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 Aug 26. 2020

엄마, 미안해

IMG 주니어 월드 챔피언쉽 도전기 - 강한 멘털과 체력이 필요해.

대회 주간을 앞둔 주말, 선수 등록이 시작되었다.

쌓여가는 연습량만큼, 자신감도 늘어갔다.

딸의 손바닥은 온통 굳은살로 빈틈이 없었고, 그 굳은살이 찢어져 밴드로 감아야 했다.

이제 18홀을 걷는 것도 어느 정도 이골이 나서, 걸을 만 해졌다.

덩달아 나의 허벅지도 단단해지고, 살도 조금 빠진 느낌이었다.


일요일, 라호야 근처의 토리파인 골프장으로 출발했다.

어마어마한 차량이 근처부터 밀려있었고,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라 근처의 공영주차장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걸어가야 했다.

등록처를 찾아가 딸의 이름을 대고, 조별 스케줄표와 기념 선물을 받았다.

IMG 주니어 월드 로고가 그려진 보냉 백과, 골프공, 볼마커 등의 골프용품이 들어있었다.

등록을 마치자, 바로 옆에서 멋진 골프 프로필 사진을 찍어줬다.

이제 개막식까지 아이들은 서로 자국기 모양의 핀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눈다.

괌 출발 전 핀 교환식에 대한 공지를 받고 괌 관광청에서 나눠준 핀을 잘 챙겨 왔고,

아이들은 서로 가져온 것을 친구들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핀뿐만 아니라, 부채, 열쇠고리, 냉장고 자석, 오프너 등 다양한 기념품들을 한 아름 받아 들고

개막식이 진행되는 장소로 이동했다.

주최 측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개막식이 시작되고, 선수단 입장.

매해 전통적으로 이어오는 공군의 에어쇼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푸르른 잔디 위에 앉아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멋진 에어쇼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거렸다.

이 멋진 장소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 꿈같이 느껴졌다.


이제 내일이면 일 년을 준비해 온 결전이 시작된다.

첫날인 월요일은 스코어를 기록하지 않는 최종 연습게임, 그리고 화, 수, 목, 3일간 본 게임이 진행된다.

3일간의 총타수로 등수가 매겨지고, 각 연령대 그룹별로 5등 정도까지 (그룹별로 살짝 차이가 있습니다) 트로피가 주어진다.

나는 딸에게 첫 국제대회니만큼 그저 실수 없이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잘 해내자고만 했다.

실제로 중간에 실격을 당하거나 기권을 하는 선수들도 매해 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든 이 경기에서 딸이 그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즐겁게 경기를 마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연습경기였지만, 다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퍼팅그린 위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간 시합장에서 연습을 하며 매번 한두 타 씩이라도 줄여왔던 딸이, 오늘도 잘해주길 내내 기도하고 기도하며 딸과 함께 걸었다.

모든 걸 태워버릴 듯 해가 유독 뜨거웠던 그 날, 다른 선수들의 풀카트에는 모두 달려있는 우산이 딸의 카트에만 달려있지 않았다.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늘 가뭄상태인 캘리포니아에서 웬 우산이 필요하냐고 묻겠지만,

사실 여기서 우산은 파라솔 대용으로 쓰인다. 18홀의 경기 내내 땡볕을 걸으며 진행되는 운동이라,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이동하고, 또 쉬기도 한다. 풀카트에 의자가 달린 아이들도 있는데, 중간중간 다른 선수가 치는 동안 여기 앉아서 쉬기도 하고, 식사 시간이 걸쳐진 티오프에 출발했다면 그렇게 잠깐씩 앉아서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딸의 카트에만 우산꽂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미 풀카트를 사서 연습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서였다.

한 번도 풀카트를 써본 적이 없던 우리는, 

해가 뜨거워지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우산을 꽂아 펼치는 선수들을 보며, 그제야 우리에게도 우산꽂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카트를 구입했던 골프숍에 전화를 해 우산꽂이를 따로 구입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그 모델은 나온 지 오래된 거라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립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전시 되어있던 것들중 가장 잘 구르는 튼튼한 바퀴를 가진 걸 선택한 건데, 알고 보니 이건 오래된 모델이었던 거다.

풀카트에도 유행이 있고, 각 브랜드별로 우산꽂이며, 음료 꽂이,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의자까지 달 수 있다는걸 그땐 몰랐던 거다. 

