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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Sep 12. 2020

가을, 사무치도록 한국이 그립다.

한국을 떠나 산다는 것...

청명한 가을 하늘과 거리를 가득 메운 노란 은행잎

차갑고 건조한 겨울의 아침 공기

 산둘레를 자줏빛으로 덮은 진달래꽃 가득한 봄길


내가 18년째 여름나라에 살며 사무치게 그리운 것들이다.


18년 전 나는, 그저 신났었다.

일 년 365일 내가 좋아하는 여름을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봄날 알레르기에 하루 종일 콧물을 흘리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코트 깃을 여미지 않아도 되며,

꽁꽁 언 내리막 빙판길을 넘어질까 봐 뒤뚱거리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나는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 데낄라 선라이즈를 마시며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즐거운 상상만 했었다.

그땐 내가 이토록 산을 그리워하고,

눈을 보고 싶어 할 줄 미처 몰랐었다.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고,

그 계절의 향기가 달라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봄이면 두꺼운 코트를 벗어버리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하늘거리는 봄옷으로 잔뜩 멋을 부리고,

여름밤엔 동네 치킨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치맥을 즐기며 친구들과 바다로의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가을이면 멋들어진 단풍을 뽐내는 환상의 날씨를 즐기며 드라이브를 가고,

겨울이면 입김을 뿜어대며 길거리에서 호호 불어가며 호떡과 어묵을 사 먹는 맛.



그리운 장소에 맘만 먹으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고,

보고 싶은 내 오랜 친구들을 만나 언제든 허물없는 수다를 입이 마를 때까지 떨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땐 몰랐었다.


어느덧 한해 한해 쌓인 나의 타국 생활이,

이젠 내가 한국에서 살아온 날의 삼분의 이를 넘어가며,

한국을 향한 내 그리움은 점점 더 애틋해져 간다.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 적어도 여름은 피한다.

되도록이면 가장 좋은 날씨인 가을을 즐기러 가곤 한다.

늘 밤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 아침 일찍 도착하는 스케줄을 택한다.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 한국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른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해 문밖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 건조하고 싸늘한 한국의 공기를 마주할 때면,  

어서 와- 오랜만이야-

인사를 건네며 나를 와락 감싸 안아 주는 것 같다.



리무진을 타고 가며 창밖으로 보이는 노란 은행나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빼곡한 빌딩 숲의 꽉 막힌 이 도로가 얼마나 반가운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 지난 옛 노래가 얼마나 정겨운지,

나는 막 엄마품을 떠나 놀이방을 갔다 집에 돌아온 아이처럼, 포근한 안정감을 느끼며 그렇게 한국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제 벌써 가을이다.

푸르른 하늘이 드높아지고, 길거리엔 노란 은행잎들이 떨어질 시기.

나는 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국의 가을 공기가 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져 버린 나의 가을 한국행....

나는 지금 간절히 한국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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