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착각
퇴사를 통해 알게 된 진짜 나의 모습
서른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나는 나를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년의 나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일이 버겁다고 느끼기도 했고, 유리멘탈이기는 했지만 스스로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생활도 크게 무너져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주말에 출근하기도 하고, 야근을 자주 하기는 했지만, 아주 가끔 친구들도 만나고, 문화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웃기도 했고,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꼭 겪어야만 아는 것일까. 내가 나를 조금씩 무너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겪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나를 무너지게 하는 것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더라. 조금씩 찌푸려지던 얼굴, 무거운 발걸음, 한 톤 높아진 톤의 대화.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엔가는 '저 차를 받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지금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는 거구나.'
근 2년 동안의 내 업무는 남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자발적 의지가 결여된 사람들에게 의지를 불어넣는다거나 그런 사람들의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돕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상담'이나 '정신과' 방문에 어떤 불편함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코 앞의 내 일이 되고 보니, 이성적으로 생각하던 것과 달리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만 굳건해졌다.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 일을 계속하며 상담이나 병원을 다니느니 퇴사를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아마도 1,2달을 더 다녔다면 그땐 정말 전문가를 찾았어야 했으리라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이 한데 입을 모아 그리 말해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지지해 주었던 그 마음이 가장 든든했다. 그렇게 퇴사를 한 후 6개월이 지나 나는 다시금 나를 되찾았다. 나를 되찾았다는 말보다 나의 생활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누구나 이런 결정(상황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사람마다의 상황이 다 제각기이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 나처럼 도망치라고 얘기할 수 없음을 말이다. 내가 책임질 식구는 오로지 나뿐이다. 다행히도 2년 전 독립을 했기에 마음 편히 누워 있을 '자기만의 방'도 갖추고 있다.
6개월 동안 나는 참 나를 잘 돌봤다. 잘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놀아주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렇다고 아주 힘이 넘치는 무쇠의 상황은 아니었기에, 하루하루 매일을 잘 보내는 것 자체를 단기 목표로 삼았다. 그 시간들을 보내며 마음먹었던 것이 '이제 다시 가지게 될 직업은 오늘 마음의 짐은 오늘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였다.
그리고 나는 다음 직업으로의 전환기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과연 오늘 마음의 짐을 오늘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아직 이른 판단이지만, 어쩌면 매일의 짐을 내려놓고 퇴근할 수도 있겠다 싶은 자리에 가까이 서있는 것 같다.(물론 한 달만 지나도 아닐 수 있지)
6개월 휴식기를 끝내고 맞이한 시작은 하루 만에 도망치게 된 카페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