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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Dec 16. 2022

어떤 기억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1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이거 이쁘다. 이게 좋겠어!

친구의 결혼선물을 고르는 중이었다.

대학 동창중 가장 먼저 결혼을 하는 내 친구. 결혼은 생각도 없다더니, 아이러니하게도 졸업과 동시에 가장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몇 달 만에 만난 대학 동창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다.

“ 어머 오랜만이다~ 넌 언제 결혼해? 너도 남자 친구랑 곧 결혼한다고 들리던데…”

“ 잘 지내지? 아유~ 결혼은 무슨.. 난 아직 아니야. “

둥근 연회 테이블에 앉아 식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인사를 나눴다,

곧 식은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이 결혼식이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딋풀이 자리였다.

식장 근처의 호프집에 동창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맥주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건너편 저 끝에 그가 있었다.

왠지 눈을 마주칠 수 없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와 나는 같은 과 동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와 친하지 않았다, 그저 60 명 정도 되는 동기 중의 한명일뿐, 대화를 나누거나, 밥을 먹거나 가까이 지낸 적은 없었다,

딱 한번 그와 같은 실험 조가 된 적이 있었고, 선배가 사주는 술자리에 몇 번 동행한 것이 전부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머라이어 캐리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

그러다 대학 3학년 봄,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복학생 선배들과 어울려 술 마시던 자리에서 무슨 이유 이선지 그에게 관심이 갔다,

‘ 우리 과에 저런 애도 있었네? ‘ 호기심이 생겼다.

자꾸만 시선이 가고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거기까지…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나의 호감은 시간이 가며 흐려져걌고, 그 해 여름 나는 오랜 연인과의 이별 후 새로운 사랑에 빠져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다시 가까이서 그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자꾸 시선이 갔다.

다른 동기들과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이야기하면서 유독 그 애와는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흘낏 흘낏 안 보는 척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1차에서 2차, 3차로 이어지며 하나 둘 자리를 떠났고, 마지막으로 남은 네 명 속에 그가 있고 내가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던 그날, 술자리를 마치고 다 함께 자리를 나서며 그와 나는 동네가 같다는 이유로 함께 택시를 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택시 안에서 우린 말없이 앉아 있었다.

우리 집을 거의 다 와갈 무렵, 아무 말 없던 그가 다급히 내게 전화번호를 물었다.

나는 번호를 알려주고, 그의 번호를 저장했다.

야속한 택시는 어느새 우리 집 앞에 도착했고, 나를 데려다준 그는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그날 밤, 밤 새 그의 얼굴이 천장을 맴돌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가 내 전화번호를 물은 이유가 뭘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냥... 동기니까... 물을 수 있는 건가?

내가 또 오버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그날 걔 너무 멋있었지? 나 완전 팬 된 거 있지!!!"

친구의 결혼식 뒤풀이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4명 중 한 명이었던 친구가 호들갑을 떨며 내게 말했다.

나는 내 마음을 들키기 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하며

" 그러게... 멋있더라!'

친구에게 맞장구를 쳤다.

그날 이후, 머릿속에서 그가 떠나질 않았다.

그 사이 그와 몇 번의 안부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문자도 몇 번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 우리 주말에 다 같이 모여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할까?"

갑작스러운 친구의 제안에 가슴이 콩닥 이 기 시작했다.

'너무 좋지! 누구누구 부를 거야?'



주말 아침.

결혼식 이후 그를 처음 보는 날이다.

몇 명의 동기들이 만나기로 한 그날, 그 도 온다고 한다.

나는 저녁에 있을 모임을 위해 아침부터 정성 들여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골랐다.

시간은 왜 이리 더디게 흐르는지, 아직도 저녁이 되려면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가 늦는다.

이러다 안 오는 거 아니야?

잔뜩 부풀었던 내 맘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자꾸만 쪼그라들고 있었다.

벌써 약속시간이 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다들 신나게 술잔을 부딪치지만 나는 하나도 신이 나지 않는다.

이럴 거면, 오지 않았을 텐데....

하나도 재미가 없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가 들어선다.

하얀 달빛을 뒤로하고 환하게 웃으며 그가 온다.


