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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미 May 18. 2020

#00. 인간, 깨닫다.

누군가는 내가 멈춰있는 시간에도 움직인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별안간 새벽에 눈을 떴다.


해가 막 뜨기 시작했는지 푸르스름한 세상이 새삼 낯설었다.

새근새근 소리에 돌아보니 고양이가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조용히 몸을 뒤척이다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 깼어? 깨웠다면 미안해.


야옹-.


이 새벽에 잠도 안 자고, 너도 참 양반은 못된다며 작게 타박하는 듯했다.


그녀의 이리저리 살랑거리는 꼬리가 새벽녘 원인모를 그리움과 함께 나를 간질였다.


다시 눈을 감았으나 잠은 멀리 달아나고 온갖 잡생각만이 나를 방해했다.

그대로 일어나서 창밖을 보고 섰다.

잠시 바람이라도 쐬자.

그렇게 생각하고 창문을 열자마자 축축한 바람이 방 안을 휘저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그제야 귓가에 내려앉은 노이즈가 빗방울들이 창가에 부딪히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몇 분간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작스레 내려간 온도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잠이 얼추 달아났음을 느낀 후 나는 창문을 닫고 기대서서 새벽빛 비친 방의 어스름을 바라보았다.  



정리되지 않은 책상 위에 바람에 눅눅해진 A4용지 여러 장이 어지러이 흩날려 있었다. 어느새 고양이는 그 위에 자리 잡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호박 빛깔 눈동자가 나를 지나쳐 창밖의 자동차들을 보았다.


한 대, 두 대```. 그녀를 따라 나 또한 뭐가 그리 바쁜지 텅 빈 도로를 쌩 달리는 몇 대의 자동차들을 보았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새벽이라는 시간 속에서 오로지 나만이 혼자일 것이라고 외로움과 공허함에 잠식되어 갈 때,

누군가는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상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바쁘다는 것을.



누군가는 내가 멈춰있는 시간에도 움직인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침, 시작의 시간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다.


새벽 향기에 취해 공상에 빠져 있던 중 눈을 감았다 떴더니, 밝아진 실내와 바쁜 경적 소리가 대낮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바삐 오늘의 일정을 훑었다.


다행이다.


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다시금 나른해진 몸을 추스르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침대에 누워 맘껏 보드라움을 즐기다 옆에 놓인 핸드폰을 들었다.

불 꺼진 액정에는 커다란 까치집을 진 여자가 비췄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전원을 켜 지난번 결제해둔 영화를 재생시켰다.

핸드폰은 든 채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수납장에서 라면 한 봉지를 꺼냈다.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익숙한 구조의 부엌을 뒤지며 냄비를 찾아 물을 부었다.  


달그락 소리를 내자마자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어젯밤 나와 궁상을 떨던 내 작은 친구.

그녀였다.


영화 소리, 물 끓는 소리, 주변 소음들을 음악 삼아 그녀와 처음 만났던 그때를 잠시 회상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면,

1년 전 이야기이다.


.

.

.

몸이 아픈 고양이 '모모'

마음이 아픈 인간 '나'가 펼치는 동거 스토리.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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