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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미 May 18. 2020

#01. 고양이, 만나다.

그것은 당신에게 전하는 가장 날것의 진심이었다.




묘연인거지. 널 만나서 정말이지 행운이야.



친구에게 다급한 문자와 함께 전화가 왔다.


"아는 분이 길고양이를 구조했는데, 하필 임신을 했다지 뭐야? 아이까지는 도저히 키울 수 없을 것 같대."


"그래서, 나보고 키우라는 거야? 나 고양이 키워본 적 없어!"


"미안~. 아는데, 여건이 되는 애는 너밖에 없어서.."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더니 결국 나였나 보다.

그렇게 두 달 후 한 장의 사진이 왔다.





가장 작고 힘이 없어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란다.


나마저 데리고 가지 않으면 보호소로 보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그러기는 싫다며 제발 데려가 달라는 애원까지 왔다.


그 모습이 한평생을 이리저리 등 떠밀려 살아온 나와 겹쳐 보여서 반쯤은 충동적으로 입양을 결정했다.


일주일 뒤로 약속을 잡고 급하게 고양이 용품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키우게 된 거, 남부럽지 않게 길러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캣타워, 인형, 사료, 반자동 화장실, 모래..

인터넷을 뒤져가며 후기 좋은 물품은 전부 구입해놓다시피 했다. 평소 보지도 않던 고양이 영상을 보며 고양이와 같이 자고, 노는 꿈까지 꿨더랬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 아침 즈음에 보내드린 주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바짝 마른 입가에마저 박동이 느껴졌다.


-띵동-


문을 열어드리자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이 들어오셨다. 인상 좋으신 어머님의 손에는 작은 케이지가 있었다.


집 곳곳을 구경하시던 그분이 문득 나에게 자신의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슬하에 자식이라고는 출가한 아들밖에 없어 홀로 적적하던 차에 운명처럼 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더랬다. 마치 아는 사이인양 쫓아오는 터에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집까지 고양이를 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묘연이라는 게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길의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낙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작은 케이스의 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손바닥 한 뼘쯤 되려나 싶은 고양이가 자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사실 모모가 고양이보다는 쥐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작달막한 몸집에 꼬리는 또 얼마나 긴 지.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어머님 자신의 집에 너무 많은 고양이가 있어 다른 아이를 더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결국은 나로 하여금 보호소가 아닌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 묘연인 듯하다고.


그러곤 잠든 고양이를 살포시 들어 올려 방석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의 처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낯선 환경에서도 잠을 청하는 것이 퍽 태평스러워 보였다.


그녀를 앞에 두고 분양 확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뭘로 정할 거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빈칸으로 두었다. 이름을 정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내 망설임은 곧 신중함이었다. 그리고 그분께서도 그걸 알아주셨나 보다.



"원래는 모찌라고 불렀었어요."



나는 잠든 그녀가 두 달간 불리던 이름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따라서 모찌라는 이름을 조금 변형해 '모모'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래, 조금 솔직해지자면 내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책을 참 좋아했다.






어머님께선 모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워낙 몸이  약한 아이라 항상 정성껏 챙겨줬음에도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하시며 조금은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리고 당신은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행복하세요."

어머님의 말을 듣자마자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말.


"행복할게요."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는 당신에게 전하는 가장 날것의 진심이었다.

행복할게요.



그렇게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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