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세대의 가치를 살아가지 못하는 중간층 사람들
짐노페디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에릭 사티. 1865년에 태어나 1925년에 사망했으니 두 세기를 살다 간, 기행을 일삼았던 은둔의 작곡가. 당시의 클래식 악곡과는 다른 멜로디라인과 뜻을 알 수 없는 제목들을 붙인 곡을 만든 에릭 사티가 남긴 말 중 하나인 “나는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게 태어났다”라는 말이 2023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의미 있게 다가온다.
모 아니면 도, 왼쪽 아니면 오른쪽, 우리 편 아니면 남의 편 - 이렇게 이분화하는 것도 모자라 MBTI로 16개의 레이블을 만들어 소속감에 안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혹시 ”나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무수한 집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라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 있을까? 어디에라도 속할까 싶어 MBTI 무료 테스트도 여러 번 해보고, 과잠이든 단체티이든 입어보고, 이 세상 어느 집단에서라도 정상으로 어울리고 싶어 애써봤지만, 그리고 물론 외향적인 경우에는 괜찮은 척하고 집단이 원하는 대로 어울릴 수도 있지만, 아 너무 외롭다라고 느끼는 사람들, 있을까?
“문틈에 낀 사람들”이라고 불렀던 모임이 있“었 “다. 과거형인 이유는 구성원들 모두가 어중간한 중간계에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각자의 중간계에서 또 서로 섞이지 못하고 어딘가에서 각자의 중간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틈에 낀 사람들 “ 은 어떤 모임이냐 하면, 학창 시절에 성적은 잘 나오고 큰 사고는 안 치는 ‘우등생’이었으나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은 아닌 사람들. (몸은 교실에 있지만 머리는 복도에 나가 놀고 싶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계 인간들). 대학 다닐 때에는 굳이 남의 과나 남의 대학 앞에 가서 노는 사람들. 회사에선 일을 못하진 않지만 굳이 그룹 계열사 야구팀의 라이벌 팀을 응원하거나, 회식은 나갔는데 부서장 옆에서 맞춰 주기보다는 편한 사람들하고만 술 마시는 사람들.
이쯤 쓰고 보니 이중 인격자들이거나 사회 부적응자들 같기도 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이런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우리 세대의 통상 가치는 웬만한 대학을 나와 웬만한 회사를 다니며 4인 가족을 이루고 수도권 아파트 30평대 이상에 살며 중형차 이상을 타고 (흰색, 검은색, 은색 중 하나) 종교를 갖고 있고, 지나친 정치색은 띄어선 안되며, 단일 민족인 한민족이 자랑스럽고, LGBT는 엘지 계열사인 그런 가치인데 말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세상에, 웬만한 직업을 갖고 싶지는 않고 굳이 복작거리는 아파트에 살고 싶지 않고 차도 좀 다른 종류로 타고 싶고, 종교나 정치의 자유는 당연하며, 인구가 주는 마당에 왜 아직도 국적으로 차별을 하며 (화이트 프리빌리지가 아직도 먹히는 한국) 다문화 가정이나 난민을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LGBT와 관련한 의견을 회사나 친구들에게 말했다간 갑분싸 되는 분위기가 거북한 중간계 사람들 중 하나인 나는 참 외롭다, 이 말이다.
이상 오늘의 두서없는 투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