는 팔자인가 싶다.

더 시골에서 더 가진 것 없는 시어머니는 자식들이 해주는 것을 뭐든 순순히 받으시는 분이라 집 상태도 훨씬 쾌적하고 아늑하다.

시시때때로 필요로 한 것을 교체해주거나 갖춰주기 때문이다.

반면 친정어머니는 당신 재산이 있는 편인데도 돈이 아까워서 당체 뭘 사지를 못하신다.

자식 돈은 당신 돈 보다 더 아까워서 벌벌 떠신다

또 어디서 뭔가를 주워들이는 것은 어찌나 잘하시는지. 멀쩡한 것을 잘도 버리는 요즘 것들 욕을 한껏 하시면서 이것저것 잘 집어다 놓으신다.

한동안은 엄마 집 가면 신경질이 올라와서, 화병이 올라와서 가기가 싫었다. 구질 구질한 것이 불러 일으키는 몸서리.

왜 가지고 있으면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가진 것 없이도 잘 누리는 사람이 있을까.

떡국을 먹고 손자들 이것저것 싸주고 싶어서 말만 떨어지면 몸을 일으키신다. 후딱 일어나지도 못하시면서.

반찬을 꺼내도 당신이 해야 하고, 음식을 싸도 당신이 싸셔야 하고, 포장을 해도 당신이 해야 하고, 당체 다른 사람은 손을 못 대게 하신다.

남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은 진짜 못한다고 생각하신다. 뭐든 당신이 해야 직성이 풀린다.

새것을 가져다줘도 쓰지 않고 어딘가 아껴놓고 늘 쓰던 수세미 그대로 쓰시고 주방세제 통은 하필 오늘 내가 설거지 할 때 툭 떨어진다.

에구구. 오늘은 왜 화가 안 나고 짜증이 안 나고 그냥 웃음이 나고 만다.

언젠가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에서 아들이 대학 때 입던 짝퉁 메이커 반팔 티를 몇십 년 지나 엄마가 입고 있는 모습을 보던 그 장면 같다. 엄마도 내가 처녀 때 입던 옷을 고쳐서 아직도 입고 계신다. 혹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첫 알바해서 사다 드린 조끼를 지금도 입으신다.

그러니까 삼십오륙 년쯤 된 옷을 입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엄마 습성을 지긋 지긋하게 싫어했는데 왠지 오늘은 피식 웃음이 난다. 내가 늙었나 싶다.

그냥 이 오래되고 낡고 이빨 빠진 사금파리 같은 세계가 엄마 세계다.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게 엄마 세상인 것이다.

난 좀 볼품도 있고 쾌적해야 하는데, 그냥 엄마는 그런 데서 살아지는 것이다. 그곳이 엄마한테는 가장 편안한 곳인 것이다.

손이 거북등같이 부풀러 올라 쩍쩍 갈라진 그 나무 등껍질 같은 손이 엄마손이고, 푸석푸석한 머리가 엄마의 머리고, 아무렇게나 껴입은 옷이 엄마옷인 것이다. 옛적 동네 사람들 만나면 한껏 목에 힘주며 자식 자랑해야 하는 게 진짜 엄마 가진 최고의 자랑인 것이다.

내가 예전에 너무 속물스럽게 생각하고 싫어했던 그 자랑들이 엄마를 지탱해주는 힘인 것이다. 엄마 삶에 결코 겸손이란 없다.

그걸 위해 모든 몸과 영혼을 자기 방식으로 갈아 넣었기 때문에 오직 자랑을 해야만 자신의 인생을 무심한 세월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이다.


아아  이제 나는 엄마가 동네 사람들 앞에서 자식 자랑을 해도 그냥 들어줘야겠다.

엄마의 말도 안 되는 옛날 그릇들을 그냥 봐줘야겠다.

뒷베란다에 가득 쌓인 빈 그릇들, 왠갖 살림들을 그냥 봐줘야겠다.

엄마의 아픈 뼈들을, 배앓이를, 생각나지 않는 어제 일들을 무심히 넘기지 말아야겠다.


엄마의 곳간 ᆢ뒷 베란다

언젠가 사다드린 계란과자가 아직도 아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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