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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Aug 25. 2020

네가 행복한 게 엄만 제일 좋아

IMG 주니어 월드 챔피언쉽 도전기 - 샌디에이고에서의 연습

스무 시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샌프란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예정된 시간보다 두 시간 가까이 비행기가 딜레이 되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샌디에이고까지만 가면 되는데.... 이미 괌-도쿄-샌프란의 긴 비행으로 잔뜩 지쳐버린 우리는 당장에라도 누우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상태였다.

샌디에이고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

가뜩이나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딸은 이제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세 번째 비행기를 타고 샌디에이고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면 이제 바짝 긴장할 차례다.

산더미 같은 짐을 모두 찾아 이고 지고 가야 한다. 남편이 없으니 짐을 내리고 옮기는 일은 모두 내 몫이다.

골프 클럽, 풀카트, 두 개의 커다란 여행가방을 모두 찾아 카트 한 개에 간신히 우겨담고, 택시를 잡으러 갔다.

공항 앞에는 택시들이 줄을 서 있었고, 우린 순서에 맞춰 택시를 타고 공항 근처의 첫 번째 호텔로 이동했다.

너무너무 피곤했는데, 십여 분만 가도 되니 정말 다행이었다. 여기서 묵고 가기로 한건 나의 탁월한 선택이었네!  스스로를 칭찬하며 호텔에 도착했고, 방에 올라가자마자 정신없이 샤워를 마치고 우린 쓰러져 버렸다.


눈을 떴다.

깜깜하다.

몇 시인가 시계를 보니 밤 12시다.

완벽히 괌 시간에 맞춰 기상을 해버렸다.

딸 역시 나와 맞춰 일어났다. 우린 배고픔에 여러 가지 음식 얘기를 하다 아무래도 잠을 자긴 무리인 것 같다며 그냥 일어나 버렸다.

창문을 여니 선선한 밤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이틀이 지났다.

딸은 낮 12시가 넘은 이 시간에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고 옆으로 누워있다.

나는 피곤은 해도 이제 대충 억지로 시간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인데,

딸은 전혀 시차 적응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며 컨디션이 바닥이다.

빨리 기운 차려서 연습해야 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좋아하는 거라도 사다 주면 잘 먹을까 싶어 근처의 타이 레스토랑에 가서 똠 양 꿍을 포장해와도, 가장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를 시켜줘도, 혹시 한국음식이면 될까 싶어 한참을 차로 간 한국 음식점에서도 딸은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그 와중에도 이대로 계속 쉬고 있긴 불안하다며 딸이 골프를 치러 가자고 했다.

근처에 갈만한 곳을 검색하다 코로나도 아이랜드에 있는 골프장을 하나 찾았고, 오후에 빈시간을 예약했다.

우려했던 대로 혼자 구글맵을 보며 모르는 길을 운전하는 건 쉽지 않았고, 다리를 건너 바로 꺾어 들어가야 하는 입구를 놓친 나는, 다시 차를 돌려와야했는데, 잠시 차가 끊긴 틈을 타 다리 위의 안전지대로 들어가 무대뽀로 차를 돌렸고, 근처에서 나의 위험천만한 운전을 보고 놀라서 달려온 친절한 덤프트럭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무사히 골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코로나도 골프코스는 예상대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바닷가 근처라 늦은 오후가 되자 칼바람이 불어 매우 추웠다는 것만 빼면 모든 게 좋았다.

함께 조인하게 된 세명의 아저씨들도 좋은 사람들이었고,

아직 컨디션은 못 찾았지만 그래도 골프채를 휘두를 힘이 생긴 딸도 다행이었다.

샌디에이고에서의 첫 골프 라운딩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비로소 딸이 제대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우린 두 번째 숙소인 딸의 시합장 근처 메리엇 레지던스로 이동했다.


딸의 시합장은 Bernardo Heights country Club이었다. 프라이빗 코스로 철저한 회원제 골프장이라, 시합 직전 일주일 정도만 선수들에게 연습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다. 아직 이곳에서 연습이 불가능했던 우리는, 근처의 작은 골프장을 하나 찾았고, 호텔에서 5분 거리의 이 코스에서 매일 연습을 했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골프장에 보이는 주니어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시합날이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일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 드디어 시합장에 입성할 수 있었고, 골프장의 멋진 시설에 우린 매우 만족했다. 

첫 연습 날, 같은 시간 때에 예약한 다른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조인이 되었다.

첫 홀의 첫 샷. 엄청 긴장한 딸의 얼굴이 보였다.

