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Play LOVE

<영화 밀양(2007)>리뷰

신애야, 사랑하는 내 딸 신애야.

by SUN KIM

아들이 죽었다.

내 아들 준아. 내 하나뿐인 아들!


꼭 나 때문인 것만 같다.

내가 땅을 살 것처럼 허세만 부리지 않았어도

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만 하지 않았어도.

내 아들은 지금 살아 있을까.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방금 아들의 사망 신고를 했다.

숨이 가빠져 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딱꾹질이 나고 눈이 희미하다.

그런데 눈 앞에 교회 간판이 보인다.

“신애 씨, 꼭 한 번 교회 가봐요.”

그 순간 동네 약사 아주머니 말이 생각이 났다.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박수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끌리듯 앉았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 멈출 수가 없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사라진 것 같다.


목사님이 다가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신다.

머리가 따뜻해진다. 아, 따뜻하다.

가슴속이 불이 붙은 것 같다.

뜨거워진다. 뜨겁다.

숨이 쉬어진다.

이제야 숨이 쉬어진다.


아, 하나님!

하나님이시구나.

나를 위로하시는구나.

이 찢어지는 마음 다 아시는구나.


폭포수처럼 눈물만 쏟아냈다.

아, 하나님!


정신이 차려졌다.

내가 혼자가 아니었구나!

늘 함께 하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제,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교회에 등록을 했다.

이젠 교회 식구들도 생겼다.

혼자가 아니다.

이렇게 편안해도 될까 싶지만

매일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런데도 가끔은 사무치게 외롭고 무섭다.

아들 생각이 날 때면 눈을 꽉 닫고

주문 외우듯 기도를 한다.

주여, 도와주소서!

주여, 도와주소서!




오늘따라 환청까지 들리는 것 같다.

학원 아이들 소리가 꼭 아들 소리만 같다.

주여, 도와주소서.. 제발..


학원 아이들을 집에다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그런데 골목에서 어떤 여자애가 남자애들에게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차를 뒤로 빼 자세히 보았다.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의 딸이다.

내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의 딸.

도와달라는 눈빛이다.


순간 액셀을 밟았다.

화가 났다.

고개를 돌려 버렸다.

빨리 도망가야 했다.


“끼익~~~”


아차! 빨간 불이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람을 칠 뻔했다.

내가, 내가, 사람을 죽일 뻔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미안하면 답니까?

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다면 답니까?”

왠지 억울하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난 살인자가 아니에요.

진짜 살인자는 감옥에 있다고요.

난 미안하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고요.


그 순간 나를 보던 그 사람의 딸이 생각났다.

멍든 얼굴을 내가 모른 척했지.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그 사람 잡지도 못했을 텐데.

그래도 너무 미웠다. 밉다. 미안하다. 얘야.

이런 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닐 텐데.. 괴롭다.


이 죄를 씻고 싶다. 이 죄책감을.

이 미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을 깨끗이 용서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잖아.

그래,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걸 거야.

그 아이를 본 것도 싸인일 거야.




교회 모임에 가서 말했다.

나의 결심을.

살인범을 용서하러 가겠다고 했다.

다들 걱정하는 눈치다.

내 일이라면 무조건 따라나서는

종찬 씨도 구시렁거렸다.


다니는 교회 목사님은

용서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리셨다.

간다고 고집부렸다.


아니요. 전 할 수 있어요. 용서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기어코 하나님을 전할 거예요.

전 좋은 사람이니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니까요.




그 사람이 내 앞에 앉았다.

안색이 좋아 보인다.

눈을 떨구고 있다.


“안색이 좋아 보이시네요.”

“미안합니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건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눈이 커졌다.

그래, 놀랄 만도 하지.


그런데, 그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이 이 죄인을 만나주셨습니다. 이 죄인을 만나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준이 어머니를 위해 매일 기도했습니다.”


말도 안 돼. 뭐라고?

하나님이 만나주셨다고? 당신을?

어째서?




