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Play LOVE

영화 <영주(2018)>

악인과 선인의 교차점에서

by SUN KIM


영화 [영주]는 부모를 차 사고로 잃은 영주의 이야기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2448

강제로 어른이 되어버린 영주

하루 아침에 소녀가장이 된 영주는 처음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평소 잘 지내던 고모라는 사람은 부모가 유일하게 남긴 집을 뺐으려 하고, 설상가상으로 동생은 사고를 친다. 영주는 동생의 합의금을 구해야하는 상황에 처하지만 고등학생인 영주에게 돈을 빌려줄 곳은 없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자신을 밀어넣은 사람이 미워졌을 영주다. 복수심이 가득 품고 영주가 찾아 간 곳은 시장통에 있는 작은 두부가게. 두부가게 주인 아저씨가 바로 그 살인자다. 영주는 대담하게도 그 가게에 취직을 한다. 복수심에 가게에서 합의금을 훔쳐 올 요량으로. 악인에게서 돈을 뺐는 게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영주는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주인 아주머니가 돈을 보관하는 곳을 잘 봐둔다. 밤에 가게의 돈을 훔치려 살금살금 들어간 영주는 술에 취해 갑자기 들이닥친 주인 아저씨를 마주한다. 술에 취한 주인 아저씨는 영주를 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울며 쓰러진다. 영주는 놀라 뛰쳐나온다. 나의 부모를 죽인 살인자지만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결국 구급차를 불러 아저씨를 살린다.

그 뒤로 영주는 가게에 나가지 않는다. 며칠 뒤 살짝 모습을 내비친 영주를 가게 아주머니가 잡아끈다. 영주를 집으로 데리고 간 아주머니는 영주에게 돈을 내민다. 돈이 필요한 것 같은데 쓰라고 말하며 살려줘서 고맙다고 한다. 게다가 부부에게 식물인간 상태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영주의 심경은 복잡해진다. 분명히 내가 미워해야 하는 나쁜 사람들인데 고맙고 안쓰럽다는 마음이 드니 말이다.


아직 부모가 필요하다

영주는 그 돈으로 합의금을 해결하고, 그 뒤로 서서히 주인 부부와 가까워진다. 영주에게는 부모를 죽인 악인이 선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딸처럼 대해주는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영주는 엄마의 온기를 느낀다. 어리광도 부리고 싶고 점점 의지하고픈 마음이 커진다. 어쩌면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영주의 동생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태가 심각해진다. 동생은 주인 부부에게 당장 사실을 말하라며 다그친다. 요지는 “누나가 누군지 알아도 그렇게 대할까?”였다. 영주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반박한다. 영주의 마음엔 무책임하게 떠나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과 지금 따뜻하게 대해주는 부부에 대한 믿음이 교차한다. 그만큼 영주는 부부에게 마음을 내주고 있다.

영주는 그 길로 부부를 찾아가 사실을 말한다. 변하는 게 없을 거라 믿었던 영주는 부부가 하는 대화를 엿듣게 되며 그 기대가 무너진다. 하필 식물인간인 그들의 아들 옆에서 말이다. 영주는 그렇게 누워있는 아들이 샘이 나기도 했다. 처음의 복수심이 다시 피어올랐을지도 모른다. 부부는 영주에게 부모를 죽인 악인에서 동생을 도와준 선인으로 이제는 자신을 버린 악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누워있는 그 아이에겐 하나밖에 없는 선한 부모다.

주인 부부에게서 어느 순간 자신의 부모의 대리 역할을 기대한 영주는 결국 두 번 버림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자신의 부모는 죽음으로, 주인 부부는 죄책감을 자신을 안아줄 수 없는 상태인거다. 아직 기댈 곳이 필요한 영주인데 말이다.


선인과 악인의 교차점에서

식물인간 아들을 바라보던 영주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선물 받았던 머리끈를 아들의 산소호흡기 줄에 동여매 놓고 그 집을 빠져나온다. 잠시나마 나쁜 생각을 한 탓인지 영주는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다 서럽게 운다. 복수심에 대한 죄책감인지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대한 슬픔인지 알 수 없는 통곡이다. 그러나 영주는 어느 순간 눈물을 뚝 그치고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간다.

그 순간 영주는 어쩌면 영원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인간은 선인도 악인도 아닌 것임을. 어쩌면 주인 부부에게 이번엔 자신이 악인이 되어버린 걸 수도 있던 거다. 볼 때마다 죄책감을 일으키는 증표같은 걸로 말이다. 동시에 영주는 자신이 정말 혼자라는 걸 이제서야 받아들인 걸까. 어쩌면 자신의 부모도 주인 부부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 사람은 결국 자신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아 버린 걸 수도 있다.

그래도 영주는 자신에게 악인일 때도 그들에 향해 선한 선택들을 했다. 죽음이 아닌 삶을, 미움이 아닌 사랑을 선택했다. 자신에 대해서도 영주가 계속 삶을 선택할 것임을 영화의 마지막, 영주의 뒷 모습에서 느낄 수 있다. 영주는 그렇게 한 발씩 뚜벅 뚜벅 걸아나가 자신의 인생을 선함으로 채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인도 악인도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교차점에서 선택을 해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하는가? 누구에게 선한 선택들을 하는가? '누구에게 선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은 현재 삶의 우선 순위를 보여주는 걸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분명한 건 선택의 교차점에서 영주는 가족을 위한 선한 선택들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게 영주가 사는 방식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영주의 부모가 남겨준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현재 누구에게 선인이고 싶고 악인이어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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