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밸류

가족이란 ᆢ

by somewhere

나무가 바람에 서걱이고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견뎌온 집.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나레이션이 마음을 두드렸다.

'집도 ᆢ아팠을까' 하는 장면에서 마룻바닥에 유리잔이 떨어져 깨지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들이 가득 차 따스함이 흐를 때 집도 행복했을까.

서로 소리 지르며 싸울 때 집도 괴로웠을까.


나무사이 독특한 모양의 아름다운 집이 오랜 세월 가족들의 기쁨, 행복, 갈등, 고통을 같이 견디며 사는 존재로 묘사된다.


나레이션이 나오는 동안 그 집은 너무 특별한 집이 된다.

동네 수많은 집들 중 하나인 그 집이, 오랜 세월 살아온 깊고 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주인공인 노라는 연륜이 쌓인 배우이면서도 무대 앞 공포로 거의 발작을 일으킨다. 속에 켜켜이 쌓인 고통과 공포가 엿보인다.


결국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고통과 분노가 인생을 좀먹고 있다. 아버지와 두 딸 모두 성숙하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서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한 묵은 상처 앞에 서게 된다.


진부하고도 진부한 주제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가족 안의 상처 이야기.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멋져 보이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결국 가족의 상처에는 자유롭지 못하구나.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문제.


아버지가 먼저 손을 내민다.

당연히 자식은 더 예민하고 공격적이다.

늘 부모가 가해자고 약자이다. 피해자라서 더 공격적일 수 있는 자식이 실은 강자라는 아이러니. 세월의 아이러니.


세계적 명망을 쌓은 영화감독인 아버지가, 어느 허심탄회한 자리에서 하는 말에 나는 목이 메었다.

- 자식은 후회가 없지요-

그 어떤 상황에서건 자식을 낳아 기른 것에 대해선, 자식의 존재는 후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두 딸은 그 말을 놀랍다는 듯이 듣는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집을 뛰쳐나간 아버지니 불화했던 아내와의 결혼이나 자식을 다 버렸던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말한다.

세상에 모든 것은 다 후회될 수 있으나 자식의 존재는 후회되지 않는다고.

살짝 지나가는 이 한마디에 나는 울컥 목이 메었고 공교롭게도 그 바로 다음 장면이 딸 노라가 우는 장면이다.

그저 조용히 흐르던 눈물이 무릎을 꿇게 만들고 바닥에 몸을 던져 울게 한다. 뒤늦게 아버지 진실을 알아 우는 것인가 싶은데 실은 연극 연습의 한 장면이다.

중의적이다.


아버지로 나온 배우의 눈빛이 깊었다.

노르웨이 영화라는데 북구의 바람이 불어 나무가 서걱이는 장면들이 너무 좋아 영화 보며 엉뚱하게 결심해 본다.

바로 앞에 나무들이 있어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보이고 들리는 곳에 살아야 해.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을 고향에 갈 때면 가끔 찾아가 볼 때가 있다. 그 오래된 집이 아직도 허물리지 않고 있다.

내가 때어나 20년을 살았던 집과 그 이후 살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두 집을 그냥 가서 바라볼 때가 있다. 두 번째 집은 뼈대 좋은 한옥이어 지금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되었다. 그저 바라볼 뿐 게스트로 그 집에 들어가 볼 생각은 안 한다.

우리가 살 땐 마루에 저런 덧 창을 씌우지 않아 햇살이 갈색 나무마루에 가득 했었다.


집을 바라보면 그 집에 살았던 시절의 수많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첫 집의 가난과 비루함 그리고 평안하기도 했던 기억. 봄이면 피어나던 그 작은 마당의 백목련과 청보라색 장미, 우물가의 포도나무 한 그루.

두 번째 집의 슬픔들. 햇살이 들이치는 마루와 창호지 문 뒤의 어둔 방들. 오랫동안 아프셨던 아버지의 울분과 고통들이 스민 골목 안 기와집.


식구가 가득해 따스했을 때 그 집도 행복했을까.

모두가 떠나 적막하던 가을밤, 어머니의 깊은 외로움에 집도 진저리를 쳤을까.


집이 필요해.

영화에서 울리던 문장이다.

왜 집에 안 살고 있는 것 같을까.

큰 방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두 방 건너 방바닥에 깔린 이불속에 배 깔고 엎디어 라디오를 듣던 그 평온한 밤의 집만이 집이었던 것일까.


낙안민속마을을 걷고 계시는 어느 늦가을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