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vvy Dec 24. 2023

K 콘텐츠가 되는 이유

한국인의 이야기꾼 DNA

이제 말하면 입만 아픈 오징어 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무빙, 더 글로리의 세계적 히트받고, “한국” “k” 레이블이 붙은 로맨틱 코미디는 왠만한면 일본과 동남아, 라틴 아메리카 흥행은 당연한 현상이 된 지 꽤 오래이다. 넷플릭스 같은 유료 스트리밍 OTT와, 이 오리지널 스토리들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큐레이션 해서 각 나라의 문화에 맞게 소개하는 유튜브, 틱톡 같은 UGC 소셜 플랫폼이 코비드라는 특수 상황 속에 폭발적 성장을 한 환경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할리우드도 뚫기 어려웠던 세계 각국의 ‘안방극장’ (나 옛날 사람)을 차지한 것이 한국 콘텐츠, 드라마일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아니 도대체 왜, 한국산 드라마 (영화도 세계적 흥행을 한 작품들이 몇 있지만 드라마에는 못 미친다)들이 냈다 하면 이렇게 전 세계 거실의 모니터를 장악하는 것일까. 한국 창작자들의 “이야기”는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일까.


‘이야기’는 구전의 형태로, 그리고 문자가 발명된 후엔 인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형적 요소일 것이다. 지역별로 유사성을 띄는 “선녀와 나무꾼” 같은 원형적 서사들이 한국, 중국, 일본뿐 아니라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도 비슷한 서사로 오랫동안 구전되어 왔다는 것을 보면 “이야기”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받고 그를 전파하는 것은 정말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인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가 2020년대에 이렇게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모든 한국인들이 “드라마타이즈”의 천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 사람들만큼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대하소설이다 “를 입에 달고 살며,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자기 상황을 드라마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 포함) 모든 순간을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분이 좀 좋은 날이면 옷을 입으며 ”내 양말~ 맨날 신던 그 양말~ 어디로 갔나~“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인스타에서 맘에 들어서 찍어 놓았던 그 남자 (친구 지인) 피드에 내가 잘 가는 카페 사진이 올라온 건 나 보라고 올린 것이며, 오늘 좀 설레고 기분 좋았는데 오늘까지 기한인 보고서를 달라고 하는 부장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꼰대이고, 꼰대가 기분 잡쳤으니 소주 한잔으로 마무리하는 나의 드라마 같은 인생.

이렇게 “나”의 감정의 드라마가 중요한 우리.


그래서 한국 드라마들은 외국 드라마들과 달리 주인공이 뚜렷하고 (남주, 여주) 조연은 확실히 조연이다. 주인공이 여럿이면 “내”가 그 캐릭터에 감정이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드라마들 중에도 주인공이 여럿이고 플롯이 입체적인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드라마도 있지만, 작품성은 인정받았겠으나 여러 사람을 “몰입”하게 하진 못했다. 한국 드라마의 조연과 상황들은 주연들을 확실한 갈등과 고난에 빠지게 하고, 주인공이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을 “나”라는 1인칭 시점에 빠지기 쉽도록 만들어 주는 보조적 장치일 뿐이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90년대, 2000년대에도 한국 드라마의 스토리와 구성은 비슷했다. 그런데 왜 2020년대 들어서 갑자기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을까.


코로나 이전, 특히 80년대-2000년대까지는 (몇 번의 고비들은 있었으나), 냉전, 냉전 종식, 테크 산업 등과 함께 인간 역사에서 보기 드문 고성장의 날들이 지속되면서 할리우드이 고도로 계산한, 절제된 스토리가 더욱 먹히지 않았을까. 내 삶이 팍팍하거나 드라마일 필요가 없고 여유가 있으니, 콘텐츠가 내 삶을 달래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하나의 오락, 레저였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주인공, 그 하나로서 시뮬레이션하고 빠질 수 있는 컨트롤된 스토리가 환영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2020년대는 혼돈과 불안, 결핍의 시대이다. 이제는 더 이상 미국도 중국도 성장하지 않으며 테크 기업들은 구조 조정에 여념이 없는 불안의 시대. 전 세계인들이 모두 “드라마 같은 내 인생”을 살고 있고 그런 “내” 감정을 이입해서 위로받고 싶어 하는 시대이다. 그런 “위로에의 필요”가, 이입이 쉽고 주인공이 역경과 갈등을 시원하게 이겨내며, 현실에 없지만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주는 케이 드라마,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히트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이상 오늘의 허접 분석 끝.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게 태어났다, 에릭사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