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온지 4개월이 지났다
삶에 엄청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곳으로의 이주.
변화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무조건 피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였는데, 살다 보니 그 큰 일을 벌써 두 번째 벌였다.
나에게 그 첫 번째는 결혼을 하게 되며 남편이 사는 괌으로 갔던 것, 그리고 20년 가까이 살던 괌을 떠나 이곳 샌디에이고로 이사를 온 것이다.
이주를 결정하고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큰 아이는 벌써 11학년을( 한국으로 치면 고2) 올라가는 시점인데, 대입이 얼마 안 남은 이 시기에 이미 이루어 놓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가장 걱정되는 일이었다.
프리케이 4살부터 10학년까지 12년을 다닌 학교에서는 모르는 선생님들이 없었고,
모든 일에 성실하고 열심히 였던 딸은 선생님들의 모범 답안 같은 학생이었다.
거의 모든 시험과 과제에서 엑스트라 크레디트 포함 100점 이상의 성적을 받았고,
이대로 이 학교를 졸업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주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몇 년 뒤로 미뤄지게 되고, 아니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12학년이 되면 원서를 써야 하니 전학을 하긴 안 좋은 시기이고, 그렇게 첫아이가 대학을 가고 나면 둘째가 다시 11학년이 되는 도돌이표.
둘째에겐 9학년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이 적기임이 분명하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수없이 경우의 수를 따지며 노트가 까맣게 되도록 적어가며 생각을 정리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때 딸이 말했다.
' 나는 가고 싶어!
작은 도시에서 벗어나 그곳에서도 내가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경험해 보고 싶어!
어차피 대학을 가면 겪어야 할 일이야. 그때 고생하느니 지금 가서 미리 적응하는 게 낫지!
나는 갈래! '
그렇게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우린 이곳 샌디에이고로 이사를 왔다.
한 학년이 고작 30-40명에 불과하던 괌의 프라이빗 스쿨에서 학년당 700-800 명이 되는 샌디에이고의 퍼블릭 스쿨로 온 아이들은 그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동네 특성상 아시안이 거의 없고, 있어도 중국인뿐인 이곳에서 한국 아이들은 극히 드물었고,
선생님당 담당해야 할 학생의 비율이 너무 많다 보니 선생님은 아이들을 파악할 시간을 갖기 힘들어 보였다.
개학 초기엔 클래스를 찾아가는 것만도 벅차 보일 만큼 엄청난 규모의 캠퍼스였다.
욕심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첫째는 클럽을 8개나 가입하고, 어렸을 때부터 해온 골프팀에도 들어갔다.
예전 학교에 비해 숙제 양이 현저하게 적어 공부하는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에 비해 스포츠에 비중이 큰 학교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수업을 빠지고 골프를 치러 다니느라 바빴고,
그 와중에 밴드 공연도 준비해야 했다.
그럼에도 주말에는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골프 연습할 시간이 생겼고, 나와 함께 동네 카페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실 여유도 있었다.
매일 학교 숙제 따라가기 바빴는데, 주말에 책도 읽고, SAT 공부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었다.
비록 골프 시합 때문에 빼먹은 수업과 테스트를 런치 시간에 메이크업하느라 점심을 못 먹을 때도 많았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딸의 학교 생활은 안정되어 갔다.
그 간, 밴드 첫 공연을 마쳤고, 골프팀은 카운티 우승을 해 다음 레벨의 시합을 준비 중이며, PSAT 시험도 봤고, 요즘은 디베이트 토너먼트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첫째와는 정반대인 둘째는, 몹시 내성적이라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겨 즐거운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발룬티어 클럽의 바이스 프레지던트가 되어 노숙자들에게 나눠줄 음식 주머니를 만들러 다니고,
엔지니어링이나 비디오 필름 같은 이전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흥미로운 수업들을 들으며 새로운 것을 배워가고 있다.
곧 시작될 Boys 골프 시즌을 대비해 주전 팀에 들기 위해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애초 계획했던 대로 그간 일하는 엄마라 하지 못했던 아이들을 서포트하며 지내는 중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올 시간에 맞춰 매일 새로운 간식을 준비하고, 각자의 취향에 맞춰 정성껏 저녁을 준비한다.
딸의 골프 시합장, 디베이트 토너먼트 장으로 몇 시간씩 운전을 해주고,
플루트 수리를 위해 두 시간을 달려 장인을 찾아가기도 했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이제 고속도로를 달려 30-40분 가는 길은 코앞이나 다름없다.
괌에서는 30분 이상 차를 탈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매일 아침 아이들이 학교를 가서 돌아올 때까지는 나의 소중한 자유시간이다.
책을 읽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뒷마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마샬에서 예쁜 주방 용품을 발견하고,
근처 와인샵에서 맘에 드는 와인을 찾아내고...
아직도 계속 새로운 재밌는 일들을 발견하는 중이다.
일 년 내내 여름인 곳에서 살다 이십 년 만에 만난 가을은 싱그럽고 상쾌하다.
새벽엔 너무 추워 잠에서 깨기도 하지만, 미리 장만해둔 히터를 빵빵하게 틀면 따뜻한 공기가 방안을 가득 메우며 다시 소로록 잠에 빠져들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터틀넥을 입을 수 있고, 예쁘게 세팅한 머리가 습기로 늘어지지 않고, 메이크업이 땀으로 지워질 이유가 없는 이곳.
My Brilliant Life in San Die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