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주니어 월드 챔피언쉽 도전기- 골프에 집중하다.
애들이 골프를 시작하게 된 건, 친한 언니의 남편이 골프 교육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다.
골프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박세리와 미셸 위의 세대인 나와 남편은 애들 돌상에 골프공을 놓았었고, 참 우연히도 딸과 아들 둘 다 골프공을 잡았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골프를 시작하게 된 건, 형부의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였다.
한국보다는 좀 더 저렴하게 골프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결혼 전, 막연히 괌에 가면 골프를 칠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동네 연습장에서 몇 달 레슨을 받은 게 다였던 나는, 골프 지식이 별로 없었다.
그 작은 손으로 골프채를 휘두르고 공을 맞춘다는 게 신기했고, 땅의 높낮이와 잔디의 속도를 읽어내며 퍼팅을 준비하는 진지한 아이가 그저 대견했다.
코스의 모양과 벙커 위치 등을 생각하고, 본인의 거리를 계산해서 공의 방향을 정하고
최고의 스코어를 내기 위해 어떻게 칠 것인지 매니지먼트하는 아이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냥 멀리 공을 보내, 홀 속에 넣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하고 계획할게 참 많은 스포츠였다.
어린 나이에도 골프를 그저 좋아하기만 했던 아들과 달리,
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골프는 지루하고, 원하는 대로 공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레슨을 받을 때도 마치 오징어 한 마리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처럼 힘없이 휘청거렸다.
주말에 필드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레슨은 더더욱 싫어했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이상, 어느 정도 레벨에 오를 때까지는 해보자!
어차피 시작했잖아. 언젠가 배워야 하는 걸 지금 배워둔다고 생각하라고 다독이며 그렇게 몇 년을 이어갔다.
그러던 2016년,
골프 코치가 토너먼트에 한번 참가시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딱히 목표가 없어서 흥미를 잃어가나 싶던 찰나,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성취감이 생길 거고, 혹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는다 할지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 같았다.
지기 싫어하고, 경쟁심 많은 딸이 골프에 빠지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참가하게 된 토너먼트가 바로 IMG 주니어 월드 챔피언쉽 퀄리파이어(예선경기)였다.
IMG 주니어 월드 챔피언쉽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매 해 치러지는 세계 주니어 골프대회이다.
타이거 우즈도 걸쳐간 명망 있는 대회로, 각 지역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선수들만 참가할 수 있다.
괌에서의 예선 경기는, 총 6회에 걸쳐 한 달 정도 간격으로 치러지고, 각 토너먼트에서의 성적을 점수로 환산해 총점이 가장 높은 순으로 선수를 뽑는 방식이었다.
마침, 그해 여름 오랫동안 준비했던 캘리포니아 로드트립을 막 다녀왔던 터라,
언제 다시 밟아볼지 모르는 캘리포니아 땅을 다시 갈 수도 있다는 말에 딸은 갑자기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매일 연습을 했다.
주말이면 필드로, 평일에는 학교 마치고 연습장으로, 공을 치고 또 쳤다.
손바닥에 잡힌 물집은 어느새 굳은살로 변해있었다.
괌 대표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11-12세 여자선수는 단 한 명.
그 나이 때의 골프 하는 여자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비교적 경쟁률은 낮았다.
첫 두 경기에서 쉽게 1등을 했고, 내년에도 우리 둘이 캘리포니아를 갈 수 있겠다며 신나게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뒤 두 경기를 내리 지며 갑자기 두 명이 동점이 된 상태.
그렇게 6차 경기까지 가고도 결판이 안나, 결국 추가 경기를 치르고서야 딸은 IMG행 티켓을 따낼 수 있었다.
아들은 9-10세 남자 선수 부문에서 대회를 치렀는데, 대회 며칠 전에야 9살이 되는 아들은, 두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선수들에게 체력적으로 밀려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2017년 4월, 괌 선수단이 확정되고 대회 등록을 했다.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나 혼자 잘할 수 있겠지?
무거운 골프클럽과 풀카트에 여행가방까지... 내가 혼자 그걸 다 옮길 수 있을까?
나 혼자 구글맵을 켜고 운전을 해야 하는데 하이웨이 운전은 잘할 수 있겠지? 설마 길을 못 찾는거 아니야?
오만가지 말도 안 되는 걱정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걱정들을 꾹꾹 누르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주문을 외웠다.
시합 날짜에 맞춰 스케줄을 짰다
대회는 7월 둘째 주 월요일부터였다. 이주쯤 전에 출발해, 시차 적응도 하고 시합장에서 연습도 충분히 해봐야지. 일단, 도착한 첫날은 힘들 테니까 공항 근처에서 묵는게 좋겠어. 참! 렌트를 할곳도 정해야지.
호텔은 시합장과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잡아야 이동시간을 줄이고 최대한 내가 운전하지 않아도 될 거야.
한국 마트와의 동선도 미리 확인해 둬야지! 사 먹는 음식이 질리면 뭔가 간단한 거라도 해 먹어야 할 텐데...
여기서 태어나 한글보다 영어가 더 편한 딸이지만, 된장찌개와 김치 없이는 못 사는 토종 한국 식성을 지닌 딸을 위해 즉석밥과 강된장이 붙어있는 레토르트 식품도 미리 한 박스 구입해뒀다.
드디어 출국하는 날,
딸은 아침부터 안색이 좋질 않았다. 핏기 없는 얼굴에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가뜩이나 마른몸이 더 말라보였다.
직항이 없는 이곳에서 샌디에이고를 가려면 트랜짓 시간 포함 20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저렇게 힘없이 출발해도 될까? 걱정이 됐다.
어디를 가던 늘 네 식구가 함께였는데 아빠, 동생 없이 엄마와 단둘이 멀리 간다는 게 불안한 눈치였다.
처음엔 그저 여행 가는 기분으로 이 대회를 준비했는데, 막상 코앞에 다가오니 세계 각지에서 온 아이들과 시합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부담 갖지 말자.
그냥 좋은 경험 한다고 생각해.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선수들을 만나면, 너의 시야도 분명히 넓어질 거고, 너의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딸을 다독이며 샌디에이고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