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 아들, 수겸이가 궁금한 이유

아버지와 아들의 "성공"은 모든 세대마다 달랐나?

by Savvy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도,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쓰여 있다는 어쩌면 가장 오래된 "카더라" -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요즘 애들은 이해가 안 돼"

놀랍지도 않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늘 이전 세대는 이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해 왔다는 것을. 지금 4050인 엑스세대도 선배들에게 "이 대책 없는 것들" 얘길 들어왔으니.

그런데 오늘 하려는 얘긴 이런 뻔한 "세대론"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의 여러 욕구 중 하나인 "성공"을 이루는 방식, 그리고 성공에 대한 정의 자체가 이렇게까지 세대별로 달랐던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서울 대기업 자가 김 부장의 연대생 아들 수겸이는 뭘 보고 자랐길래,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커리어를 짜려고 할까. 그 차이가 단순히 성향 때문이 아니라 - 심지어 수겸이는 아버지 김 부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젊꼰임 - 성공을 보장하던 장치가 고장 난 시대의 결과라면?


김 부장 세대: “안정된 성공이 원하는 스펙 갖추기 - 줄타기 - 지금 버티면, 나중에 안정”이라는 공식

김 부장 세대의 커리어 문법은 비교적 선명했다.

괜찮은 4년제 대학을 나와서, 애사심을 입사하기도 전에 풀 장전한다. (입사 면접 시 "제 꿈은 이 회사의 CEO입니다!"는 필수)

수저 깔기, 회식 폭탄주 제조, 2차 장소 예약 등 막내 필살기 섭렵.

여기저기 싹싹하게 - 밑줄 쫙! 나를 죽이고 - 밝은 얼굴로 윗사람과 선배들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줄을 확실히 탄다.

말 안 하기 3년, 눈감기 3년, 안 들린다 3년은 기본. 거기에 유체이탈 화법 (윗분들의 "내가 언제 그랬어" 화법) 통달하면 추가 점수 확보

내 줄이 확실한 줄이라고 생각되면, X나 버틴다. (이때 "내가 언제 그랬어" 화법을 익혀 놓았다면 정신 건강에 다소 도움이 된다)

그렇게 회사에 나를 맞춘다.

그러면 언젠가 안정이 온다.


말 그대로 “까라면 까”가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생존 방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조직이 개인을 소모시키기도 했지만, 적어도 (정말 적어도) 약속 같은 게 있었다.

승진이라는 사다리

연차에 따른 보상

오래 다니면 뭔가 남는다는 기대(연금이든, 집이든, 경력이든)

그 약속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들 그 약속을 믿고 달렸기 때문에 사회도 그 방향으로 굴러갈 수 있었던 거다. (쓰고 보니 이 때는 나름 그래도 뭔가 끈끈한 거라도 있었네 - 제가 꼰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님 생각이 맞습니다- )

그런데 지금은.

평생을 바친 회사가 어느 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줄이고,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불안정을 기본값으로 만들고, ‘성과’라는 이름으로 삶을 쪼갠다. 그러다 보면 김 부장 세대가 붙잡고 있던 믿음이 어느 순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참으면 언젠가 좋아진다”는 말이, 더는 미래를 설명하지 못하는 시대.


수겸이: “아버지가 버려지는 걸 봤다”는 학습

수겸이가 유난히 야망이 크거나, 유난히 이기적이라서가 아닐 수 있다. (수겸이는 설정이 "젊 꼰"이다)

수겸이는 아버지 세대가 버림받는 장면을 꽤 가까이에서 보고 자랐다.

오래 다닌 회사에서 갑자기 나오는 사람들

집에 와서 말수가 줄어든 어른들

“그래도 회사가 있으니…”라는 말이 더는 위로가 안 되는 순간

그러니 수겸이가 아버지가 추천하는 "성공 공식"을 따르지 않고 ‘내 것’을 챙기려는 건 , 그냥… 리스크 관리에 가깝다. (하지만 아버지인 김 부장 입장에서는 너무나 답답할 것이다. 안정된 성공 도입부인 연대로 스타트를 잘 끊었는데 웬 스타트업? 웬 쇼핑몰?)

수겸이의 공식은 이렇게 바뀐다.

나에게 남는 게 뭔지 계산한다.

실리를 챙긴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에 더 빨리 가까워지려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수겸이는 "나에게 있어 성공이 무엇인지" 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보며 조직이 개인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이미 학습했다는 것이다 - 어쩌면 이 학습이 김 부장이 수겸이에게 준 가장 큰 러닝일지도-



내 것’ 챙기기 vs 더 확실한 ‘보장 장치’ 찾기

재미있는 건, 수겸이 세대가 전부 ‘행복’만 좇는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니라는 점.

대략 두 갈래로 갈린다.

1) “내 것”을 챙기는 커리어

조직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내 기준을 세우려 한다.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분리해서 본다.

네트워크, 포트폴리오,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이동 가능한 자산을 모은다.


그리고 여기서 ‘실리’는 돈만이 아니다.

시간

건강 (요즘 수겸이 세대는 부어라 마셔라도 하지 않는다)

관계 (하지만 이 관계는 철저히 트레이드오프여야 한다. 한쪽이 손해 보는 기울어진 관계는 안된다)

정체성

이걸 지키려는 선택이 종종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진짜로는, 꽤 치열하게 계산한 결과일지도. 이래서 젊은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 진심입니다)

2) 오히려 더 강하게 ‘보장’을 붙잡는 커리어

반대로 어떤 수겸이는 더 노골적으로 ‘보장’을 찾는다.

더 좋은 스펙 (지방 의대를 가기 위해 서울대 공대를 포기하는 건 이젠 뉴스 축에도 못 낀다)

더 안전한 직장

더 단단한 자격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은 확실한 담보를 원한다. 그래서 어떤 수겸이는 “회사에 충성”이 아니라 “나를 증명할 도구를 최대한 확보”로 방향을 튼다.

둘 다 같은 뿌리다.

‘보장’이 사라진 시대에, 각자 방식으로 보장을 만들려는 노력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부르나

김 부장 세대의 성공은 종종 이런 단어로 요약된다.

직함 (명함 빨)

안정 (매달 내는 갑근세와 늘어가는 국민연금)

자녀 교육


반면 수겸이 세대의 성공은 좀 더 잘게 쪼개져서 나타난다.

내 시간표를 내가 짤 수 있는 상태

내가 싫어하는 일을 오래 하지 않아도 되는 능력 (FIRE 족이 요즘은 가장 잘 나가는 워너비)

필요하면 이동할 수 있는 힘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자꾸 부딪힌다.

김 부장 눈에는 수겸이가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고,

수겸이 눈에는 김 부장이 “왜 그렇게까지 참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근데… 둘 다 각자의 시대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고, 성공을 보장하던 시스템이 바뀌었고, 그 변화가 결국 가족 안으로 들어왔을 뿐.


그래서, 수겸이가 궁금하다

나는 수겸이를 탓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묻고 싶다.

수겸이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보장’을 만들까.

수겸이는 조직과 어떤 거리에서 일할까.

수겸이는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무엇을 과감히 내려놓을까.


어쩌면 수겸이의 선택은 ‘요즘 애들’의 변덕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더 자주 보게 될 커리어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김 부장 세대가 틀렸고 수겸이 세대가 맞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는 믿고 달린 길이 있었고

누군가는 그 길이 무너지는 걸 보고 자랐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김 부장 아들 수겸이가 궁금하다.


이상 오늘의 초큼 꼰대 생각 끝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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