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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Oct 12. 2023

갈리시아의 저녁

춤을 추려무나

포르투갈과 강 하나 사이를 두고 스페인이다.

국경도시 Valença를 흐르는 미뉴강 철교를 걸어 스페인 Tui로 들어왔다. 스페인은 들어서자마자 인도도 넓고 모든 게 좀 더 여유롭다. 왠지 못 사는 형제 두고 떠나온 짠한 마음이 강 건너 포르투갈에 든다.

스페인의 첫 도시 Tui에서 하룻밤을 자고 어둑한 새벽에 길을 떠나 갈리시아 지방의 산골 마을 Mos에서 걸음을 멈췄다.

씻고 빨래를 마치고 알베르게 앞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시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왜 술을 마시면 이리 마음이 넉넉해지고 여유로워질까.

모든 걸 다 품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단순히 술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그 마음에 빠져들진 않는다.

마을을 산책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마을 가로등들이 밝혀진다.

동네 앞 박물관 같기도 하고 알베르게 리셉션 건물이기도 한 곳 위층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마 춤을 배우는 곳인가 보다. 탱고가 흐르다가 파두 같은 노래가 흐르기도 한다.

계단에 앉아 듣자니 너무 좋다.

더 크게 음악을 울리고 더 하게 춤을 추려무나.


춤 선생의 스텝 맞춰주는 소리가 음악 속에 묻히며 같이 리듬을 탄다. 강하게 구르는듯한 스페니쉬 억양에 빗방울이  두 방울 들며 저녁속으로 흩어진다.

저 윗층 열린 창문 사이로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이정표에 써진 Galicia를 볼 때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집시 에스메랄다가  갈리시아 지방에서 보낸 아름다웠던 유년의 세월을 노래한 부분이 생각나 애틋했다.

그 에스메랄다 노래 같은 여운이 오늘 이곳 밤의 색채에 곳곳이 배어있다.


걷다 보면 지도 위의 길과 실제 순례길이 다른 부분이 좀 있다.

좀 더 걷기 좋은 길로 바꾸거나 단축시킨 부분인데 앱의 지도 업데이트가 늦어서이다.

오늘도 막 그런 경우에 들어서려던 찰나에 동네 할머니가 그 길이 아니라고 손짓하며 따라오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한참을 우리랑 같이 걷는데 한 이십여 분간 혼자서 계속 말씀을 하신다. 물론 동행중 한 사람이 스페인어를 조금 알아먹긴 하는데 대화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우리가 알아먹는 거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하신다. 간간히 마치 < 이러이러한데 정말 웃기지 않니?>하는 분위기로 우리를 보고 웃으면 나는 그 끝소리를 후렴처럼 읊어주며 같이 웃어 주었다. 그러면 더 득의 만만해서 목에 울대를 세우고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그 광경이 하도 희한해서 영상으로 찍어놨다.

도대체 뭔 말을 하는데 상대방이 알아먹는지 상관없이 저리도 말을 계속할 수 있단 말인가.

더 희한한 것은 그러고 있자니 진짜 우리가 그 말을 다 알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다. 서로 웃음으로 화답하면서ᆢ

동네 바에서 맥주 마실 때도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영어로 몇 마디 우리에게 물어보고 유쾌하게 이야기하다  자기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 스페인어로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떠는데 왠지 다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술기운 때문인가?

아마 느낌 때문일 것이다. 언어를 넘어서서 전달되는 느낌.


오늘 밤,

저 주황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의 음악과 저녁의 느낌 때문에 갈리시아의 이 산골의 밤을 오래전부터 살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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