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 서사에 대하여.
나는 x세대다. 우리가 20대 초반이던 90년대 초반, 배꼽티 (지금은 크롭티), 길바닥 청소 바지 (지금은 오버핏 팬츠), 건빵주머니 바지 (지금은 카고 팬츠), 곱창 밴드 (지금은 스크런치), 통굽 구두 (지금은 플랫폼)을 신고 압구정 로데오를 다니며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인터뷰를 하던, 당시 어른들에게는 ‘삐삐를 차고 다니며 향락 문화를 즐기며 자기주장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해 대는 발칙한 세대’로 뉴스를 장식하던 바로 그 세대다.
그 x 세대가 지금은 40대 중반-50대 중반이 되면서 지금의 2-30대 (이른바 민지들 - MZ 세대)에게 “꼰대”로 불리는 세대가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민지들은 인터넷에서 90년대 x 세대들 인터뷰나 뉴스를 보면서 와 쿨하다 멋지다가 또 유행이 되고 있기도 하다. SNL에선 이를 흉내 낸 코너가 인기를 끌고 있고 요즘 w concept이나 29cm 같은 트렌디 쇼핑몰에선 90년대 스타일이 핫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ㄲ지금 x 세대는 꼰대라서 싫지만 30년 전 꼰대들이 입고 말하고 놀던 방식은 쿨하게 보이는 걸까. 그냥 젊은이는 젊은이에게 끌리는 걸까.
우리 세대가 사회 초년생 - 주니어이던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우린 모두들 기업의 임원이나 CEO를 꿈꿨다. 그래서 미국 top MBA로 가는 것이 한동안 엄청난 유행이었다. (무려 ‘top MBA로 가는 길’ 이란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외국계 회사 3-4년 다니다가, 미국 top MBA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대기업 기획조정실이나 외국계 회사 management track을 통해서 젊은 임원이 되는 것이 많은 주니어들의 꿈이었다. 당시엔 임원들이 누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국내 대기업 임원이 더욱 누리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 당시엔 “전관예우”라는 것도 있어서, 대기업 임원으로 퇴임하면 먹고사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으니까. 외국계 임원들도 비슷하게 누리는 것들이 많았다. 한국에 expat 지사장으로 오는 사람들은 기사, 비서는 기본이고 남산의 서울클럽이나 특급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은 기본 패키디로 주어졌던 때이다. (지금은 많은 혜택? 들이 축소된 곳이 많다) 하는 일도 대부분 지시하고, 보고 받고 결제하는 것이었지 임원이 직접 서류를 작성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때이다. (아, 물론 광고대행사나 홍보 대행사 임원들은 중요한 경쟁 피티 때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물론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아랫것들 - x 세대- 이 날밤 패고 만드는 것이 당연했고.)
그래서 취업 전에는 기존 질서에 대항하고 거침없던 x세대이지만, 조직에 들어가고 나서는 군대식 위계질서를 따르며 뼈를 갈아 날밤을 패고, 선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면서 윗전 눈에 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워킹맘의 현실은 더욱 고달팠다. 지금처럼 1년 육아 휴직은커녕, 출산 휴가 2개월에서 3개월로 늘어났다고 남자 동료들이 임신한 여자 직원들을 대 놓고 비방해도 반박은커녕 죄의식만 느끼던 때였다. 100일도 안 된 아이를 남의 손이나 할머니 손에 맡겨 놓고 (어린이 집이란 존재도 없었다) 출근하면 회사에서는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일해야 “프로답다”라는 평가를 받던 때이다.
그렇게 존버해서 조직의 임원이나 상급 리더가 된 지금. 우리 세대가 봐왔던 “여유 있고 누리는 임원“은 없다. 누구보다 많이 읽어야 하는 서류. 누구보다 많이 책임지고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업무. 성과는 디폴트이고 직원들의 동기 부여, mz 세대들이 회사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업무 환경과 문화도 ‘당연히’ 만들어야 하고,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들도 살펴야 하며, 직원들 간의 갈등 중재도 해야 한다. 이렇게 직원 모두가 임원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지고 임원의 책임이 많아질수록, 똑똑한 요즘 젊은 mz 세대들은 피플 매니저나 임원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냥 individual contributor 로서 내게 주어진 “확실한 업무” -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매니저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이 ‘명확한 r&r (roles & responsibilities)’이다 - 를 해냈을 때 주어지는 ‘공정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임원이나 피플매니저가 되고 싶지 않아 한다면, 조직의 관리는 누가 할 것이며, 지금 mz 세대가 중장년층이 되고 그 이후 알파세대가 조직의 주니어가 되면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텐데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mz 세대들도, 현재 조직의 관리자인 x 세대들도 깊게 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요즘은 웬만한 기업에서는 ‘360도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과정에서 더욱 충격과 상처를 받는 것은 대개 관리자들이다. 관리자들은 주니어 시절을 거쳐 지금 자리에 왔으니 주니어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줄 때도 주니어들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주니어들은 아무래도 관리자들에게 공감보다는 바라는 것들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관리자들이 본인들의 팀원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운함도 들 것이다. 360도 피드백이란 제도는 조직 발전을 위해서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은 건강한 제도이자 문화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주니어, 팀원들은 무의식적으로 (아니면 의식적으로?) 아, 나는 나중에 저 관리자 자리에서 이렇게 어려운 피드백들을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젊은 세대들이 승진이나 피플 매니저 (관리자)가 되는 것을 기피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누구보다 싫은 ”꼰대 관리자“ 가 되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현상은, “꼰대”를 비난하는 가운데 “어른”에 대한 갈급함은 요즘 mz 세대들이 더 큰 것 같다. 여러 학습 플랫폼마다 광클 마감된다는 멘토링 (멘토들 대부분은 x 세대이다), 취업이든 자격증이든 선배들의 노하우를 듣는 데 진심인 현상들, 대학 강의는 안 들어가도 기업 임원이 된 선배들의 특강은 미어터지고 있으니 말이다.
꼰대는 싫지만 기대고 싶은 “진짜 어른” 은 누구보다 필요로 하는 세대가 지금의 mz세대가 아닐까.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어려운 지금 mz 세대들의 상황을 만든 것은 어쩌면 우리 x 세대일 수 있다. 우리가 좀 더 부지런하게,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을 더욱 했더라면, 그들에게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90년대 x세대들의 전형이었던 영화 리얼리티 바이츠의 한 장면. 위노나 라이더와 에단 호크의 젊음이 지금 보면 낯설면서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