이미 사용한 풀카트를 물릴 수도 없으니 선택은 포기밖에 없었다.

그저 너무 뜨거운 날씨가 아니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고, 대회가 시작한 첫날부터 해는 지글지글 무섭게 불타오르며 쏘아대고 있었다.

그 뜨거움을 작은 모자 하나로 간신히 가린 딸이 혹여 일사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내 마음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옆에 있던 한 선수의 엄마가 자기 차까지 가서 우산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비록 우산꽂이가 없어 고정시킬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오늘은 내가 함께 걸으며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다음날,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됐다.

본경기에 들어가면 선수와 부모는 일체 대화를 할 수 없다.

어떤 수신호도 보낼 수 없으며, 걸어갈 때도 일정 거리 이상을 떨어져서 가야 한다.

규정을 위반한 경우 페널티를 받거나 실격이 될 수 있다.

이젠 온전히 딸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된 거다.

두근두근 수도 없이 속으로 기도를 하며 한 홀 한 홀 따라갔다.

어째 처음보다 점점 기운이 빠진 모양새다.

연습할 때보다 샷도 나쁘고, 퍼팅도 들어가질 않는다.

벙커는 왜 또 그렇게 골라서 빠지는 걸까?


답답하고, 화가 나고, 안타깝고, 안쓰러운 오만가지의 감정을 느끼며 화요일, 수요일 이틀의 경기를 끝냈다.

딸은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공은 잘 맞지 않았고, 체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원하는 대로 되질 않아 힘만 잔뜩 들어간 샷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딸의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엄마, 미안해....


마지막 하루만을 앞둔 그날 밤, 딸은 눈물을 흘렸다.

꾹꾹 눌러 담은 쓰레기 봉지가 터져버리듯, 딸의 괴롭고 힘든 마음이 한없이 쏟아져 내렸다.

잘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고...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고...

쏟아지는 눈물을 닦는 딸을 보며 가슴이 아렸다.

힘든 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대회 마지막 날,

딸은 새벽 이른 티오프였다.

아침잠이 많은 딸이 힘들게 일어나, 이미 망쳐버린 시합을 마무리 짓기 위해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이곳에 온 걸 아는 나는,

 '오늘까지만 힘내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해내는 게 중요한 거야. 엄마가 응원할게.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우리 머지게 마무리하자!'

딸이 좋아하는 아사이베리 음료를 스타벅스에서 사서 건네며 마음을 다독여줬다.



마지막 주사위는 던져졌고,

딸은 시작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와의 약속을 잊은 걸까?

오늘만 지나면 끝인데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게 불과 몇 분 전인데,

딸은 어제보다, 그제보다 더 못 치고 있었다.

포기해 버린 걸까?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첫 나인홀을 끝내고 너무 화가 나 그냥 클럽하우스로 돌아와 버렸다.

더 이상 따라 걷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고 못난 엄마다. 못 치고 싶어서 못 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순간 딸은 더한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을 텐데,

이 어리석고 미성숙한 엄마는 그냥 안 보고 싶은 맘에 혼자 클럽하우스로 돌아와 한숨을 몰아쉬며 아이스커피의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댔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너무 무리해서 왔었나 봐.... 급기야 대회에 참가한 걸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날은 쨍하니 뜨거웠고, 하늘을 푸르렀다.

잘 다듬어진 그린은 녹색으로 반짝였고,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끝까지 따라 걷지 않고 주저앉아버린 나 자신이 너무 미워서 와락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지금쯤 우리 딸은 얼마나 다리가 아플까?

엄마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걸 알고 슬퍼하고 있겠지?

포기해 버리고 더 무너지면 어쩌나.....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엄마일까...


이미 놓쳐버린 딸의 팀을 중간에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뒤에는 줄줄이 다른 팀이 이어지고 있었고, 다른 선수들을 방해하지 않고 딸을 따라잡을 방도는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맘을 비우고 딸을 위해 기도하며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다.

페어웨이의 선명한 초록빛이 자꾸만 뿌옇게 보였다.

한없이 서성이며 기다리던 그때, 드디어 저 멀리 딸이 보였다.

내 딸.

딸이 나를 보고 웃는다.

그 힘들었을 시간을 끝까지 참아내고, 드디어 긴 경기를 완주하고,

나를 보고 웃었다.

중간에 가버린 매정한 엄마를 보며 딸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엄마, 나 끝까지 다 해냈어! 잘했지?'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행복한 게 엄만 제일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