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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Jun 04. 2022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다 해봤습니다만 (자연분만 편)

Part1.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자연스레 임산부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눈길이 간다. 예능프로그램인 <동상이몽>을 보면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장면이 있었으니 배우 이윤지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이윤지는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로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남편 정한울은 그런 아내의 고통을 공감하기 위해 임산부체험에 나섰고, 호기로운 시작과 달리 임산부 체험복 착용 5분 만에 복부가 눌려 숨쉬기를 어려워했다. 기도랑 식도까지 다 눌려 만성 소화불량까지 호소하면서 그는 아내의 고통을 체감하는 듯 보였다. 임산부체험에 이어 진통 체험까지 도전한 그는 남자로서 느끼지 못하는 경험을 유사하게라도 느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체험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출처 스포츠조선


출처 스포츠조선



 진통 체험은 복부에 진통과 유사한 전기 자극이 오는 패치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가진통 단계인 미세한 전기 자극이 시작되자 그는 의지와 달리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떨었다. 더 높은 자극이 가해지는 진진통 단계가 되자 그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딸이 놀랄까 봐 소리 한번 지르지 않은 채 고통을 참아냈다. 마침내 출박임산 단계가 되자 몹시 힘들어하는 그를 보다 못한 아내 이윤지가 나서서 진통 체험을 중단시키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남편 정한울은 진통 체험을 마치자 아내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고 말한 동시에 자신을 걱정하며 지켜보던 딸을 향해 미소와 함께 이런 말을 남겨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빠는 기쁘게 아팠어.”



 자발적으로 임신과 진통 체험에 도전한 남편 정한울은 내가 본 육아커뮤니티에 올라온 어느 남편과는 극명하게 비교됐다. 글을 올린 한 엄마는 남편과 출산 당시 고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서 남편이 한 말이 용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도대체 아내에게 어떤 말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화가 났나 싶었던 순간, 이 문구에 내 속도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넌 어차피 수술로 애 거저 낳았잖아.'



 거저? 내 눈을 의심했다. 출산 전후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 글을 본 엄마들의 속마음이 댓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거저면 남편도 제왕절개 해보라고 하세요.’, ‘죄송하지만 너무 무식한 소리 하고 있네요.’ 등 그녀의 남편을 향한 비난에 댓글이 쏟아졌다. 출산의 고통을 경험한 엄마들이라 더 반응이 뜨거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출산에는 ‘거저’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한 상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여자에게 출산은 일생일대의 아주 소중하고, 위대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인즉슨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순산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이야 의술이라도 좋지, 옛날 시대의 엄마들은 목숨을 걸고 한 것이 출산이다. 나는 출산을 직접 경험해보고서야 그 고통의 강도를 체감하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 고통을 오롯이 엄마들의 몫으로만 미루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윤지의 남편이 대단해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한 생명의 공통책임자로서 평생 가도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자발적으로 나서 체험했다는 것은 임산부인 아내를 이해하고, 예비 아빠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과정이 많은 예비 아빠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넷째를 가진다면, 우리 남편에게도 이 체험을 적극적으로 권할 예정이다.)



 세상에 쉬운 출산은 없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분만을 모두 다 경험해본 나로서 이 부분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떤 분만으로 출산을 하든 간에 다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직접 경험한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분만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에서 말해보려고 한다. 부디 출산을 앞둔 한 사람의 예비 엄마에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연분만 편



 나는 첫째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10월 1일 국군의 날이 예정일이었던 첫째는 일주일이 지나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의사는 결국 자연진통을 기다리는 대신 유도분만을 권유했다. 유도분만일을 일주일 앞둔 시점, 나는 마지막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이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는데 진료 전 측정한 혈압이 평소보다 높게 나온 것이었다. 운동 삼아 진료실이 있는 3층을 계단으로 올라온 탓인가 싶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측정했지만,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분만을 서두르는 것이 좋겠어요.”

유도분만일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지만, 마음의 준비는커녕 출산 가방도 싸놓지 않은 내게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며칠 더 기다리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간절한 마음에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전보다 단호하게 내게 말했다.

“임신 중에 한 번 높아진 혈압은 안정되기 힘들어요. 더 늦췄다간 분만 중에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응급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부랴부랴 출산 가방을 싸서 그날 저녁 입원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나는 간호사가 가져다준 등판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출산복으로 갈아입고, 병실 침대에 누워 이쑤시개 굵기의 주삿바늘이 내 팔에 꽂히기를 기다렸다. 그때부터 불안은 시작되었다. 아무리 스스로 ‘괜찮다, 괜찮다.’라며 다독여도 불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굴욕 3종 세트라 불리는 제모, 관장, 내진까지 경험하자 불편함마저 들었다.



