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야, 사랑하는 내 딸 신애야.
아들이 죽었다.
내 아들 준아. 내 하나뿐인 아들!
꼭 나 때문인 것만 같다.
내가 땅을 살 것처럼 허세만 부리지 않았어도
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만 하지 않았어도.
내 아들은 지금 살아 있을까.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방금 아들의 사망 신고를 했다.
숨이 가빠져 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딱꾹질이 나고 눈이 희미하다.
그런데 눈 앞에 교회 간판이 보인다.
“신애 씨, 꼭 한 번 교회 가봐요.”
그 순간 동네 약사 아주머니 말이 생각이 났다.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박수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끌리듯 앉았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 멈출 수가 없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사라진 것 같다.
목사님이 다가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신다.
머리가 따뜻해진다. 아, 따뜻하다.
가슴속이 불이 붙은 것 같다.
뜨거워진다. 뜨겁다.
숨이 쉬어진다.
이제야 숨이 쉬어진다.
아, 하나님!
하나님이시구나.
나를 위로하시는구나.
이 찢어지는 마음 다 아시는구나.
폭포수처럼 눈물만 쏟아냈다.
아, 하나님!
정신이 차려졌다.
내가 혼자가 아니었구나!
늘 함께 하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제,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교회에 등록을 했다.
이젠 교회 식구들도 생겼다.
혼자가 아니다.
이렇게 편안해도 될까 싶지만
매일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런데도 가끔은 사무치게 외롭고 무섭다.
아들 생각이 날 때면 눈을 꽉 닫고
주문 외우듯 기도를 한다.
주여, 도와주소서!
주여, 도와주소서!
오늘따라 환청까지 들리는 것 같다.
학원 아이들 소리가 꼭 아들 소리만 같다.
주여, 도와주소서.. 제발..
학원 아이들을 집에다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그런데 골목에서 어떤 여자애가 남자애들에게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차를 뒤로 빼 자세히 보았다.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의 딸이다.
내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의 딸.
도와달라는 눈빛이다.
순간 액셀을 밟았다.
화가 났다.
고개를 돌려 버렸다.
빨리 도망가야 했다.
“끼익~~~”
아차! 빨간 불이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람을 칠 뻔했다.
내가, 내가, 사람을 죽일 뻔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미안하면 답니까?
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다면 답니까?”
왠지 억울하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난 살인자가 아니에요.
진짜 살인자는 감옥에 있다고요.
난 미안하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고요.
그 순간 나를 보던 그 사람의 딸이 생각났다.
멍든 얼굴을 내가 모른 척했지.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그 사람 잡지도 못했을 텐데.
그래도 너무 미웠다. 밉다. 미안하다. 얘야.
이런 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닐 텐데.. 괴롭다.
이 죄를 씻고 싶다. 이 죄책감을.
이 미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을 깨끗이 용서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잖아.
그래,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걸 거야.
그 아이를 본 것도 싸인일 거야.
교회 모임에 가서 말했다.
나의 결심을.
살인범을 용서하러 가겠다고 했다.
다들 걱정하는 눈치다.
내 일이라면 무조건 따라나서는
종찬 씨도 구시렁거렸다.
다니는 교회 목사님은
용서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리셨다.
간다고 고집부렸다.
아니요. 전 할 수 있어요. 용서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기어코 하나님을 전할 거예요.
전 좋은 사람이니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니까요.
그 사람이 내 앞에 앉았다.
안색이 좋아 보인다.
눈을 떨구고 있다.
“안색이 좋아 보이시네요.”
“미안합니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건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눈이 커졌다.
그래, 놀랄 만도 하지.
그런데, 그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이 이 죄인을 만나주셨습니다. 이 죄인을 만나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준이 어머니를 위해 매일 기도했습니다.”
말도 안 돼. 뭐라고?
하나님이 만나주셨다고? 당신을?
어째서?
