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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May 19. 2022

힘들 땐 도움을 청하자

Part2. 딱 1년만 혼자 키우겠습니다

 혼자서 애 셋을 본다는 게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지 몰랐다. 어쩌면 모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해외파병으로 내게 1년가량의 단독육아 미션이 떨어졌을 때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할 수 있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앞섰다. 자신감이 자만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남편에게 ‘걱정 말고, 잘 다녀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라는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독육아의 현실이 피부로 와닿은 것은 남편이 출국하기 전, 국제평화지원단에서 두 달가량 파병 교육을 받을 때부터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세 아이 단독육아는 내 몸과 마음까지 서서히 지치게 했는데 그로 인해 어떤 날은 한 마리의 맹수가 되어 울부짖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발을 동동거리며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바닥을 치던 날,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첫째와 둘째를 씻기기 위해 막내를 바운서에 눕히고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다. 막내는 졸리는지 슬슬 울음 시동을 걸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더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막내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놀이터에서 놀다 온 두 아이를 씻겨야만 했다. 간신히 욕실에서 탈출하고도 여전히 막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아이들의 저녁밥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누워있는 것에 한계가 온 막내는 당장에라도 자신을 안으라고 넘어갈 듯 울어 재끼는 통에 내 몸은 주방에, 온 신경은 막내가 누워있는 바운서로 이단 분리되어 넋이 나간 상태로 저녁 준비를 마쳤다.


 사고는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차려낸 밥상을 정신없이 들고 거실로 나가던 중, 일이 터졌다. 밥상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중심을 잃은 내가 그대로 넘어진 것이다. 순식간에 내 몸뚱이는 밥상 위에 포개졌고, 거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겨우 일어나 주변을 살피니 아이들은 멀리 감지 앉아 있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널브러진 밥과 반찬, 깨진 그릇이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을 보니 다시 밥상을 차려야 된다는 생각에 서러워 복받쳐 올랐다.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마음이 아파 깨진 그릇에 베인 발은 아무 느낌도 없었다. 다시 저녁밥을 차려 아이들을 먹이고 나서야 무릎에 울긋불긋하게 든 멍 자국과 퉁퉁 부은 검지 손가락이 보였다.





 다음 날, 정형외과를 찾아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의사는 내게 손가락 인대가 늘어났으니 반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내 처지에 반깁스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한숨을 크게 내쉬는 사이 간호사는 내 손목에 석고를 둘러버렸고, 그것은 점차 뜨끈해지더니 차갑게 굳어갔다. 내 표정처럼 말이다. 반깁스를 한 손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이 손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씻기지?’, ‘어린이집에 보낼 식판과 숟가락, 물통은 또 어떻게 씻지?’, ‘밥은?’ 하며 온통 내 머릿속은 아이들 걱정으로 가득했다. 걱정은 현실이 되어 반나절 만에 반깁스를 풀어버리게 만들었지만, 더 큰 걱정은 이렇게 지내다간 내 몸도 정신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친정과 시댁은 4시간 거리에 있다. 엄마는 조경업을 하시는 아빠 일을 돕고 계셨고, 시어머니 역시 일을 하고 계시기에 어디에도 선뜻 도와달라고 부탁드릴 수가 없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던 나는 가끔 주말에라도 엄마가 4시간 거리를 달려와 주시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평일이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평일 일손만 해결되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육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전에 잠깐 이용했던 아이돌봄 서비스가 떠올랐다. 아이돌봄 서비스는 생후 3개월에서 만 12세 이하 아동이 있는 가정에 아이돌보미가 방문해 돌봄을 제공하는 여성가족부 지원사업이다. 나는 가까운 행정복지센터로 달려가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하고, 담당자가 알려준 대로 건강가정지원센터로 전화를 걸어 돌봄선생님을 요청했다. 선생님이 배정되기까지 두 달을 기다려야 된다는 직원의 말에 나는 진작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긴 기다림 끝에 고정적으로 일 해주실 돌봄선생님이 집으로 오셨고,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돌봄선생님이 오시고,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에게 너그러워진 내 모습이었다. 하원길에 놀이터에 들어가려는 아이를 온몸으로 막아선다거나 물놀이를 겸한 목욕을 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감질나게 5분 만에 샤워를 끝내지 않아도 됐다. 돌봄선생님은 내게 단독육아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동시에 내 얼굴에 드리워진 불안과 짜증도 사라지게 했다.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나는 여러 담당자와 돌봄선생님을 만났다. 솔직히 다 만족스러웠다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가 않다. 아쉬움이 남았던 적도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고정적으로 돌봄선생님이 배정되기까지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당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두 달 이상을 기다려야 했고, 그로 인해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돌봄선생님을 단기로 배정받아 서비스를 이용했다. 계속해서 선생님이 바뀌자 아이들과 나는 왠지 모를 불편감을 느꼈다. 조금 정이 붙을라치면 선생님이 바뀌었고, 특히 막내의 낯가림이 시작되면서 계속해서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나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지역에 따라 대기기간은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등. 하원 시간에 이용을 원한다면 나와 비슷한 경우를 겪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 신청해서 필요한 때에 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추천한다.


 아이돌봄 서비스의 아쉬운 점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돌봄선생님을 배정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담당자나 돌봄 선생님이 서비스 이용 초반에 자주 하신 말 중 하나가 ‘아이가 어리면 부담스러워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서….’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상처가 되었고, 과연 이 서비스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는 비용과 진심으로 아이를 예뻐해 주시는 좋은 돌봄선생님들 덕분이다. 나는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꼭 아이돌봄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요청하라고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육아의 질이 달라진다.


 육아는 장거리 마라톤과도 같다. 하루 이틀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함께 뛰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마라톤을 할 때 체력 분배를 잘할 수 있도록 함께 뛰는 페이스메이커처럼 말이다. 남편과 함께하면 가장 좋겠지만, 나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해도 주변의 아빠들을 보면 바빠도 너무 바쁘다. 이때 도움을 청하라고 있는 것이 바로 아이돌봄 서비스와 같은 것들이다. 한 단체는 주기적으로 워킹맘을 위해 무료로 반찬을 나눠주기도 한다. 힘들다면 도움의 손길을 뻗어보자. 내가 웃어야 아이들도 웃을 수 있다.






* 참고


아이돌봄 지원사업이란? 여성가족부 지원사업으로 가정의 아이돌봄을 지원하여 아이의 복지증진 및 보호자의 일・가정 양립을 통한 가족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과 양육친화적인 사회환경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간제와 영아종일제 돌봄서비스가 있으며 시간제 돌봄서비스는 맞벌이가정, 다자녀가정 등의 만 12세 이하 아동에게 아이돌보미가 집으로 찾아가 임시보육, 놀이활동, 준비된 식사 및 간식 챙겨주기, 등ㆍ하원 동행 등 돌봄 제공한다.


영아종일제 서비스는 생후 3~36개월 영아 대상 이유식먹이기, 젖병 소독, 기저귀 갈기, 목욕 등 종일 돌봄 제공하며 아이가 생후 3개월이 경과하지 않더라도, 이용가정과 협의한 경우 서비스 이용 가능하다.

(*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참고) 


소득유형별 정부지원금 및 본인부담금이 다르므로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하면 더 자세하게 도움받을 수 있다. 단, 복지로 앱을 통한 신청은 맞벌이부부(직장보험 가입자) 및 한부모가족지원법에 의해 등록된 한부모가구(직장보험 가입자)만 공인인증서를 통해 신청 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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