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Day-74

중은 제 머리를 못 깎는 게 당연하다.

by SUN KIM

근래에 나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을 한 두번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요즘 좋지 않은 나의 심리상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자조적인 말을 하고 난 뒤부터 기분이 아주 찜찜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저게 무슨 말일까.

사실 사람은 누구나 긴팔 원숭이가 아닌 이상 자신의 머리를 깎을 수 없다. 하지만 저 문장은 '중'이라는 특수성이 부여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직업이 '중'인데 왜 자기 머리조차 못 깎느냐는 말이다. 어찌 보면 스님은 일반인보다 자신의 머리를 깎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직업을 빗대어 보자면, 내과 의사가 암에 걸렸다거나, 세무사가 파산한다거나, 정신과 의사 또는 심리상담사가 정신병에 걸리는 것이겠다. 의사는 암에 걸려도 세무사는 돈이 없어서도 상담사는 우울증에 걸려서도 안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의사, 세무사, 상담사 모두 사람일 뿐인 것을.

어느 의사의 고백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암에 걸리기 전에는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왜 그리 아파하고 힘들어하는지 몰랐고 한다. 암에 걸리고 나서야 오히려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고, 더 나은 의사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의 말은 암에 걸려야 더 나은 의사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저 문제의 문장을 들었던 이유는 내가 십 년이 다되는 세월 동안(학부부터 석사까지) 심리학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력증과 우울증 초기 또는 중기 증상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정이 되지 않고, 사람들을 붙잡고 얘기하고, 무기력하면서 감정이 왔다 갔다 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는 나도 생애 처음 겪었다. 황당할 정도니 말 다했다. 나를 오랫동안 알던 사람들도 당황할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난 이제야 내담자들이 왜 그렇게 무기력했는지 알 수 있었고, 그 이유를 더 마음 속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저 말에 수긍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다시 생각할수록 그건 아니었다. 중은 제 머리를 못 까는 게 당연하고, 머리는 누군가가 정성스레 깎아주어야 하는 거다. 함부로 스스로 깎으려 했다가는 두피에서 피가 철철 날 것이 뻔하다. 스스로 방사선 같은 암 치료를 하는 의사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건 당연하다. 사람이니까. 옆에 깎아 줄 사람만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를 깎을 수 없으니 스님의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출 수가 없는 게 진실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중'의 능력을 비하하는 뜻이 아니라 똑같은 약점을 가진 인간이라는 뜻인 것 같아서 말이다. 한낱 미물인 우리 모두는 아프다. 아플 때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게 좋다. 그리고 죄책감없이 돌봄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능력의 한계를 가진 인간들이 서로 돕자고 사회라는 게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2019년 05월 03일 금요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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