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은 평화로히 풀을 뜯고.

세계의 주인

by somewhere

문득 바흐의 사냥 칸타타에 나오는 아리아 <양들은 평화로이 풀을 뜯고 >를 쳐보고 싶었다.

다운받은 악보를 놓고 쳐보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마추어에게 바흐가 어려운 것은 오른손이 치는 여러 개의 동시음중에서도 하나가 멜로디라서 어떤 손가락은 살리고 다른 손가락은 여리게 쳐야 하는 발란스 때문이다.

이번 여름 영국의 초원을 걸을 때 이 멜로디가 저절로 떠올랐다. 진짜 하도 한가로이 양들이 풀을 뜯고 있어서.

이번에 처음 알았다. 초원에 엎디어 있던 양이 인기척에 놀라 갑자기 일어서면 한동안 절뚝거리며 걷는다는 것을… 처음엔 아픈 애인가 싶어 유심히 봤다. 그런데 지나가는 동안 우리를 피하느라 급히 일어나는 애들이 모두 그랬다. 그 가느다란 길 사이에 굳이 있는 양들도 그랬지만 뭐 하러 굳이 피하나 싶었다. 오히려 그들의 평화를 깨어 미안해서 피하고 싶은 쪽은 우리인데….


이 평화로운 멜로디가 평화롭지 않은 내용에 아슬아슬하게 흘러나오면서 결국 가야 하는 방향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에 선연했던 영화가 있다.

최근에 본 <세계의 주인>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부터는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이사이 흘러나오는 이 아리아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 이 곡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어려워서 하루에 한 페이지씩만 연습하기로 했다. 악보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치기가 까다롭다. 가수가 부르는 아리아 멜로디를 반주 속에 함께 집어넣은 피아노 버전이라 그럴 것이다. 내 실력이 짧은 탓이 제일 크고.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의 감독인 윤가은 감독의 팬클럽 서울지부장이라고 말하는 영상을 얼핏 봤다.

요즘 같은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래도 누군가는 정신을 차리며 이 세상을 살고 있구나 싶은 안도감과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만 생각하고 내 안위에 파묻혀 남들에게 잠깐의 시선도 돌리기 어려운, 아니 돌리지 않는 세태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봉준호감독이 서울 지부장이라면 나는 동네 지부장이라도 하고 싶다.


묵직한 감동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제 거리는 겨울이 완연하다.

잠깐동안 눈이 퍼붓은 저녁, 밥상을 차린 후 밖으로 나섰다. 첫눈이 내린 세상은 아이들의 세상이다.

어디에서 이 아이들이 모두 쏟아져 나왔나… 눈 사람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팔을 붙여준다. 그 어떤 상처나 아픔도 없는 세상이다.

이 세상의 삶이 이런 첫눈 오는 날 밤의 풍경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 문을 나서는 순간 내 앞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빙글 돌며 넘어진다. 라이더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얼른 길거리에 나뒹구는 음식들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포장을 단단히 해서인지 내용물들이 흘러나오진 않았다. 오토바이를 세우는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왜 나는 음식들부터 집어 들었는지 모르겠다. 지나던 행인들이 도와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게서 음식포장물을 받아 든 라이더는 다시 길을 떠난다.

눈사람이 예쁘게 만들어지는 아파트 담장 밖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것이 세상이다.


자꾸 세상으로 눈을 돌리며 살아야 하리라.

영화를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던 내가 다리를 절며 일어나는 양에게 미안했던 것처럼 자꾸 세상에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