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덫에 갇히다.
영화 <노리개>를 보고 왔다. 감사하게도 시사회 티켓을 영화 홍보사에서 보내주셨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고사했을 테지만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에 의무감 반 걱정 반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73334
영화 <노리개>는 고 장자연 배우의 자살 사건을 다룬 실사 영화다. 영화는 재판 과정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조명한다. 다큐멘터리도 영화도 아닌 작품이기에 후기를 쓰기가 조심스럽지만 나만의 소회를 남겨보고자 한다.
영화는 배우 장지희(민지현)의 자살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 이장호(마동석)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가정도 수입도 포기하고 방송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조사를 지속해나간다. 그리고 동시에 배우의 자살 배후로 언론사 사주, 소속사 대표, 드라마 PD 기소를 당한 상태로 재판이 시작된다. 장지희의 죽음을 둘러싼 비리 세력을 밝히려는 여검사와 피고인들의 비리 변호사의 대립 구도로 재판은 진행된다.
여검사와 기자는 결정적 증거인 배우 장지희의 다이어리와 사건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용기를 내어 준 증인과 매니저로 재판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꿈이라는 덫
주인공 장지희는 배우가 되기 위해 타의로 자신을 내던진 인물이다. 배역을 맡을 수 있을 거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보고 불나방처럼 날아들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꿈 때문에 희망 고문에 걸려든 것이다.
주인공 장지희는 뜨거운 불로 온몸에 화상을 입으면서도, 꿈 때문에 견디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에 타 죽는다.
이 영화는 꿈을 꾸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유일한 목격자와 다이어리를 가진 매니저 모두 처음에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이유는 '두려워서'다. 피고인들의 보복이 1차적으로 두려웠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들의 꿈 때문이다. 유일한 목격자는 배우 장지희와 같은 배우의 꿈을 꾸고 있었고 꽤 성공적인 지위에 있다. 그 지위를 걸고 증언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다. 매니저도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계속 성장하고픈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이들, 특히 유일한 목격자는 내 꿈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두려운 감정이 컸을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당시 나를 포함해 고발에 참여한 사람들은 함께 꿈을 실현하는 걸 보류하거나 희생시키며 문제의 인물을 고발했었다. 당시 2년 동안 직무 정지를 받았지만 지금도 그 인물은 건재하게 활동한다. 오히려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더 악랄하게 이용해 대중매체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당시에도 영화에 나오는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문제 상황을 피해 숨어버리는 사람도 부딪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누구도 어떤 행동을 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선택의 문제였다.
꿈의 크기가 클수록 그리고 더 간절할수록 길은 좁아진다. 길이 좁을수록 그 간절함은 취약점이 된다. 그리고 가해자는 그 취약점을 이용하기를 즐긴다.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우리도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당시의 일을 겪으며 깨달은 바는 꿈보다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꿈이라는 것도 나의 일부이고 내가 없으면 그 꿈을 다시 꿀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친오빠에게 "오빠, 나 일 그만둘까 봐"라고 얘기하는 장면에서 나는 속으로 ‘그래, 당장 그만둬! 숨어버려! 당장!’이라고 외쳤다. 죽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고 큰소리로 말해주고 싶었다.
꿈은 덫이 아니라 삶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꿈은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살아있다면 반드시 다른 꿈을 꿀 수 있다고,
등을 다독이며 말해주고 싶었다.
꿈이 탐욕이 되는 순간
영화 속 인물들, 기자, 여검사, 매니저, 목격자 등은 어느 정도 자신의 이익이나 꿈을 포기하고 인간의 도리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실 속 숨은 영웅들이라 말하고 싶다. 그만큼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기에.
사건을 맡은 검사는 개인적인 아픈 기억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애쓴다. 또한 여성으로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상대편 변호사다. 검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상대편 변호사는 검사의 아픈 기억을 공개적으로 끌어내 재판에서 제외시키고자 한다. 개인적인 감정이 재판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말이다.
이 장면은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은 피해자를 돕겠다는 꿈을 가진 검사와 남의 아픔을 이용해서라도 고객을 보호하고자 하는 변호사의 탐욕이 대치되는 지점이다.
탐욕에 빠진 사람은 타인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희생시켜 탐욕에 빠졌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도 소중하지 않다. 자신의 양심이 보잘것없기에 타인의 양심도 보잘것없다.
자신이 어느 순간 순수한 꿈이 아닌 탐욕을 선택했기에 타인의 꿈을 짓밟을 수 있는 것이다. 이들도 순수한 꿈을 꾸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탐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꿈이 탐욕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사람은 자신의 한 행동에 따라 생각을 바꾸는 존재다. 합리화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와 지위가 달라지면서 자신이 옳았다는 생각이 견고해졌을 것이고 자신이 그러했으니 타인도 탐욕을 택한다고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남의 순수한 꿈을 희생시키는 것은 그들에겐 쉬운 일이 된다.
순수한 꿈을 꾸는 사람은 남의 꿈을 짓밟을 수가 없다. 그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억울함을 의해 나선 사람들은 모두 이 소중함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어떠한 꿈을 꾸든 꿈을 꾸는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 그리고 정의
재판은 늘 사실을 바탕으로 판결이 내려진다. 모든 증거와 증인들로 채워진 사실들이 나열되고 판결은 판사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사실이 반드시 진실을 밝히지는 못한다. 그리고 진실이 반드시 정의를 실현시키지는 못한다.
재판 과정은 배우 지망생들이 어떻게 성적인 노예가 되어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획사에 들어가 몇 달간 전혀 일거리가 없으면 배역을 따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그러다 자신까지 파괴하는 나날이 계속되면 자괴감으로 인해 우울증이 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배우로서 성공할 수도, 그렇다고 빚더미를 안고 빠져나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배우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죽음인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주는 재판 과정 내내 배우의 얼굴들이 클로즈업된다. 표정 하나 주름 하나가 절절히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영화라는 느낌보다는 다큐의 느낌이 더 많이 난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로 앞에서 재판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사실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에서는 재판 과정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노리개>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재판 과정은 사실이 어떻게 진실을 왜곡시키는지, 탐욕이 어떻게 진실을 덮는지 잘 보여준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진실과 정의는 사라지고 사실만 남아 있다.
현실은 천천히 변한다
현실의 벽은 높다. 잘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는 일어난다. 아주 천천히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한 명 한 명의 용기 있는 선택들이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이 사건을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노리개>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재개봉을 한다는 사실이, 엔딩 크레디트에 적힌 수많은 기부자들의 이름이 그 증거다. 그러니 희망은 버리지 말자. 언젠가는 변화된 현실을 맞을지도 모른다. 탐욕적인 괴물보다 인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