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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2019)> 후기(2)

우리는 모두 같은 현실에 살고 있다(2)_키워드편

by SUN KIM

영화 기생충은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디테일에 대한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영화지만 감독이 뜻하는 바가 분명히 드러난다. 다만 세심하게 심어놓은 상징들을 찾으면 쏠쏠한 재미를 더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고 재미있다고 느낀 상징 또는 키워드를 정리해보았다.


상징

기택의 아들 기우는 "이거 진짜 상징적이네요"라는 말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친구가 가져다준 수석을 보면서 그랬고,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박사장 아들의 그림을 보면서도 같은 말을 한다. 이 문장을 보고 알 수 있었던 것은 기우의 성향이다. 기우는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인간인 것이다. 수석을 보며 "먹을 걸 사 오지"라는 기택의 부인과는 대조적이다.

물난리가 났을 때에도 수석만은 꼭 쥐고 있는 아이다. 그만큼 기우에겐 물건이 가지는 현실성보다는 상징성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졸업장을 위조하면서도 그 대학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위조나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 기우가 세우는 계획들은 현실적이지 않다. 대부분 불법과 거짓말로 이루어진 모래성 같은 계획들이다. 또한 영화에서 보여주듯 예기치 못한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풀어갈 능력도 안타깝게도 크지 않다.


계획

그런 아들 기우를 보고 기택은 "아들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며 감탄한다. 현실에 지쳐 계획을 세우기를 포기한 기택에게는 그런 아들 기우의 모습이 대견했던 것이다. 그것이 불법적이고 윤리적이지 않은 계획이라 하더라도 '계획'을 세운다는 행동 자체가 말이다. 때문에 기택은 아들의 계획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채 무조건 따른다. 결국 기택 가족 모두는 거짓으로 취직을 하게 된지만, 그들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택이 지하방에 숨어 사는 가정부 남편에게 "아무 계획이 없죠?"라고 비난하듯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그러다 물난리가 겪고 난 후 체육관 대피소에 누워 아들 기우에게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바로 무계획이야"라고 말한다. 마음이 아팠다.

아들 기우의 계획에 희망을 걸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냉소적이면서도 자조적인 반응이었다. 다시 희망을 없어지고 체념한 듯한 기택의 기분을 느껴서 일까. 때문에 아들 기우는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책임질게요"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체육관 차디찬 바닥에서 희망을 뺏긴듯한 기분이 들었을 그들. 이후 아들 기우가 수석을 들고 지하에 있는 가정부 부부를 해하려 내려가는 부분은 기우의 계획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보여준다. 심지어 올바르고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어둡고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향해있다. 지상이 아닌 더 깊은 지하로 향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서 기우는 "아버지, 근본적인 계획입니다"라고 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 어떠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돈을 벌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기우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현실 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방식, 실제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식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허한 '근본적인 계획'이 현실화되기를 마음속 깊이 응원하게 되지만 말이다.


물 그리고 수석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지상에선 깨끗하고 운치 있던 물이 기택의 마을에선 똥물이 되어 흐른다. 같은 물이지만 아래로 내려올수록 더러워지고 냄새가 나 대피를 해야 할 지경이다.

박사장네 거실에서 비오는 날의 운치를 즐기던 부자의 즐거운 표정과 물난리가 난 반지하방에서 물건을 챙겨 나오는 부자의 두려운 표정은 대치를 이룬다. 같은 물이라도 다른 세계에선 전혀 다른 경험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수석 또한 마찬가지다. 부잣집 친구의 집에서는 의미있고 값비싼 수석이 반지하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물속에 집어넣으면 아무리 비싼 수석이라 해도 평범한 돌일 뿐이다. 물론 기우에게 수석은 개인적으로 지상으로 가기 위한 계획 또는 희망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세계에서는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햇빛 그리고 지하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조적인 공간이다. 기택의 반지하방과 박사장의 대저택. 가장 큰 차이는 햇빛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는 '행주 삶은' 냄새 같은 지울 수 없는 냄새가 몸에 배게 마련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살던 기우는 박사장 저택 마당에 누워 책을 본다. "방 안에서 하늘을 보는 거예요. 디게 좋아요"라면서 말이다. 주인이 없을 때면 커다란 창문 가득 햇빛이 들 때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길 즐기던 가정부 부부도 마찬가지다. 햇빛이야 말로 박사장의 세계에서 가장 탐나면서도 부러운 것이었으리라. 지상이 가지는 특권이니까 말이다.

박사장을 살해한 후 지하방에 숨은 아버지에게 기우는 "아버진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 저흰 마당에 있을게요. 볕이 좋으니까요"라고 답장을 쓴다. 지하에서 아버지를 끌어올려 햇빛을 볼 수 있게 하는 건 오로지 '돈'이다. 자본주의 계층의 계단을 올라오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계단 아래와 계단 위의 두 세계의 계단은 경제력으로 이루진다는 걸 기우는 몸소 깨닫았을 것이다.


