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전하는 말

아! 노래여

by somewhere

목요일이면 가는 동사무소 영어클래스를 부산히 준비하며 옷을 입다가 갑자기 멈췄다. 생각이 변했다.

나가서 지하철을 타고 종로로 향했다. 시네큐브에 가서 <바람이 전하는 말>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어느 순간에 눈물이 흘렀다. 노부부가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손잡고 가면서 <달맞이꽃> 노래를 부르는 부분.

남편이 작곡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내는 남편이 가사를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기특해했다.

익히 아는 이름, 김희갑 작곡가와 양인자 작사가 부부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만든 노래들이 그렇게 많았음에 놀랐다.

내가 아주 어려서 듣던 노래, 흥얼거리던 노래들이 나오는데 마음이 어느 순간 노래 따라 흘러갔다.


조용필의 오랜 팬이었지만, 이번 추석 공연을 TV로 보면서 그 노랫말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어려서는 그냥 따라 불렀었다. 이제야 그 가사 한 구절구절들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특히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 노래가 나왔을 당시 나는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감상적이고…

그런데 이번에 들어보니 왜 그렇게 가사가 좋은지… 양인자 씨의 가사들은 다 따스하고 섬세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의 거목이라 할 수 있는 분들의 삶과 노래가 내 인생과도 오버래핑되는지라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저렸다.

뇌경색으로 잃어가는 기억들에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어찌 다 기억하고 살겠는가, 잊어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고 하신다.

늙어가는 모든 시간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조용필이 불렀던 <달맞이꽃>이란 노래가 있었다. 잊혀졌던 오래된 노래다. 맹인 가수 이용복이 처음 불렀던 노래.

또 갑자기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제발 끝까지 들을 수 있길 바랐지만 당연히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나는 노래의 오리지널 버전을 제일 좋아한다. 노래 한 곡이 나오면 세월에 따라 연주가 달라지고 가수들도 조금씩 변형하며 부른다. 하지만 나는 항상 첫 버전의 노래가 좋다. 지금 들어보면 촌스런 악기 소리와 연주지만 가수의 목소리는 그 첫 노래할 때의 소리가 제일 좋기 때문이다.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는 뭐랄까….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노래에서 나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노래를 듣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담백한 노래들은 담백한 노래대로, 질척이는 노래는 질척이는 대로(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등)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노래들이었다.


제일 놀라웠던 것은 회식 후 노래방 대미를 장식하곤 했던 혜은이의 <열정>도 김희갑 작곡가의 노래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동원, 박인수가 불렀던 <향수>.

나는 진짜 이 노래를 이분이 작곡하신 줄 몰랐다. 아마 그즈음 Perhaps Love라는 곡으로 테너와 대중가요가수가 함께 부른 노래 컨셉이 유행했던 터라 나왔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 나는 대개 냉소적이라 뭐든 비판부터 하던 때였다. 그냥 그런 흐름을 따라 한 것이라 생각하고 시시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들어보니 정지용 시인의 긴 시에 그렇게 선율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노래 가사들은 정형적인 틀이 있는 시처럼 노래에 붙이기 좋은 형태이며 또한 길지 않았었다.

작곡가는 그 시를 먼저 외우다시피 해서 계속 읊조리고 읊조리면서 자연스럽게 노래가 흘러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작곡했다고 한다.

지금 들어보면 그 시의 정서가 더 이상 어떻게 더 잘 표현될 수 있을까 싶게 선율에 잘 녹아들어 있다.

정말 위대하신 분이구나….


그 두 분이 사시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잔잔한지 눈물이 났다.


<착한 당신 외로워도 바람소리라 생각하지 마>

아내가 남편 머리를 쓸어 올리며 해 주는 말 같다.


너의 시선 머무는 곳에 꽃씨 하나 심어 놓으리

그 꽃나무 자라나서 바람에 꽃잎 날리면

쓸쓸한 너의 저녁 아름다울까.

그 꽃잎 지고 나면 낙엽의 연기

타버린 그 재 속에 숨어있는 불씨의 추억

착한 당신 속상해도 인생이란 따뜻한 거야


인생이란 따뜻한 거야 ᆢ라는 말이 그들 인생 속에 계속 울려 나오는 듯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착한 당신,

영화관 달려가셔서 꼭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