그 이후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얼마나 마셨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날도 우린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고, 그는 나를 데려다주고 갔다.

친구의 말로는 잔뜩 하이퍼 된 내가 그와 러브샷을 하자고 졸랐고,

잔뜩 취한 그가 매우 귀여웠었다고 한다.

아... 창피하다.


그 이후, 우린 매주 모임을 가졌다.

어느 날은 강남역에서, 어느 날은 압구정에서, 어느 날은 종로에서..

그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일주일을 기다렸고, 내 맘은 온통 그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절대 겉으로 내색한 적은 없었다. 마음속에 꽁꽁 숨긴 채 그에 대한 마음을 점점 키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모임을 가지던 어느 날, 그날도 거하게 취한 우린 술자리를 마치고 함께 일어섰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우린 바로 택시를 타지 않고 걷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초봄의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반짝이는 밤길을 함께 걸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때... 화장실이 급한 건지...

맥주를 그렇게나 잔뜩 마셨으면서 왜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걷다 말고 근처의 화장실을 찾아야겠다는 나의 말에 그는 내게 잠시 기다리란 말을 남기곤 이 건물 저 건물을 다니며 열려있는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다정한 그 모습에 나의 가슴은 더 크게 콩닥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날 쌀쌀한 밤공기를 맞으며 한참을 걸었고, 더 이상 걷기 힘든 길이 나오고서야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언제나와 다름없는 모임과 술자리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와 함께 걷던 그 길,

그가 나를 위해 다급히 화장실을 찾던 모습,

어쩌면 커져가는 이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어쩌면...



드디어 기다리던 주말이다.

친구는 피부가 뒤집어져서 이번 주는 외출을 자제해야겠다며 모임을 캔슬하겠다고 했다.

오늘만을 기다리며 한주를 보냈는데,,, 다시 또 한주를 기다려야 한다니...

그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단둘이 만나자고 불쑥 연락을 할 용기는 내게 없었다.

지금쯤이면 다정한 그의 미소를 보며 두근거리고 있을 나인데,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하며 음악이나 들으련다...

그런데, 그때 벨이 울린다.

욕조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나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다.

그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여보세요?'

'안녕- 나야. 그냥 집에 가다가.... 생각나서 전화했어.'

두근두근. 내 심장소리가 전화기를 넘어 그의 귀에까지 들릴까 봐 걱정이 된다.

나는 물을 뚝뚝 흘리며 전화기를 들고 그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방바닥을 적시고 있었지만, 절대 그에게 나는 지금 반신욕중에 물을 흘리며 전화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별 중요치 않은 이야기를 마치고 막 전화를 끊을 무렵 그가 말했다,

" 지금 너무 늦었나? 우리 술 한잔 할까?"


눈앞에 별무리가 지나간다.

이건 아직 상상해 보지 못했던 상황이다.

머릿속으로 잽싸게 시간을 계산해본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려면 최소 몇 분이 필요하지?

그는 곧 우리 동네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전화를 끊었고, 나는 빛의 속도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와 단둘이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살면서 맞이하는 최고로 행복한 순간들 중 하나로 이 날도 분명 포함될 것이다.

그저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즐겁고 행복했던 내가

그와 단둘이 이렇게 앉아있다니...


술에 취하고 행복에 취한 나는 그와 놀이터에 앉아 있었다.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조금이라도 더 그와 함께 있고 싶은데...

어쩌면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날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밤이 되며 쌀쌀한 바람이 불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춥다...' 별생각 없이 내뱉은 나의 말에 그가 겉에 걸친 셔츠를 벗어 내 어깨에 둘러 준다.

몽글몽글 - 가슴속에 뽀얀 하트 모양 구름이 솟아나는 기분이다.

술기운에, 행복감에 몽롱 해진 기분으로 무거워진 머리를 잠시 그의 어깨에 기대었을 때,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게 느껴진다.

앗... 이건...

내가 채 깨닫기도 전에 그의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머릿속에 별이 반짝이고, 파랑새가 노래하는 기분이 바로 이런 거겠지...

이제 그도 내게 빠져든 거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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