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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미 May 19. 2020

#02. 인간, 마주하다.

너의 아틀라스가 소멸하였음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몸이 아픈 고양이



좁디좁은 방 안에

이제야 너랑 나만 남았다.


낯선 곳에서 잘도 잠을 청한다 한 것이 야속하게 너는 우리 둘만 남은 것을 확인하고 몸을 바로 세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작은 것이 혹여나 배가 고프지는 않을까, 화장실을 못 찾지는 않을까 하는 갖가지 걱정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너는,

아직은 미숙한 다리로 엉금엉금 비틀비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게 모모 너는 수많은 상념에 빠진 나를 깨웠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작고 따스한 손(혹은 발)이 내 발끝에 닿았을 때 나는 힘없이 무너져 내려 너의 눈동자에 내 눈을 마주했다.



아, 그것은 떠나온 어미를 그리워하는
소동물의 눈동자였다.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 기어 오던 너의 모습에  가슴이 억죄어 왔다. 홀로 남은 아이는 제 형제들을 잊고 , 어미를 잃고 이 곳으로 온 것이었다.


모모, 너의 세계를 지탱하고 있던 아틀라스가 소멸하였음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창 밖을 거꾸로 바라보는 모모


모모 선천적으로 장이 약한 고양이였다.

먹는 족족 토하거나 설사를 하는 탓에 거리의 아이들보다도 야위어 있었다.

따라서 간식 따위는 먹어서도, 먹을 수도 없었다.

모모가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째 되는 날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 일주일 동안은 참 바빴다.

남들이 고양이와 친해지려 놀아주고 간식을 줄 때 나는 고양이 간병 생활을 했다.


어린 고양이일수록  고양이별로 떠나가버릴 확률이 높다는 말에 나 한 몸 아플 때보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듯했다.


사료는 전 세계 안 먹어 본 사료가 없을 만큼 바꿔보았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모래를 갈았다.

바닥에 미끄러질까 유치한 모양의 매트도 깔아보았으며 잘 때 잘못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 아침 해를 맞이한 게 태반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이 시간이 너무나도 예쁘고 소중했다는 것이다. 특히 우울증 비스무리 한 것을 지닌 나에게는 더욱 가치 있는 시간이었지 싶다.







마음이 아픈 인간



어디서든 밝고 쾌활한 척 지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사실 나는 선천적으로 눈물 많고 내성적이며 소심한 인간이었기에 더 그랬다.

집에 오면 급격히 말 수가 줄고 신경질적이며 예민하게 된 것도 그 때문 이리라.


이른 나이에 영악해져서 세상 살아가는데 싹싹하고 밝은 모습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진실된 우정, 뜨거운 사랑, 숭고한 희생의 가치를 높게 책정하면서도 이 세상은 누구보다 차갑고 냉혹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 연기하며 안으로는 제 실속을 차렸다.


엄마는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충고했으나 나는 내심 자신 있었다. 천진하고 유쾌한 사람인 척하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며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썩어 문드러져만 갔다. 빛 좋은 개살구,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나를 칭하는 말 같았다. 낙천적인 이상주의자 인척 하지만 집에만 오면 이성적으로 살아야 한다며 예민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타고난 성격은 변하지 않는지 슬픈 영화에 목놓아 울고 툭하면 눈물부터 흘리는 감성적인 면모가 강했다.

모든 게 모순이었다.


그랬던 내가 유해진 것은,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은 것은 모모 그녀 덕분이었다.


아픈 이를 돌본다는 것은 그녀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었으므로 다른 것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


홀로 생각의 고리를 돌리고 있자면 모모가 다가와 화장실을 치워달라고, 밥을 달라고 울었다.

그러면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다음 주에 있을 수행평가 따위는 잊고 바로 앞의 그녀에게 집중하게 되는 것이었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압박감은
특히나 아주 작고 여린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오로지 그것만으로도 건전한 부담감을 느끼게 해 준다.

모모라는 이름의 힘일까?

그녀는 그저 미하엘 엔데의 책 '모모'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가만히 앉아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나는 그 앞에서 꼭꼭 숨겨왔던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게 된다.

차마 말하지 못한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 그것은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와 증발하여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인생이라는 책을 읽던 나는 모모의 등장만으로도 깨끗했던 1페이지의 나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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