 유도분만을 하게 된 나는 새벽 내내 진통을 하면서도 강도에 따라 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버텨내고 있었다. 약한 수준의 진통이 지속될 때는 이 정도 진통이라면 앞으로 애를 몇 명이라도 더 낳을 수도 있겠다 속으로 생각했지만, 분만에 속도를 내주는 ‘분만 촉진제’가 투여되자 말은 완전히 달라졌다. 진통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10분에 한 번 오던 진통이 5분 간격을 좁혀지자 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그 고통이 더 심하게 느껴져 라마즈호흡이라는 것에 의지해 나는 수도 없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지만, 그것으로는 진통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통 간격 3분에서 1분으로 당겨졌을 때,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무통 주사를 맞고, 나는 잠시 고통에서 벗어나 ‘무통 천국’의 달콤함을 누렸다. 하지만 그 달콤함도 잠시, 더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진통이 찾아오자 나는 처음으로 남편을 통해 간호사를 호출했다.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는 내 상태를 보고 급히 내진하더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너덧 명의 간호사가 더 들어왔다.



“자궁문 다 열렸어요. 이제 분만 준비할게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병실은 순식간에 분만이 가능한 곳으로 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노련한 손기술로 병실 침대를 분만 침대로 변신시키는 간호사의 모습에 나는 잠시 감탄했다. 정말이지 영화 트랜스포머는 저리 가라 수준이었다. 분만 준비를 마치자 간호사는 내게 본격적으로 힘주기 연습을 시켰다. 진통이 밀려오면 힘을 주어 태아를 밀어내는 연습이었는데 아픈 것과 동시에 힘주는 것을 함께 하려니 나는 너무 괴로워 절로 울부짖게 되었다. 배에서 시작된 고통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그때 간호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산모! 지금 울면 호흡이 제대로 안 돼서 아기까지 위험해요. 울지 말고 호흡하면서 힘줘요!”



자연분만해본 산모라면 알 것이다. 간호사에게 혼나면서 아기를 낳는 이 심정을. 맨살을 다 드러내놓은 것도 수치스러운데 애 낳다가 혼나기까지 하다니! 어떻게 그 상황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힘주는 것이 가능한지 나를 혼내는 간호사 당신은 애 낳을 때 이성적으로 몸이 잘 움직였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사촌 동생 경미는 나보다 몇 달 앞서 출산했는데 힘주기 연습을 하다가 간호사에게 욕을 했다고 한다. 당장 의사를 불러오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정신이 돌아왔을 때 바로 사과했지만, 나는 그녀가 왜 그랬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성을 잃은 나도 의사를 보자마자 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남은 힘을 모아 소리쳤기 때문이다.



“살…려 주세요….”



아이를 만나기 2시간 전, 나는 거의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면서 악을 썼지만, 끝끝내 힘주기에 실패해 흡입기의 도움을 받아 첫째를 만났다. 무려 18시간 만이였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비몽사몽 한 탓에 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 작디작은 아기가 내 가슴 위에 올려졌을 때 비로소 나는 한 생명을 탄생시킨 것이 실감 났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회음부 절개 후처치로 또 다른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출산 4일째 되던 날, 조리원에 입소했다. 같은 날 함께 들어온 산모는 나를 제외한 두 명이 더 있었다. 우리는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면 옆구리에 하나같이 도넛 방석이라 불리는 것을 끼고 다녔다. 도넛 방석은 가운데가 동그랗게 비어 있는 도넛 모양의 방석인데 자연분만 시 회음부 절개를 한 산모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는 물건이다. 조리원에서의 생활이 일주일쯤 지나자 같은 날 입소한 산모들의 도넛 방석 사용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보였다. 밥을 먹을 때도 수유를 할 때도 방석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나는 그저 신기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조리원에 머무는 2주 동안 단 한 번도 도넛 방석 없이 앉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 달가량 도넛 방석을 더 사용할 정도로 절개 부위의 통증이 말도 못 할 정도였고, 그 느낌은 마치 같은 부위를 계속해서 칼로 긋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지인은 출산 시, 회음부 절개 부위의 봉합이 잘못되어 출혈이 생겼고, 그로 인해 두 번이나 재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출산보다 회음부 절개 재수술이 더 고통스러웠다는 그녀는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비슷한 문제를 겪으면서 둘째를 가지더라도 회음부 절개만은 피하고 간절히 바랐다. 물론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극소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회음부 절개의 고통만 아니라면 자연분만의 장점은 무한하다고 본다.



 자연분만의 가장 큰 장점은 출산 후, 몇 시간 만에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회복도 빠르게 진행된다는 뜻이기도 해서 간호사들은 틈만 내게와서 걸으라고 했다. 엉거주춤한 자세가 조금 민망하긴 했으나 이동의 자유가 있었으므로 아기의 첫 면회부터 내 발로 신생아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됐지만, 제왕절개분만을 하고 나서는 출산 당일에 걸어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출산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샤워할 수 있다는 것도 출산 당일부터 물을 포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자연분만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출산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긴 시간 진통을 겪고 난 후 찾아오는 허기짐은 어마어마하다. 이때 먹는 미음은 다른 반찬 하나 없이도 엄청나게 맛있는데 이게 바로 출산 효과인가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자연분만의 최고의 장점을 말하자면 회복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애를 낳기 전까지 밭을 매고, 애를 낳은 후에도 몸조리랄 것도 없이 다시 밭매러 나왔다는 할머니들의 출산설만 들어봐도 자연분만의 회복속도를 알 수가 있다. 제왕절개분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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