하나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저 파렴치한 사람을 내가 용서해주겠다는데

하나님이 뭔데 먼저 용서를 하세요?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분 아니시잖아요?

공명정대하신 분이잖아요.


하나님은 나 사랑하시잖아요.

제 마음 아시잖아요.

저 사람은 내가 용서한 다음 사랑하셔야죠.

저 사람이 무슨 자격이 있어요?


저한테 미안하다고 무릎 꿇고 빌지도 않았는데 벌써 용서하시다니요?

나한테 왜 이러세요? 나 사랑하신다면서?

제가 하나님 전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벌써 만나실 수가 있죠?

어떻게 저런 사람이 매일 뻔뻔하게 행복하고 편안할 수가 있어요?


화가 난다. 화를 멈출 수가 없다.

그 평안함을 알기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접견실을 나오면서 준비했던 꽃을 버렸다.

다시 숨이 안 쉬어진다. 숨이 안 쉬어진다.




눈을 뜨니 병원이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하나님도 싫다.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교회 사람들도 싫다.


다시 혼자다.

내 편인 줄 알았던 존재가

내 편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화가 난다. 화가 멈추지 않는다.

이건 분명 나를 기만한 거야.

두고 보라지.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혼자라고 생각하니

텅 빈 집이 너무 무섭다.

다시 환청이 들린다.

오싹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게 다 하나님 때문이야.

복수할 거야. 용서도 못하게 했잖아.

용서만 하게 해 줬으면

나도 편안 해졌을 텐데.


똑똑히 봐요.

내가 어떻게 하는지.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되었다.


도둑질을 해보려다 들켰다.

장로님을 자자고 꼬셨는데 실패했다.

종찬 씨도 넘어오지 않았다.

왜 자꾸 방해하시는 거예요? 하나님?

나 안 질 거예요.


이젠 마지막 수단이다.

내가 죽는 수밖에.

과일을 깎는 척하고

손목을 그었다.

빨간 피가 터져 나왔다.

하늘을 보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되려 갑자기 무서웠다.


잠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길거리에 뛰어들었다.

차들이 이리저리 비껴갔다.

살려 주세요!

하나님 살려 주세요..


———————-


오늘은 퇴원 날이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종찬 씨.

오늘도 왔네. 꽃까지 들고.


또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했다.

머리나 먼저 자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동네 미용실에 들어갔다.


미용실 원장이 스텝을 불러냈다.

머리를 잘 자른단다.


그 아이다.

또 그 사람의 딸이다.

왜 하필 오늘. 왜 여기서.


내 머리를 자르며

그 아이가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뛰쳐나와 버렸다.

따라 나오는 종찬 씨에게 따졌다.

왜 여기 데려 왔냐고.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누가 날 여기 데려다 놨는지.

종찬 씨가 아니다. 하나님이다.

죽지도 못하게 하더니

왜 또 하필 그 아이를.


그 날 못 본 척해서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라는 건가요?

그 아이가 소년원 간 게 제 잘못인가요?

원하시는 게 뭐예요?

다시 화가 난다.


집으로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머리는 반만 잘렸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 옷집 아주머니가 물었다.

“머리가 와 이라노?”

“마음에 안 들어서 중간에 나왔어요.”

“옴마, 미쳤는가 보다”


미친 것 맞지.

뭔가 통쾌하다. 솔직해서 좋네.

오랜만에 둘이서 크게 웃었다.

이젠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겠다.




반만 잘린 머리가 가관이다.

직접 자르지 뭐.

가위를 들고 거울을 올려놨다.

어느새 종찬 씨가 나타나 거울을 들어준다.


나 참, 이 사람.. 끈질기다.

그렇게 구박해도 여기까지 와선..


머리를 자르니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햇빛이 참 따듯하다.

집이 먼지가 쌓여 엉망인데도

이 누추한 곳에 햇빛이 든다.


그래도 햇빛이 든다.





신애야, 사랑하는 내 딸, 신애야





*영화 <밀양>과 원작 <벌레이야기>를 참고한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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