하나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저 파렴치한 사람을 내가 용서해주겠다는데
하나님이 뭔데 먼저 용서를 하세요?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분 아니시잖아요?
공명정대하신 분이잖아요.
하나님은 나 사랑하시잖아요.
제 마음 아시잖아요.
저 사람은 내가 용서한 다음 사랑하셔야죠.
저 사람이 무슨 자격이 있어요?
저한테 미안하다고 무릎 꿇고 빌지도 않았는데 벌써 용서하시다니요?
나한테 왜 이러세요? 나 사랑하신다면서?
제가 하나님 전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벌써 만나실 수가 있죠?
어떻게 저런 사람이 매일 뻔뻔하게 행복하고 편안할 수가 있어요?
화가 난다. 화를 멈출 수가 없다.
그 평안함을 알기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접견실을 나오면서 준비했던 꽃을 버렸다.
다시 숨이 안 쉬어진다. 숨이 안 쉬어진다.
눈을 뜨니 병원이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하나님도 싫다.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교회 사람들도 싫다.
다시 혼자다.
내 편인 줄 알았던 존재가
내 편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화가 난다. 화가 멈추지 않는다.
이건 분명 나를 기만한 거야.
두고 보라지.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혼자라고 생각하니
텅 빈 집이 너무 무섭다.
다시 환청이 들린다.
오싹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게 다 하나님 때문이야.
복수할 거야. 용서도 못하게 했잖아.
용서만 하게 해 줬으면
나도 편안 해졌을 텐데.
똑똑히 봐요.
내가 어떻게 하는지.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되었다.
도둑질을 해보려다 들켰다.
장로님을 자자고 꼬셨는데 실패했다.
종찬 씨도 넘어오지 않았다.
왜 자꾸 방해하시는 거예요? 하나님?
나 안 질 거예요.
이젠 마지막 수단이다.
내가 죽는 수밖에.
과일을 깎는 척하고
손목을 그었다.
빨간 피가 터져 나왔다.
하늘을 보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되려 갑자기 무서웠다.
잠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길거리에 뛰어들었다.
차들이 이리저리 비껴갔다.
살려 주세요!
하나님 살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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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퇴원 날이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종찬 씨.
오늘도 왔네. 꽃까지 들고.
또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했다.
머리나 먼저 자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동네 미용실에 들어갔다.
미용실 원장이 스텝을 불러냈다.
머리를 잘 자른단다.
그 아이다.
또 그 사람의 딸이다.
왜 하필 오늘. 왜 여기서.
내 머리를 자르며
그 아이가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뛰쳐나와 버렸다.
따라 나오는 종찬 씨에게 따졌다.
왜 여기 데려 왔냐고.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누가 날 여기 데려다 놨는지.
종찬 씨가 아니다. 하나님이다.
죽지도 못하게 하더니
왜 또 하필 그 아이를.
그 날 못 본 척해서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라는 건가요?
그 아이가 소년원 간 게 제 잘못인가요?
원하시는 게 뭐예요?
다시 화가 난다.
집으로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머리는 반만 잘렸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 옷집 아주머니가 물었다.
“머리가 와 이라노?”
“마음에 안 들어서 중간에 나왔어요.”
“옴마, 미쳤는가 보다”
미친 것 맞지.
뭔가 통쾌하다. 솔직해서 좋네.
오랜만에 둘이서 크게 웃었다.
이젠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겠다.
반만 잘린 머리가 가관이다.
직접 자르지 뭐.
가위를 들고 거울을 올려놨다.
어느새 종찬 씨가 나타나 거울을 들어준다.
나 참, 이 사람.. 끈질기다.
그렇게 구박해도 여기까지 와선..
머리를 자르니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햇빛이 참 따듯하다.
집이 먼지가 쌓여 엉망인데도
이 누추한 곳에 햇빛이 든다.
그래도 햇빛이 든다.
신애야, 사랑하는 내 딸, 신애야
*영화 <밀양>과 원작 <벌레이야기>를 참고한 개인적인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