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광철 <그 집 앞>
가끔씩 음악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곳이 있다.
이제는 정말 희귀해진 음반매장 그리고 음악감상하며 이런저런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곳. 풍월당
한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이라 그랬을까? 뜻밖에도 행운권 추첨 같은 것을 했다.
행운권 당첨 같은 것은 내 운명에 없는 일인데 60여 년 살다 보니 운명이 변했을까?
내가 당첨되었다. 비명을 지를 뻔했다.
상품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CD사이즈고 하나는 책 같았다. 나는 책.
그런데 집에 와서 풀어보니 책처럼 생긴 CD케이스였다.
베이스 연광철 한국가곡집.
한국가곡이라면 이제 거의 잊혀져 가는 세계 아닐까? 누가 그런 고아한 세계를 아직도 거닐까 싶은...
하지만 연광철아닌가...연광철이라니...
아무도 없는 집,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들으리라고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했던 오후를 보내고 저녁 갑자기 빨래를 개우다 음반을 틀었다.
낮고 장중한 목소리,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오는 듯한 소리.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행여나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저녁을
외로이 이 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 갑니다.
2절을 들을 때면 언제나 그 광경이 그려졌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가 닿은 그 집 앞, 잊으려 옛날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내리는 빗줄기를 세며 걷는 모습.
행여 눈에 띌세라 떠나도 다시 돌아온 그 집 앞, 잊으려 비를 맞고 걷는 그 뒷모습의 감성이 이제는 다 잊혀진 세대가 되었다.
중학생 때 나는 -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지나 달 빛 머언 길, 님이 오시려는가 - 같은 가사에 몸살을 앓듯 했다.
연애도 사랑도 모르는 그 시절에도 왜 저런 가사에 그렇게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빨래 개던 손을 멈추고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일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그대의 근심 있는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있어 그 빛에 살게 해.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 뵈네
베이스 연광철의 소리로 듣는 가곡은 나를,
닿을 수 없는 심연,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그러나 느낌으로 아는 그 어떤 세계로 데려간다.
심란했던 일도 다 잦아들고
그 집 앞 노래를 핸드폰에 담아서 몇에게 보내준다.
그리고 그 파일을 하릴없이 듣고 또 듣는다. 오디오를 두고서….
잠자려 방에 들어와서도 또 듣는다.
내 마음속의 깊은 동굴로 데려다주는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잊는다.
한 해가 끝나간다.
똑같은 여명과 해가 떠오르겠지만 우리는 그 시간에 다른 이름을 주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2026년.
그냥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거지만 괜한 감상에 젖어,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보고 새로이 당도할 시간에 새해 결심이라도 해보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계획표라도 짜볼까 싶다.
이렇게 시간에 선을 그어 재단해 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