냄새

냄새는 이 영화에서 가장 미묘하면서도 강력한 테마다. 냄새는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다. 박사장은 기택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부인에게 "그 지하철 타는 사람들한테 나는 냄새 있어"라고 설명한다. 그 이야기를 엿들은 기택은 자신의 몸에 냄새를 맡으며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의 어두워진 표정은 박사장의 부인이 장을 보러 가며 창문을 내릴 때, 가정부 남편이 칼에 맞아 쓰러진 상태에서 밑에 깔린 차키를 꺼내며 코를 막는 박사장을 볼 때 다시 나타난다. 운전기사지만 뒤에 탄 박사장과 '동행하는 느낌'이라고 말하던 기택에게는 이 '냄새' 이야기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박사장의 냄새 이야기는 기택에게 ‘우리는 같은 현실에 있지만 다른 세계 속한다’는 증거와 같다.

박사장의 아들은 기택과 기택의 부인, 그리고 딸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 밴 퀴퀴한 냄새일 터였다. 물난리가 났을 때에도 아내의 투포환 메달을 챙기는 기택은 분명 명예와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터. 그러니 박사장이 말하는 '냄새'는 이런 기택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이야기였으리라. 기택의 분노는 차키를 계기로 폭발했다. 그는 계획이 없는 사람이라 사람을 죽여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선 그리고 사랑

박사장의 '선'이야기는 냄새로 시작한다. "김기사는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지만, 넘지는 않아. 그런데 냄새가 선을 넘어"라며 말이다. 계층 간의 선,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라 인식하는 지점이다. 냄새는 은밀하게 '선'을 넘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박사장은 이 부분에 대해 김기사에게 말하기가 어렵다. 자신은 예의있고 교양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냄새 이외에 영화에서 박사장의 관잠에서 기택이 명확히 '선'을 넘는다고 인식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대목이다. 기택이 "그래도 사모님 사랑하시죠?"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박사장은 경고하는 눈빛을 내비친다.

아마도 박사장의 세계에서 가장 결핍된 부분이 아닌가 한다. 부부가 사랑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사는 것, 부부 사이에서도 상하관계의 선이 있는 것이 이를 함께 설명하는 듯했다.

소파 위 애정 행각 장면에서도 부부는 상호적이 아니라 수직적인 느낌이 난다. 가장 내밀한 행위에서도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한다. 박사장 부부와는 대조적으로 가정부 부부와 기택 부부는 자연스럽고 수평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이들의 끈끈한 가족애와 개인이 흩어져 지내는 박사장의 가족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박사장이 예민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완벽해 보이는 자신의 세계에서 부족한 걸 들킬까 봐 말이다. 사랑이 있는 하층민에게 사랑이 없는 상층민의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기택의 '사랑' 질문은 당연히 '선'을 넘는 행위다.


Pretend

이 영화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기택 가족들이 내적 pretend를 하는 부분과 하지 못하는 부분일 것이다. 전반부는 가족 모두 희망을 가지고 박사장 가족들과 자신들이 동등하거나 더 낫다고 pretend하며 줄거리가 진행된다. 그러다 물난리와 냄새이야기를 계기로 후반부엔 더 이상 내적 pretend가 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괴리감이 커져버린 탓이다. pretend가 되지 않아 일어난 심리적 붕괴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아직 이 사회에 계층 변화의 기회가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가진 때와 희망이 깨진 현실을 마주했을 때의 행동변화가 이 영화의 관전포인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여담) 인물 감상평

개인적으로 아들 기우의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상주의자이기에 가능한 행동들 그리고 경계선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도전들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 냄새를 제외한 키워드 모든 키워드를 쥔 인물이기도 하다. '기'택 그리고 '충'숙이 만든 첫 번째 '생'인 기우. 나름 이름에서도 재미있는 느낌이 든다.

두 번째로 매력적인 인물은 기정이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 힘에 약한 걸 알고 있는 인물이다. 박사장의 부인의 간섭을 처음부터 차단시킬 정도로 노련한 캐릭터다. 박사장과 그 부인의 존댓말과 반말, 영어를 적당히 섞는 말투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상층민의 허세 가득한 말버릇을 꿰뚷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능력 있는 인물이 사회에서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할 뿐이다.


영화 <기생충>은 풍자 영화다. 우리가 사는 하나의 현실이 두 개의 세계로 나눠져 있다는 걸 코믹스러우면서도 호러스럽게 보여준다. 크고 작은 장면들이 모두 상징성이 있다. 굳이 상징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놓기에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주제에 대해 해석은 다양할 수가 없는 영화지만, 영화를 보며 많은 질문들을 던질 수는 있다. 가령 기택의 "무계획"에 대한 의견 같은 것 말이다. 디테일에서 토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영화를 볼 때마다 작은 상징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할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 현실에서 숨어있는 상징들을 찾아보며 감상한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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