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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Jun 13. 2022

나만의 화를 참는 법

Part5. 다시 나에게 친절해지는 시간

 둘째가 태어나고 남편이 군 행사 전담팀으로 들어가면서 내 육아 스트레스 지수는 최고치를 찍었다. 나는 작은 일에도 화를 참지 못했고, 그 화를 남편과 아이에게 쏟아냈다. 화를 내고 돌아서면 죄책감이 밀려왔는데 그렇다고 화를 내지 않으면 화병이 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주는 곳은 육아 커뮤니티뿐이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렸고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엄마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집과 우리 집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한 엄마는 육아가 힘들 때면 아이에게 화를 내는 자신이 다중인격 같다고 했고, 다른 엄마는 아이가 도대체 몇 살쯤 되어야 자신이 화를 덜 낼 수 있느냐며 하소연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나 역시 이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다.



 도대체 아이가 몇 살쯤 되면 나(우리)는 화를 덜 낼 수 있을까? 이에 선배 엄마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크면 클수록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인 피로도가 오히려 더 높아진다고 지금이 좋을 때라 했다. 선배 엄마들의 말을 들으니 육아를 하지 않는 이상 화를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건 화를 어떻게 다스릴까에 대한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당장 엄마들의 ‘화 참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이 쏙 들어갈 만한 한 개의 글을 만나게 되었다. 조회 수만 무려 2만이 넘는 글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화날 때 화 누그러뜨리는 방법’



출처 pixabay



 화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이라니! 내게 꼭 필요한 글이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글을 클릭해서 읽어 내려갔다.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느낀다는 그녀는 자꾸만 애꿎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에 죄책감이 들어 화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쯤은 다 가지고 있을 법한 이 글은 평범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의 댓글은 심상치가 않았다. 나는 댓글 하나 하나를 읽으면서 입이 떡하니 벌어지고 말았다. 너무 신박해서..


‘화가 날 땐 아이 눈썹을 일자로 그려보세요.’ 

‘등에 화를 업었다 생각하고 둥가둥가 해보세요’

‘모든 말 앞에 와우! 를 붙여 보세요’

댓글에는 엄마들의 화 참기 노하우가 우르르 쏟아졌다. 하지만 이 댓글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그 많은 댓글 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두 개의 댓글에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박장대소했다.

‘방에 들어가서 절을 해요’라는 평범한 댓글에 한 엄마가 ‘절은 아이한테 하는 거죠? 지금 진지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겨서 나를 포함한 모든 엄마가 쓰러졌다. 원 댓글의 의미는 수양의 의미로 잠시 아이와 분리되어 절을 하면서 화를 다스리라는 듯한 내용으로 보였는데 아이에게 절을 해야 하냐는 상상치도 못한 글에 많은 엄마가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긴 어느 엄마는‘3살, 5살 애들한테 절하니까 되게 좋아하네요.’라고 현실 체험기를 올리며 또 한 번 웃음을 줬다.



 나는 이보다 더 강력한 댓글 앞에서는 내용대로 실천한다면 세상 어떤 화도 다 누그러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속상하고 우울할 땐 발바닥을 귀에 대고 “여보세요?” 하면 좀 나아진대요.’ 이 방법으로도 부족할 거라 생각했는지 글쓴이는 다음 댓글도 남겨 엄마들로부터 눈물 콧물이 쏙 빠질 정도로 대폭소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린다면 반대쪽 발로 “네~ 전화 바꿨습니다.” 해보래요.’ 글쓴이도 직접 체험해보진 않았다고 했지만, 이는 상상만으로도 큰 웃음을 주었던 화 참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 글 덕분에 나는 육아를 하면서 한동안 화를 참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변에도 나름에 화를 참는 법을 터득해 실천하고 있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지인이 있었다. 그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면 나는 신기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집안 곳곳에 한자를 써놓은 A4용지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그 한자는 ‘참을 인(忍)’이었다. 거실, 주방 할 것 없이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忍’이 보였는데 나는 한자를 써서 붙인 이유가 궁금했다. 지인이 말하기를 아이를 키우면서 감정적으로 힘이 들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忍’을 보며 화를 참아낸다고 했다. 기발한 방법 같았다. 마음으로 ‘참자!’ 하는 것과 눈에 보이는 곳에 붙여 놓은 ‘忍’을 보며 화를 다스리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나만의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평소 운전하면서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화가 날 때면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드라이브 가는 것을 화를 다스리는 최우선의 방법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실천 결과 듣고 싶은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달리고 오는 날이면 진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막내가 태어나면서 사실상 실행하기 어려워졌다. 일상의 여유라고는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자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나면 그 화를 풀지 못해 화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만의 화를 다스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 개그우먼 이은지편을 볼 때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 맞이하는 자신의 생일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자축 생일파티를 위해 레시피를 검색해 요리하는가 하면 SNS에서 핫하다는 연꽃모양초를 케이크에 얹고 불을 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녀가 마지막으로 꺼내 든 것은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해피 저금통’이었다. 그녀 손에 들린 ‘해피 저금통’이라 적혀있는 투명 유리병에는 색색의 종이가 들어있었는데 행복한 일들이 생겼을 때마다 메시지를 적어 ‘해피 저금통’에 저금하고, 연말에 메시지를 풀어보면서 올해 내가 이만큼 행복했구나를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출처 iMBC 연예 | MBC 화면캡처



 나는 이 저금통을 보자마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감사 저금통’을 만드는 것이었다. 감사한 일을 찾아 종이에 적고 저금을 한 뒤, 연말에 풀어보는 대신 나는 화가 날 때마다 풀어보기로 했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감사합니다.’

‘밤새 아이들이 깨지 않고 잘 자준 덕분에 새벽 시간을 혼자 쓰게 되어 감사합니다.’ 등 감사한 일을 찾아 쓰면서부터 내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으며 화가 날 때도 이 메시지를 풀어보면서 화를 다스릴 수 있었다. 물론 모든 화를 잠재울 순 없었지만, ‘감사 저금통’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확연했다. 그리고 나만의 화를 다스리는 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화를 더 크게 키우지 않게 돼서 왠지 모르게 스스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욱하거나 한번 화를 내면 격해진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든 엄마라면 나는 ‘감사 저금통’ 만들어보길 적극 추천한다. 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다.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해가 저물어 토굴에서 잠을 자게 된다. 한밤중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바가지에 고인 물을 달게 마시고 다시 잠이 든 원효대사는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인 것을 알고 역겨움에 구역질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마음이 긍정적이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행동도 긍정적일 것이다. 내 마음이 감사로 가득하다면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이 감사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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