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Play LOVE

영화 <증인(2018)>

편견은 무지(無知)와 지(知) 모두에서 비롯된다.

by SUN KIM

https://movie.daum.net/moviedb/video?id=121408&vclipId=59998



영화 <증인>은 대형 로펌 번호사 ‘순호’(정우성)이 살인 용의자를 무죄를 입증할 유일한 목격자 ‘지우’(김향기)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자폐아인 지우를 검사 쪽에서는 증언대에 세울 수 없다고 반박하고, 순호는 꼭 목격자 지우의 증언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순호는 지우를 설득하기 위해 조끔씩 다가간다. 지우의 특성을 고려해 퍼즐과 퀴즈를 통해 지우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한다. 결국 지우는 순호에 대한 믿음으로 증언대에 서기로 한다.

법정 안에 걸린 작은 벽시계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예민한 청각을 가진 지우가 증언대에 서는 것은 큰 모험이다. 그러나 순호 쪽 변호사팀의 수장은 오히려 변호 중 자폐아의 학문적 특징을 열거하며 지우가 ‘정상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해 지우 어머니의 공분을 산다. 처음부터 증언을 반대했던 지우 어머니는 순호에게 크게 화를 내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지우의 증언으로 재판에서는 승기를 거머쥐었지만 승호는 마음 한쪽이 계속 편하지 않다. 그러다 자신이 변호한 고객이 진범일 수 있는 정황들을 발견하며 영화는 급반전을 만들어 나간다.

승호는 지우에게 사죄하며 다시 한번 증언대에 서달라는 부탁을 한다. 지우 어머니는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지만 지우는 다시 한번 승호를 믿고 증언을 하겠다고 한다.

다시 열린 재판에서 승호는 변호를 하는 척하면서 지우의 예민한 청각과 문장의 단어 수까지 기억하는 정확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사건 당시의 증언을 이끌어낸다. 승호는 이 시점에서 지우가 가진 자폐의 특성을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범을 밝혀낸다. 진범은 체포되고 지우는 자신이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편견의 늪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 편견을 그려낸다. 자폐를 모르는 사람의 편견과 자폐를 잘 아는 사람의 편견이다. 승호와 승호 변호단의 수장은 자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 속한다. 이들은 자폐에 알려고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던 사람들이다.

반대로 자폐를 잘 아는 사람은 지우의 어머니와 자폐증 가족을 가진 검사다. 두 사람은 자폐증에 대해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이 두 집단을 대립적으로 보여준다. 자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팽배했는지 승호와 승호의 변호인단 수장을 통해 드러난다. 자폐아는 정신적 장애로, 표정을 읽을 수 없기에 정서도 느끼기 어려울 거라는 편견, 올바른 사회적 판단을 할 수 없을 거라는 편견 등 말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들은 지우를 통해 조금씩 깨지고 새로운 시각이 만들어진다. 지우는 승호에게 마음을 열고 조금씩 다가가고, 재판 과정 동안 그를 이해하며 믿어준다.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해 증언대에 당당히 선다. 그 모습은 어떤 비자폐인보다 용기 있다.

영화는 지우 어머니와 검사를 통해 자폐아동이 있는 가족이 가진 편견도 보여준다. 지우 어머니는 지우의 상태로는 증언대에 설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받는 상처를 이겨낼 수 없을 거라 단언한다. 검사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하지만 지우는 어머니와 검사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고 회복력이 강한 사람이다. 용기 있게 “변호사는 못 되겠지만 증인은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거나, “엄마가 마음이 아프니까요”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다. 지우의 용기 있는 결정들은 두 사람의 지(知)로 인한 편견을 깨버린다.

우리는 무언가를 잘 몰라서 또는 너무 잘 알아서 편견의 늪에 빠진다. 잘 모르는 경우는 두려움이, 잘 아는 경우는 오만함이 편견의 뿌리에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 집단이 오히려 시야가 좁아 그릇된 관념을 가지는 게 바로 그 예인 것 같다. 지우가 두 종류의 편견을 모두 깨버리면서 ‘자폐 청소년’이 아닌 감수성 많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싶은 십 대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장점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영화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지우와 승호의 삶을 병렬적으로 보여준다. 자폐 청소년인 지우는 일반학교에 진학해 왕따를 당하며 학교를 다닌다. 지우 어머니는 그러면서 직접 표정 사진을 찍어 지우에게 표정 학습을 시킬 정도다. 비록 승호에게 "난 한 번도 지우가 자폐아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건 지우가 아니니까요"라고 말하는 어머니지만 말이다. 지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본받을만 하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지우를 보며 마음 아파하지만 장애인 학교로 보내지는 않는다. 지우 어머니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어쩌면 '지우라면 일반학교에서도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다.

한편 승호는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대형 로펌에서 속물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여자 친구의 집에서 여자친구 그리고 그녀의 딸과 소소하게 저녁을 먹고 소주 한 잔하는 걸 즐겨하는 그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채 고급 양주를 마시는 접대 현장에 나간다. 둘은 모두 자의 또는 타의로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고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지우와 승호는 서로에 대해 배워가면서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자폐라는 주제를 통해 어쩌면 그 과정을 그리고 싶어 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잘 모르는 타인에 대한 편견, 내가 잘 아는 자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과정 말이다. 서로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진정 알게 될수록 인정과 수용은 쉬워진다. 아니, 자연스러워진다.

영화의 마지막은 지우가 자폐 학교로 옮기고, 승호는 대형 로펌을 그만두는 모습으로 끝난다. 지우의 생일 초대를 받은 승호가 그 날 지우에게 묻는다.

"학교 애들은 어때?"

"다들 이상해요."

"이상해?"

"네, 그런데 그래서 좋아요. 정상인척 안 해도 되어서요."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더 이상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이상하지 않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우에게서 편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우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 때문에 참고 있었을 거다.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는 지우에게서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영화가 끝나고 화면에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에는 영화 속 지우가 계속 그렇게 행복하길 바라게 되었다.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본다면, 내가 느낀 것과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러한 생각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도, 삶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에. 모두들 한 걸음 물러서 나와 타인에 대한 편견을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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