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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Nov 16. 2022

골프선수의 엄마로 사는 법

골프맘 입니다.

나의 아이들은 골프선수다.

둘 다 돌상에서 남편의 바람대로 골프공을 잡았었지만, 그 후 골프에 관심을 두진 않았었다.

골 알못(골프를 알지 못하는)인 나는 그저 우연히 친한 언니네서 골프 교육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아이들에게 골프채를 쥐어줬다.

그때 아들은 5살, 딸은 7살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던 딸은 처음엔 친구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좋아하는 듯싶더니, 하나 둘 친구들이 골프를 그만두자 이내 흥미를 잃어갔다. 반면, 누나 따라 덩달아 시작했던 아들은 골프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

드라이빙 레인지 곳곳에 바구니로 타깃을 만들어 두고, 그 바구니를 맞추는 어프로치 연습을 마치 게임처럼 즐겼고, 히팅 백을 치며 스윙의 힘을 기르는 연습도 신나게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둘 다 하이 스쿨러가 되었다.



중간중간 그만두네 마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딸은 내셔널 팀으로 사이판에서 열린 퍼시픽 게임과, 파리에서 열린 월드 아마추어 팀 챔피언쉽에 참가하게 되며 지난   골프 생활중 가장 열심히   해를 보냈다.

골프선수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고, 자긴 그저 취미로, 대학 갈 때 원서에 상 받았단 한두 줄 쓰기 위해 하는 거라고 누누이 강조하곤 했지만, 항상 대회를 앞두곤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는 선수였다.

취미로 골프를 치는 것과 달린, 선수들의 골프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스포츠다.

격하게 뛰고 달리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이유로 골프는 그저 놀이처럼 즐거울 거란 생각이라면 골프 맘이 될 생각은 애초에 접어야 한다.

골프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긴 게임이다. 한 게임이 빨라봐야 4시간 반, 길게는 6시간이 넘게 이어지기도 하는 운동.

취미로 골프장에 가서 전동 카트를 타고 라운딩을 하는 것과 달리, 대회에서 모든 선수는 본인이 직접 풀카트를 손으로 밀면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프로 선수들이야 골프클럽을 들어주는 캐디가 있지만, 아마추어 선수들은 자기가 직접 짊어 지거나 밀면서 18홀의 경기를 마쳐야 한다.

그게 하루면 문제도 아니다. 보통 경기는 짧게는 이틀, 길게는 4일간 이어진다.

즉 4일 연속으로 18홀의 코스를 걷고 밀면서 심리싸움을 해가며 골프를 쳐야 하는 것이다.

어떤 골프장은 평탄한 길이 쭉 이어진 산책길처럼 걷기 쉽고, 홀과 홀 사이의 거리도 짧아 체력소모 없이 쉽게 18홀을 마칠 수 있지만, 어떤 골프장은 이게 등산로인지 골프장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업힐과 다운힐이 심하고, 홀 사이의 거리도 다리 건너고 찻길 건너고 한참 돌고 돌아야 하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곳들도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직접 그 길을 걷고, 클럽을 밀고, 그렇게 시합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골프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체력만큼 중요한 것은 멘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멘털이 나간다는 말. 멘붕. 골프에선 너무 흔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림같이 완벽한 티샷을 쳐놓고, 세컨드샷을 친 게 갑자기 나무속으로 들어간다거나,

그린 앞에 바로 붙인 세컨드샷을 올리려는데 갑자기 타핑을 치며 공이 반대편으로 더 멀리 날아가는 일.

속도와 방향 모두 정확했는데, 알 수 없이 홀컵을 한 바퀴 돌며 들어가는 않는 공.

그런 게 몇 번 이어지며 스코어를 까먹다 보면 멘털은 무너지고, 공을 치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는 상황이 온다.

하지만 골프는 긴 게임이다.

그렇게 무너져선 안된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으면 극복할 수 있는 게 골프이다. 그래서 멘털은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 딸은 학교 팀 State 경기에서 초반 흔들리며 6명의 팀 내에서 5등까지 떨어지며 무너진 적이 있었는데, 멘털을 다잡으며 후반 9홀을 모두 파로 마무리하며 2등으로 끝낸 적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컨트롤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지나간 홀들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매홀을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아이들이 중요한 토너먼트에 참가할 때마다 꼭 갤러리로 따라 걷곤 한다.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5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계속 걸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발바닥엔 물집이 커지고 커지다 굳은살이 생기기 일쑤이고, 다리, 허리 그 어느 한 곳 안 아픈 곳이 없다.

하지만, 더 힘들게 무거운 클럽을 밀며 골프를 치고 있는 내 새끼가 저기 있는데, 맨몸으로 따라 걷는 것쯤은 당연히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날은 모든 공이 홀컵으로 쏙쏙 들어가고, 샷은 하늘을 가르며 쭈욱 가운데로 뻗어가 속이 다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낀다.

매홀 쉴 새 없이 기도를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 걷다가, 좋은 결과를 얻으면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당연히 들어가야 할 공이 홀컵과 멀어지고, 난데없이 공이 물속으로 빠지거나 벙커로 처박히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새어 나온다.

발걸음은 천근만근, 내가 왜 따라 걷고 있나? 가서 쉬고 싶단 생각이 백번도 더 든다.

하지만 지금 아이가 느끼는 기분은 어떨지를 생각하며 기도하며 한 홀 한 홀 따라 걷는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이제 거의 십 년이 되어간다.


이젠 골프장에서 아이들의 골프채를 카트 뒤에 싣고 온통 초록이 가득한 길을 달리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연습하는 아이들을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며, 가끔 노을 지는 모습이나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면 행복함이 몽글몽글 올라온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든다.

늘 좋은 결과만 얻는 건 아니지만, 때론 좌절도 하고, 실패도 맛보면서, 다시 극복하고, 성취해 나가는 모습들이 참으로 대견하고 기특하다.

그런 아이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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