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문득 지나간 날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있다.
갑작스레 밀려드는 가슴 먹먹한 그리움에 지나간 일기장, 사진, 편지... 닥치는 대로 찾아 그 시절의 나를, 우리를 회상하며 밤을 지새우는 날...
첫 사 랑
듣기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단어
그의 체육시간만 되면 교실 창틀에 매달려 목이 빠져라 운동장을 내려다 보고,
우연히 교내에서 마주치기라도 한 날은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고 다녔던 그때.
열일곱의 나는 첫눈에 반한 그 선배를 참 요란스럽게도 좋아했었다.
반짝이던 나무 사이의 햇살이 창가를 따뜻하게 비춰주던 봄날, 학교 운동장에 작은 점처럼 보이던 그는 눈부신 햇살보다 더 밝게 빛났었다.
혼자만의 짝사랑인 줄로만 알았던 어느 여름날, 처음으로 그와 단둘이 마주 앉아 그는 내게 수줍게 고백을 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에게 풋풋하고 싱그런 첫사랑이 되었다.
열일곱의 소녀였던 나는, 열여덟 소년이 연보랏빛 종이에 곱게 눌러쓴 손편지를 받아 읽으며 얼마나 행복했었나....
생일날 소년이 건네 준 주황빛 포장지에 곱게 싸인 두 권의 책을 받아 가슴에 꼭 안아 들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가슴 두근거렸던가...
영화관에서 손을 꼭 잡고 팔에 쥐가 나는 걸 참으며 두 시간을 보내도
시험 기간 독서실에 다녀오던 소년이 공중전화로 전화하면 아무 말 없이 동전 떨어지는 소리만 달칵 달칵 들려도 더없이 행복하던 그때.
그 여름날의 푸르름과 싱그런 내음,
가을날의 청명함과 대지를 촉촉이 적시던 가을비까지, 마치 바로 어제 인양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시간 들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작은 상자 안 그의 편지를 찾아내 밤새 읽고 또 읽는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애틋한 첫사랑
불혹이 훌쩍 넘은 이 나이가 되어보니
그 시절의 앳된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풋풋한 우리의 첫사랑이 얼마나 달콤했었는지...
지나간 세월을 야속해하며 그 시절을 추억한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중심에서 한 발짝 벗어난 것 같은 나의 삶도
더없이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한 그와의
아름 다운 추억은 오늘의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첫사랑의 아련함에 한없이 빠져드는 겨울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