시합도 아닌 연습일 뿐인데도, 함께 경쟁할 선수들과 해보는 연습이라 그런지 불안한 눈치다.

잘 맞지도, 잘 안 맞지도 않은 그저 그런 샷을 치고, 그룹에서 제일 낮은 점수로 첫 연습을 마쳤다.


괌에서 연습했던 것보다 거리가 훨씬 길었다.

오르막도 심해서 공이 구르길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습한 괌과 달리 건조한 사막 기후의 지대라 퍼팅한 공은 한도 끝도 없이 굴러갔다.

하지만 이미 여기 온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기분이 엉망인 딸을 어르고 달래 근처 일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이고, 마트에 들려 좋아하는 간식을 잔뜩 고르게 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지리라...


역시 둘째 날은 좀 더 좋아졌다.

앞으로 쭉 날아가지 못하고 높이 떴다 뚝 떨어지던 티샷도 좋아졌고,

퍼팅도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한결 좋아졌다.

함께 연습하는 선수들과도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즐겁게 운동하고 있었다.

딸은 그날 밤 내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같은 운동을 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꿈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고.

갑자기 좀 더 잘하고 싶어 졌고, 그래서 매해 이런 기분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고 했다.


우린 매일 아침이면 베이글 가게에 가서 갓 구운 따끈한 베이글로 아침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각자의 음료를 한잔씩 챙겨 들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나는 딸을 위해 작은 아이스박스에 각종 과일들을 썰어담고, 딸이 좋아하는 초콜릿과 육포도 챙겨 넣었다.

골프장에 도착하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공을 한 바구니쯤 치며 몸을 풀고,

퍼팅 그린에서 퍼팅도 연습한다.

예약한 시간이 되면 첫 번째 홀로 이동 하고, 하나 둘 함께 치는 선수들이 오면 라운딩이 시작됐다.

매일 그렇게 연습을 했다.


사실 여기서 예기치 못했던 복병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걷기와 밀기였다.

대회에서는 선수가 직접 풀카트에 골프클럽을 싣고, 혼자 밀면서 18홀을 끝내야 한다.

이 대회를 위해 샌디에이고에 도착하자마자 골프마트에 들러 풀카트를 처음 산 우리는, 단 한 번도 카트를 밀어 본적이 없었다. 물론 걸어서 18홀을 돌아본 적도 없었다.

괌에서 연습할 때는, 늘 전동 카트를 타고 골프를 쳤다.

처음으로 카트 없이 걸어서 돌던 날, 나는 온 발바닥이 물집으로 가득 찼다.

처음으로 걷고 미는 딸이 힘들까 봐, 카트는 내가 밀어줬더니 다음날 어깨와 팔이 아프고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그다음 날도 밀고 걷자니, 힘들어하는 나를 본 딸이 자기가 밀겠다며 나는 그냥 걸어오라고만 했다.

평지나 내리막은 괜찮았지만, 언덕이 나오면 죽을 맛이었다.

내 몸 하나 언덕을 올라가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카트까지 밀자니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 공항 근처와 코로나도 골프장은 추웠는데, 여긴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얼마나 더운지...

마른 나뭇가지가 떨어진 길을 걸어갈 때면 사우나 냄새가 난다. 코를 바짝 죄 오는 뜨거운 열기와 건조한 공기가 딱 건식 사우나의 느낌이다. 입술은 바짝 타서 다 말라 갈라지고, 모자와 우산으로 가려도 팔뚝은 이미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나는 중간에 그냥 포기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하지만, 저 가녀린 팔로 카트까지 밀며, 중간 중간 골프채까지 휘두르는 딸은 얼마나 더 힘들까?

대체 이걸 어떻게 참아내고 있는 걸까?

기특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냉큼 사라졌고, 이미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된 발걸음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 돌아와 발바닥을 보니 커다래진 물집이 온통 터져서 피까지 나오고 있었다.

국토순례라도 하는 대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는 딸의 다리를 주물러 주며, 

한국 마트에서 사 온 레토르트 삼계탕을 전기냄비에 보글보글 끓여주었다.

닭요리라면 다 좋아하는 딸은, 다행히도 맛있게 먹어주었고,

나는 매일 삼계탕을 끓여댔다.

가녀린 몸으로 이렇게 힘든 운동을 견뎌내 주는 딸이 너무도 대견했다.

어쩌면 나보다 딸이 더 강한 것 같았다.

이렇게 한 뼘 더 성장한 딸을 보며 자랑스럽고 든든했다.


어떤 결과라도 좋아.

나는 그냥 네가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런 너를 지켜보는 나는 더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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