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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vvy May 06. 2024

나 아니면 회사 안 돌아가

더닝 크루거 신드롬

"나 아니면 우리 회사 큰일 나. 중요한 자료를 어디에 저장해 두었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중요한 프로젝트의 히스토리는 내가 맥락까지 다 알고 있거든" 

"이직하고 싶은데, 우리 이사님이 나 엄청 잡을 거라서 부담되서 이직 생각도 못하겠네. 아 정말 이놈의 회사...우리 이사님은 . 나 없으면 데일리 매출도 잘 모르는데.. 이런 거 보면 회사에 임원들이 왜 있는지 모르겠단 말야. 일은 실무가 다 하는데" 

"이번 제품은 영업에서 제대로 밀어 주기만 했어도 대박쳤을 텐데. 내가 마케팅 플랜을 얼마나 기깔나게 짰는데!" 

동료들과 담배피면서, 친구들과 술마시면서, 아니면 혼자서 퇴근하면서 이런 생각, 다들 하고 사는 것이 직장인들 아닌가? 내가 맡고 있는 업무는 너무 중요하고 그 일은 나 아니면 해내기 어렵다는 생각.

그래서 k 직장인들은 (나 포함) 늘 말하곤 한다. "나는 (또는 우리팀은)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큰일이야" "나 하나 때문에 우리 부서나 회사에 민폐 끼치면 안되잖아" 라고 착한 버전으로 얘기하지만, 이렇게 k 화법으로 말하는 속내 (또는 무의식)은 좀 다른 결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책임감이 너무 강하다 = 나 아닌 다른 사람 (동료든 부하직원이든 심지어는 상사에게도)이 못미더워 일을 꼭 내가 해야 한다. 또는 = 내가 한 일의 공은 내가 대부분 가져갈 것이다. 

우리 부서나 회사에 민폐 끼치기 싫다 =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 일 많이 하고 생색이라도 내겠다. 


그러니까, 회사라는 조직에서 공동의 목표를 갖고 밸류 체인을 "같이" 완성해 가는 데 있어서의 업무적 "공"과 "싫은 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직'의 성과에 있어서 나의 공 (즉 기여)와 실책이 무엇인지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뜻이다. 


나도 해당되었던, 그리고 해당되는 얘기지만 이런 "강한 책임감"으로 나의 기여도가 크다고 생각하고 일을 끌어 모아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빨리 지치기도 하고 불평도 많아진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몰라 주는 회사와 상사도 원망을 지나 그들이 무능하다고 느껴지고, 일은 항상 나와 우리 팀에만 몰리는 것 같고 다른 팀들은 꽃보직에서 꿀빨며 칼퇴하는 것 같고. 


이렇게 자기 자신을 실제 능력보다 과대 평가 하며, 실제로 능력이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을 평가 절하하는 현상을 두고 "더닝 크루거 증후군" 또는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한다고 한다. (저를 지식의 세계로 이끄시는 챗지피티님 말씀 링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이 어느 정도로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우리는 흔히 "자기 인식" 즉 self awareness 라고 조직에서 부르는데,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고 교육 받은 사람들은 동아시아 정서상 어쩔 수 없이 '겸양'을 장착하는 제스처를 보여줘야 하다 보니 자기 인식에 대한 표현은 한없이 박하다. 

"아유 아직 멀었어요" 

"제가 한 건 하나도 없고 전부 팀이 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나 좀 하지?" "솔직히 모자란 팀 이끌고 여기까지 오느라 나란 놈 너무 수고했다" 고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의 저런 "겸손 제스처"에 상대방이 내 속마음을 간파하지 못하고 "네 앞으로 더욱 발전하시길 바랄게요" "님은 이런 좋은 팀과 함께 일하셔서 행운인 것 같아요" 식으로 내가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고 답하는 사람들에겐 괜히 심사가 뒤틀리기도 하고. (어우 센스없기는 이러면서) 

우리가 바라는 상대방의 답변은 "이미 다 이루셨는데 겸손하기까지 하신 것 아니예요?" "팀장님의 기획력과 리더쉽 없이는 불가능했겠죠" 이런 답변인 것.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 대해 관대한 경향이 있는 것이다.

