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3.0 시대, 슈퍼볼 광고는 어떤 의미인가.
지난번 글에서는 슈퍼볼의 어그로, 하프타임 쇼에 대해 썰을 풀어 보았다. 사실 하프타임 쇼는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는 그 자체만으로는 출연하는 뮤지션에게도, 협찬하는 광고주에게도 그다지 "남는 장사"는 아니다. 아마 가장 이익을 보는 건 NFL 일 듯. 해프타임쇼 연출과 스케일은 해당뮤지션들의 본 공연 스케일과 맞먹는, 아니 어쩌면 더 큰 스케일인데, 이 무대를 꾸미는 데에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출연료는 0원이다. 첫 하프타임쇼는 지역 대학교의 마칭 밴드들이 재능기부처럼 진행했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스타 뮤지션들과 글로벌 브랜드들이 줄을 섰던 것일까? 그건 슈퍼볼 라이브 시청률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시청률의 2배라고 하니, 미국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나 뮤지션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내가 지금 과거형으로 쓰고 있는 이유는, 카더라 통신이긴 하지만, 인터넷 매체의 폭발적 성장으로 (특히 코로나를 기점으로) 슈퍼볼 라이브 시청률이 예전만 못하게 되면서 뮤지션들도 열정이 시들해지고 광고주들도 흥미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music" 이 중요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중의 하나인 펩시도 2022년까지만 슈퍼볼 하프타임 협찬을 진행했었고. 물론 하프타임이 social media와 인터넷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위력은 어쩌면 방송 라이브의 위력보다 클 순 있지만, ROI (Return On Investment)를 생각하면 예전만큼의 재미는 못 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슈퍼 스타보다는 "예전" 슈퍼스타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럼 광고는 어떨까. 매해 슈퍼볼 시즌만 되면 늘 나오는 헤드라인. "올해 슈퍼볼 광고는 30초에 얼마". 2024년 슈퍼볼 광고는 30초에 700만 불 (93억 정도)이었는데 이건 미국 전 지역에 광고하는 스폿 기준 금액이다. 아무리 미국이 땅이 크고 경제력 있는 인구가 많다고 하지만 30초에 700만 불이라면, 웬만한 미국 브랜드들의 1년 마케팅 예산을 훨씬 웃돌 것이다. 그래도 매해 완판되는 걸 보면, 웹 3.0의 시대이지만 광고 스폿 자체의 미디어 효과 (GRP, Gross Rating Point - 광고 시청률 총합- 등) 뿐 아니라 "우리 브랜드 슈퍼볼에 광고했어요"라는 halo effect (후광 효과)도 아직은 굳건한 모양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슈퍼볼 광고는 "광고비"만 스폿라잇을 받아온 것 같은 건 나만의 생각일까? 슈퍼볼은 광고 금액도 금액이지만, 각 브랜드와 광고 에이젼시들이 칼을 갈고 출전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월드컵 결승전 같은 곳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언급이 슈퍼볼에 대한 담화에서 사라졌다. 칸 라이언이나 클리오 등이 다소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크리에이티브적이라 출품용 광고를 따로 만들거나 주로 공익 광고들이 집중을 받는 것에 비하면, 슈퍼볼 광고는 미국 한정이긴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쳐서 그것이 결국 브랜드의 매출과 브랜드 이미지 가치 재고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바로 측정 가능" 하기 때문에 전 세계 마케터들과 광고인들 뿐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도 집중되었는데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리고 예전에 동료들과 "와 이번 슈퍼볼 광고 그거 봤어?" 하고 감탄하며 우린 언제 이런 광고 만들어보나 머리 쥐어뜯으며 스터디하던 슈퍼볼 광고들은:
1. 2011년 폭스바겐 "더 포스" The force
제품의 포지셔닝 (가족을 위한 세단), 소비자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브랜드 스토리 (스타워즈와 사랑하는 아이), 그리고 브랜드와 제품을 가리지 않는 유머. (역시 나의 포스는 통했어!) 13년이 지난 지금 봐도 슈퍼볼 광고뿐 아니라 광고 역사상 브랜드 이미지 제고, 인지도 상승 그리고 매출 견인까지 한 훌륭한 사례가 아닐까.
