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영화 <마리 이야기: 손끝의 기적(2014)>은 헬렌켈러처럼 청각과 시각 모두 장애를 가진 마리 외르탱과 그녀의 스승, 마가렛 수녀의 실제의 삶을 영화화했다. 주인공역을 맡은 아리아나 리부아는 실제로 청각장애인이지만,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나다. 이 영화 자체가 주는 따듯함과 감동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상.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하나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꼈지는 마리. 헬렌켈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마리에게 설리반 선생님같은 존재로 나타난 라네이 수도원의 마가렛 수녀. 이 두 사람의 운명같은 여정은 첫 만남에서 시작된다.
수도원에 맡겨진 마리를 본 첫 순간, 마가렛 수녀는 자신이 이 아이를 도와야겠다고 결심한다. 온 세상을 가시로 받아들이는 마리에게 수화를 가르쳐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리의 모습에 마가렛 수녀는 서서히 지쳐가고, 마가렛 수녀의 다부진 결심만으로는 들짐승처럼 날뛰는 마리를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마가렛 수녀는 마리가 항상 몸에 칼을 소중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칼’을 수화를 가르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유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마가렛 수녀를 마리는 거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 대한 마가렛 수녀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면서, 마리는 ‘칼’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수화로 시도해본다. 그리고 그제서야 마가렛 수녀가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했는지 깨닫는다. 마리는 다른 단어를 가르쳐 달라며 마가렛 수녀에게 요청하고, 마가렛 수녀는 이러한 마리의 모습에 처음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확신한다.
마가렛 수녀는 마리를 위해서 물건 하나 하나의 단어를 손으로 익히게 하고, 수화로 표현하게 한다. 그런 마가렛 수녀를 따르며 마리는 수화로 대화를 할 정도로 발전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성숙되고 안정된 마리가 되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의 부모가 수도원으로 찾아오고, 마리는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자신을 수화로 표현한다. 그렇게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던 마리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닥친다. 바로 마가렛 수녀가 폐렴으로 쓰러진 것이다. 마리가 동요할 것을 걱정한 원장 수녀는 마가렛 수녀에게 마리에게 알리지 말고, 요양원으로 떠나라고 권유한다.
갑자기 사라진 마가렛 수녀를 찾아헤매는 마리. 식음을 전폐하고 들짐승과 같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동료 수녀는 마가렛 수녀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마가렛 수녀는 마리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다시 라네이 수도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라네이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가렛 수녀는 반짝이는 햇빛을 보며 삶에 대한 감사를 드린다. 육체적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마리를 생각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마리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행복이 가슴 가득히 차 오른다.
마리는 마가렛 수녀가 돌아온 것이 마냥 기쁘기만 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마리는 마가렛 수녀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배우고,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가렛 수녀의 육체는 그녀의 영혼이 마리 곁에 남아있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느끼는 마가렛 수녀. 수녀로서의 자부했던 신앙심이 무색할 만큼 마가렛 수녀는 죽음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마리를 떠나 보내지 못 할까봐 두려운 것일까. 마가렛 수녀는 마리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마리는 마가렛 수녀가 만나주지 않자, 화를 내고 떼도 써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점차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조금씩 노력한다.
가까스로 마가렛 수녀를 만나게 된 마리는 웃는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의연하게 한다. 마리의 인사를 받은 마가렛 수녀는 세상을 떠나지만, 마리의 마음 속에 마가렛 수녀는 늘 살아있다. 마리는 매일 마가렛 수녀의 무덤을 찾아가 꽃을 놓고 마가렛 수녀에게 이야기 하듯이 하늘에 대고 이야기한다. 마리의 오늘 하루가 어떠했는지..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영화는 끝났지만, 환한 잔상이 남아 있다. 마가렛 수녀가 아픈 몸을 이끌고 마리를 위해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마가렛 수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자꾸만 나의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누군가는 마가렛 수녀의 희생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그녀의 안위가 걱정 되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 마가렛 수녀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보며, ‘마리를 만날 수 있다.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보며 마가렛 수녀의 사랑이 느껴졌다.
그렇다. 내 상황이 어떻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보는 것만으로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내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 할지라도.
마리가 마가렛 수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 마가렛 수녀가 힘들던 시절, 수도원의 한 동료 수녀에게 마가렛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는 내 십자가에요.” 나의 십자가. 이렇듯 마리는 마가렛 수녀가 쉽게 내려놓거나 포기할 수 는는 존재가 아니었다. 마가렛 수녀는 마리를 자신의 삶과 분리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가렛 수녀가 마리를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육체만을 위하여 요양원에서 쉬고 있는 기간이 훨씬 그녀에게 괴로웠을 거라 나는 확신한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만이 오히려 그 무게로 자신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가 있다. 짊어지고 있기에는 힘들고 괴롭지만 놓을 수 없는 것들. 견뎌야만 하는 것들. 괴로운 기억이나 힘들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누구나 괴로운 짐을 가지고 있다.
과연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나에게도 나를 괴롭게 하는 기억이 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십자가라고 인정하고자 한다. 나의 십자가라고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나에게 짐이 아니라 나의 일부가 되기 시작하고 오히려 삶의 이유를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삶의 고통도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 고통조차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진 마가렛 수녀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마리의 삶이 이 사실을 보여준다. 마가렛 수녀의 끊임없는 사랑과 인내심으로, 마리는 하느님에게 그리고 마가렛 수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마가렛 수녀의 십자가였던 마리는 어느 순간 삶의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