사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과제이다. 내 강아지마저 내 눈엔 명견이자 최고의 미모로 보이는데 어찌 나 자신에게 객관적인 잣대를 씌운단 말인가. 그러다가 실수나 실패를 하게 되면 나의 멍청함에, 그리고 그 암담한 결과를 두고 나를 책망하고 나를 말리는 것 또한 나 자신이고. 

이렇게 자기 비하의 극단으로 치닫는 것도 사실은, 누군가가 "아니야, 너는 그렇게 무능하지 않아. 이번 일은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실수였을 뿐이야"라고 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자기 비하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회사 다니면서 이불킥 안 해 보신 분 있다면 연락 바랍니다

자기 객관화, 또는 자기 인식 (self awareness) 야 말로 요즘처럼 복잡하고, 저마다의 "나 자신다움"이 중요한 세상에서 조직 생활에 가장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싶다. 

남들의 동정심과 부인 인정을 바라는 자기 비하가 아닌, 본인의 역량을 과대평가해서 노력과 협업을 소홀히 하게 되는 자기 과신이 아닌 객관적인 자기 인식. 

매우 어렵게 들리지만, 자기 객관화에 뛰어났다고 알려진, 정치가 무엇인지 어쩌면 가장 잘 알고 이용했던 인물.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았기에 문서에 남을 본인의 언행과 업적이 어떻게 비쳐질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했던 인물인 링컨의 일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링컨은 수많은 어록을 남겼지만 (게티즈버그 연설 등) 그 중 "동전의 양면"에 대한 언급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링컨은 본인을 "두 얼굴 - 양면의 동전"에 비유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알고 있는, 기대하고 있는) 얼굴과 (아마도 정치적 얼굴 아닐까?), 가까운 사람들과 자기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얼굴이 있다고. 

링컨 자신만이 볼 수 있었던 얼굴이란 심약하기도, 변덕스럽기도, 괴팍하기도 한 모습들이었고 그것이 링컨의 '진짜 본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링컨은 어느 것이 정말 내 모습인가에 집착하거나 그것을 알아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기대하고 그들에게 비쳐지는 자기 얼굴이 어때야 하는지도 잘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링컨이 정치 무대에서 빛을 발했던 것 아닐까? 대중들이, 동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고 보고 싶어하는 행동을 보여 주는 리더.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건 자신의 언행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21세가 한국으로 돌아와 보면, 나만 인정하는 나의 능력, 나만 인정하는 나의 중요성 - 이것들이 "나만" 인정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문제 아닐까. 

보통의 사람이란 것이 그렇다. 무엇이든 "내"일이 되면 객관화 사고가 정지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내가 회사에서, 조직에서 맡은 일이 어느 정도의 결과와 다음 스텝에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치는 일인지. 그리고 그 업무를 해 내기 위한 역량은 내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지. 이런 연습이 되었다면 의무처럼 찾아오는 360도 피드백 기간에 동료나 상사에게도 보다 객관적이고 주관적 감정이 덜 실린 피드백을 주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왜 그런말 있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 중 10%는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하고, 20%는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하고, 70%는 관심이 없다고. 

조직에서 나의 역량에 대한 판단과 피드백도 그러할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의 10%만 근자감을 갖고, 20%는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70%는 여지를 남기고 열어 놓으면서 타인의 피드백, 업무 리뷰를 통해 발견하는 성장의 기회 등을 쌓아가다 보면, 나 없이도 회사는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가만. 나 없이도 회사가 돌아가는데 나는 왜 회사에 다니지? 그 "나"들이 모인 곳이 회사인데 그럼 사람들 없어도 돌아가나? 틀렸다. 회사가 "돌아갈" 수는 있지만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빠르게 도태되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나 없이도 회사는 돌아가지만, 나 없이는 회사가 성장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직장인에겐 어쩌면 최고의 경지 아닐까. 


이상 오늘의 초큼 꼰대 생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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