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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Oct 25. 2022

욕심에 관하여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엄마.

나에겐 모든 것에 완벽한 딸이 있다.

어려서부터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심지어 외모까지 완벽했던 딸.

그 딸이 태어나기도 전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그 시절, 남편에게 큰소리쳤었다.


" 난 애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며 자식이 부모의 대리만족 대상이 되는걸 전혀 이해 못 하겠어. 그건 그 부모들이 공부를 못했으니까 그런 거 아냐? 못 이룬 꿈을 자식이 이뤄 줄까 하고?

난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만큼 공부를 했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 안 들더라! 난 우리 딸이 음악도 좋아하고, 운동도 잘했으면 좋겠어!"


그 시절 난 자만했다. 공부 공부하며 선행학습에 열 올리고, 어린 자녀를 이리저리 학원으로 돌리는 한국의 엄마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큰소리쳤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난 이렇게나 욕심 많은 욕망 덩어리 엄마가 될 줄 모르고...


아이가 다른 아이와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첫 시작은 프리스쿨이었다.

우리 딸은 생후 8개월부터 걸어 다닐 정도로 발육이 빨랐는데 말은 좀 늦은 편이었던 것 같다.

18개월 무렵 데이케어에서 얼굴에 멍이 들어왔을 때도 자신이 왜 다쳤는지 말로 설명하지 못했었다. 그때는 그 개월 수에는 말을 원래 못 하나 보다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어른처럼 말을 잘하는 또래 아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3살이 되자 프리케이를 가기 시작한 딸은 집에서 한국말만 써서 영어를 아직 잘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워 오는 모든 것들 -특히 수학 부문- 에서 늘 만점을 받았고 1등을 해오곤 했다.

사람 욕심이란 게, 자꾸 1등을 해오니, 어느 날 1등이 아니면 왜 그랬나? 싶고, 늘 1등을 기대하게 됐다.

테니스를 시켜도, 수영을 시켜도, 미술을 시켜도, 발레를 시켜도 늘 같이 시작한 아이들 중 1등을 했고,

모든 선생님들께 어쩜 그렇게 잘하냐는 칭찬을 듣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다른 아이가 딸보다 잘하나 싶으면 그게 못마땅하고 나도 모르게 딸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딸은 늘 학교에서 1등을 하고, 매쓰 클래스는 가장 빠른 트랙으로 앞서갔으며, 하이스쿨 성적은 연평균 99.xx 점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표를 받아오곤 했다.

그런 한편, 플루트 대회마다 상을 받고, 골프 대회에서는 늘 내셔널 대표팀이 되며 나에게 너무도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한 번도 딸에게 무얼 하라고 해야 한다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너무도 잘하는 아이.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딸은 그간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 한다는 스트레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스트레스.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딸을 압박하지 않은 게 아니다.

딸이 좋은 결과를 받아오면 더없이 기뻐했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올 때면 눈에 보이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초에 포커페이스와는 거리가 먼 나는 감정 따위를 숨길 줄 모르고 고스란히 얼굴로 드러낸다.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모두가 알고 만다.

그렇게 딸은 상처를 받고, 노력을 하고, 스트레스와 함께 힘들어하고 있었던 거다.


어느 날, 그런 딸은 폭발했다.

울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어.

엄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어?

엄만 내가 잘 못했을 때 한 번도 괜찮다고 한적 없어.

그래도 괜찮아 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그래서 난 내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야.

난 한 번도 엄마에게 내 진심을 말한 적이 없어.

엄만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눈물이 났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저 딸이 가장 행복하기를 바랐던 건데...

딸이 그런 생각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쓸모없어진 기분이라니....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네게 그 어떤 강요도 하지 않았어.

넌 그냥 언제나 네가 스스로 척척 알아서 하는 그런 딸이었잖아.

너도 좋은 결과를 받으면 행복하고 신나니까 그래서 열심히 한 거잖아.

너를 위한 거였지 나를 위한 게 아니잖아."


다급하게 나 자신을 변호하는 내 말들은 힘을 잃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정말로 딸에게 욕심내지 않은 게 맞을까?

정말로, 딸에게 그 어떤 압박감도 주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부모가 되고,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키우며

나의 행복보다 자식의 행복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지금 딸은 그래서 행복했던 걸까?

나만 행복했던 건 아닐까?


그날,

우린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나도 울고, 딸도 울었다.

딸은 울면서도 내일 있을 시험공부를 했다.

울면서 책을 보고, 숙제를 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 집앞에 세워둔 차에 가서 한참을 엉엉대며 큰소리로 울었다.


예민한 사춘기 딸이 그냥 한번 속풀이 한걸 지도 모른다.

반은 진심, 반은 홧김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두가 진심이지만, 그냥 다시 현실로 돌아온 걸 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날 딸은 열심히  발표 준비를 하고,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스스로 척척 모든 걸 알아서 했다.



그리고,

우린 그 이후, 그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모르는 욕심이 생겨도 꽁꽁 감추고 절대로 드러내지 말고,

잘하거나 못하거나 한결같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끔 속상한 결과를 받으면 다정한 말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엄마.

내 생각이 딸과 달라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딸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엄마.

예민해진 딸이 화풀이를 해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항상 기댈 수 있는 너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엄마.

잔소리하고 싶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있어도 꿀꺽 삼켜 버리고,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엄마.

더 많이 인내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


그런데 아니?


You are my everything.

I love your everything.


네가 잘할 때도, 못할 때도, 다정할 때도, 화를 낼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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