그런데 2024년 슈퍼볼 폭스바겐 광고는 뭔가 심심하다. 베이비 부머와 엑스 세대에게 추억팔이를 하는 것 같아서, 안쓰런 마음까지 든다. 제작비가 부족했던 걸까.
요즘은 이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광고 메시지가 왜 드물까. 젠더 감수성은 2024년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숙제이지만, 10년 전인 2015년 Always (피앤지의 여성생리대 브랜드)의 "#Like a girl" 캠페인은 미국인들 뿐 아니라 마케터들,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광고이다. 편견이란 것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 무의식에 자리 잡은 편견이 여성인 소녀들조차 "여자다움"이란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서 잠재력을 부정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각성하게 해 준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젠더 감수성, 성역할 고정관념을 바꾸려는 목소리가 커지고 관련된 캠페인들도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3. 1980 Coca-Cola "Mean Joe Green"
1980년 광고라 당시의 슈퍼볼 광고에 대한 평가는 겪지 못했지만, 이 광고가 여러모로 역사적인 광고임은 마케터들은 알 것 같다. 나는 코카-콜라에서 마케팅 업무를 할 때 워크숍에서 이 광고를 처음 접했는데 전율과 함께 이런 깨어 있는 목소리를 내어 온 브랜드의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뽕이 차오르면서 마케팅에 뼈를 묻으리라 다짐했었다. (TMI 죄송합니다)
"Mean"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미식축구 선수 조 그린이 모델인데, 당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스타였음에도 흑인이었기 때문에 여러 제약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코카-콜라에서 조 그린을 첫 흑인 단독 광고 모델로 기용했고, 백인 소년과 함께 등장시켰는데 1980년 당시에는 파격을 넘어서 매우 controversal 한 광고였다.
슈퍼볼 광고 명예의 전당뿐 아니라, 가장 자주 언급된 광고 케이스 중의 하나일 애플의 "1984". 1984년 슈퍼볼에서 광고를 집행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도 그려진, 빅브라더가 인간성을 말살하는 1984년.
"혁신"이 브랜드의 DNA 인 애플, 애플의 혁신이 무엇인지를 클리어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는 무표정한 인간들의 군상이 40년이 지난 2024년 지금도 가깝게 다가온다. 애플의 맥킨토시처럼 우리를 비인간화에서 구해 줄 혁신을 가져 올 브랜드, 2024년에는 누구일까.
이렇게 울림이 있고,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브랜드의 정교한 '메시지'를 다시 듣고 싶다. 아 그렇다고 멋진 말만 하라는 것은 아니고, 당연히 매출이 디폴트이니 매출을 자발적으로 불러일으킬 '세련된 메시지' 맗이다. 소비자가 '내가 스스로 판단해서 이 브랜드를 선택한다'라고 믿도록 '자연스러운' 기술을 쓰는 브랜드 광고 말이다.
아, 그리고 이 글의 썸네일이 왜 구 칸예, 현 예일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올해 슈퍼볼 "광고전" 의 승자는 칸예라고 생각된다. 미국 전지역이 아닌 몇개 주에만 방영되었지만, 아무튼 비싼 슈퍼볼 광고 매체비에 돈을 다 쓴 칸예는 제작비가 없어서 차 뒷자리에서 핸드폰으로 허접하게 몇 마디를 녹화했고 yeezy.com 에 오면 스니커즈랑 물건들 많을 거야 라는 헤드카피를 남겼다. 방문자 폭발한 yeezy.com 에 정작 스니커즈는 없었다는, 낚시 또는 재고 관리의 실패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이럴 효과만큼은 일등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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