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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노루 Mar 07. 2019

봄이 왔다규~

비발디 <사계> 중, "봄"

만물이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왔습니다!"



클래식 음악 가운데, "봄"이란 제목을 가진 작품들은 꽤나 많이 있습니다. (작곡가들이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과 슈만의 <교향곡 제1번> "봄"을 비롯하여,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 "봄노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봄의 소리>,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가 뭐라 해도, "봄"을 제목으로 가진 작품 중, 최고는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일 것입니다.


비발디의 <사계>는, (대체! 누가!! 이런 조사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에 거의 빠지지 않고, 그 이름을 올리는 작품입니다. 더욱이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비발디의 <사계>만큼은 그리 싫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꽤나 오랫동안 핸드폰의 통화 연결음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엘리베이터나 커피숍(저의 친구, 스타벅스!)에서도 빈번히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로, 이 작품이니까 말입니다. 이처럼 비발디의 <사계>는 우리가 원치 않더라도, 꽤나 우리에게 가까이 들어와 있는, 우리에게 친밀한, 그런 음악입니다.


비발디는 비록 가발로 감추었지만, 머리가 붉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빨간 머리 신부"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셔츠 단추를 3개는 풀어헤친듯한...


비발디는 17세기 베네치아 출신의 작곡가로, (위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바이올린의 대가였습니다. 비발디의 대표작인 <사계>는 <<화성과 창의의 시도>>(op.8)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목이 붙은 1-4번까지의 작품을 통칭한 것입니다. 각각의 곡들에는 각 계절을 묘사하는 시가 붙어 있고, 비발디는 이 시의 내용을 기가 막히게 음악으로 그려냈습니다. 새소리, 천둥과 번개 소리, 개 짖는 소리, 파리떼 소리, 총소리, 빗소리 등을 포함해서, 술 주정뱅이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의 모습까지 말입니다.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에서도, 가장 인기 높은 "봄"에는 겨울 내내 움츠려 지냈던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추위를 피해 떠났던 새들이 다시 돌아와 지저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겨울 동안 얼어있던 시냇물이 따뜻한 미풍에 '살랑살랑'(?) 잔물결을 만들며 흐릅니다. 그러나 봄에 꼭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죠. 바로 '꽃샘추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꽃샘추위 때 눈이 내리기도 하지만, 베네치아에서는 (눈이 내릴 만큼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서인지) 천둥과 번개가 동반됩니다. 하지만 금세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다시 봄을 상징하는 새들이 지저귑니다. 이와 같이 "봄"의 제1악장에서는 새소리, 시냇물 소리, 봄을 방해하는 천둥과 번개 소리, 그리고 다시금 새소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소리들이 어떻게 음악으로 묘사되는지 듣는 것은 꽤나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이리도, 인기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한번 들어볼까요?





그런데, 비발디의 <사계>는 위와 같은 음악적 내용들을 특정한 '틀'에 담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17세기 바로크 "협주곡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정립시킨 사람이 바로, 비발디입니다. 비발디는 <사계>를 비롯하여 약 400여 곡의 협주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거의 모두 "협주곡 형식"이라는 같은 틀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혹자는 비발디를 가리켜 "다 똑같은 곡만 작곡한 작곡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협주곡 형식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비발디의 <사계>는 각각의 계절이 3악장으로 되어 있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전곡을 다 들으려면, 총 12악장을 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빠른 악장이 '리토르넬로'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용어만 좀 어려울 뿐이니 당황하지 마세요!) 리토르넬로 형식은 전체 악기로 연주되는 투티 부분과 독주 악기(들)로 연주되는 솔로 부분이 교대로 연주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전체 악기가 연주되는 투티 부분이 나오면 그다음에 솔로 부분이 연주되고, 다시 투티 부분이 나오고, 또다시 솔로 부분이, 그리고 투티 부분, 솔로 부분.... 이렇게 투티와 솔로가 교대로 연주되다가 마지막에 전체 악기로 연주되는 투티 부분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투티 부분은 반복될 때마다 유사한 음악적 내용이 사용됩니다. 솔로와는 달리 말입니다. 솔로 부분은 나올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음악적 내용이 사용됩니다.


그러면, "봄"의 1악장을 리토르넬로 형식으로 감상해볼까요?(걱정 마세요! 다행히도, 비발디는 "봄"의 1악장을 시에 잘 맞추었기에,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답니다.)  


우선, 전체 악기가 연주되는 투티 부분에는 "봄이 왔다"라는 시가 붙어 있고, 2개의 음악적 주제가 사용됩니다.

쉽게 첫 번째를 원래 가사에 맞추어 "봄이 왔다"라고 해 봅시다. (미솔#솔솔파#미시~)


그렇다면 두 번째를 "봄이 왔다"를 변화시켜, "봄이 왔다규~"로 해볼까요. (미시라솔#라시도#시~)


이렇게 투티 부분에는 "봄이 왔다"라는 주제와 "봄이 왔다규~"라는 주제가 사용됩니다. (부디, 이 두 주제를 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솔로 부분에서는 "새소리"가 나타납니다. 솔로가 끝나면 다시 전체 악기로 연주되는 튜티 부분이 나옵니다. 첫 번째 주제인 "봄이 왔다"를 기다리시겠지만, (안타깝게도) "봄이 왔다"가 아닌, 두 번째 주제인, "봄이 왔다규~"가 연주됩니다.


이렇게 두 번째 투티가 끝나면, 새로운 솔로 주제가 나옵니다. 바로 시냇물 소리를 묘사한 것입니다. 이 부분이 종결되면, 또다시 투티 부분이 나오는데요... 또, “봄이 왔다”가 아니라, "봄이 왔다규~"가 사용됩니다.


이와 같이 세 번째 투티가 끝나면, 이번에 솔로 부분에서는 분위기가 반전되어 천둥과 번개 소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제 예측할 수 있겠죠? 투티의 "봄이 왔다규~"


천둥 번개가 지나가고, 다시 돌아온 새소리를 솔로 악기(들)가 묘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튜티가 연주되면서, 음악이 끝이 납니다. 마지막 튜티에는 마지막인 만큼, "봄이 왔다"와 "봄이 왔다규~"가 모두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봄"의 제1악장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봄이 왔다", "봄이 왔다규~"

새소리

"봄이 왔다규~"

시냇물 소리

"봄이 왔다규~"

천둥과 번개 소리

"봄이 왔다규~"

다시 새소리

"봄이 왔다". "봄이 왔다규~"


그럼, 리토르넬로 형식을 잘 생각하시면서, 1악장을 감상해보겠습니다.






음악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들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이를 담고 있는 틀을 듣는 것도, 그러니까 형식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형식으로 음악을 듣다 보면,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즐거움을, 그리고 작곡가들의 재치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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