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미 ‘통계 밖’의 사람이었다.
조선 시대였다면, 나는 벌써 생을 정리했어야 할 나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식스팩을 만들겠다고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숨을 고르다 문득 옆을 보았다.
새파란 청년이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탄탄한 가슴 근육, 쉼 없이 오르는 호흡.
나는 슬쩍 시선을 내려 내 배를 본다.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 둥글어진 복부와 희끗한 가슴팍.
조선 시대였다면 이미 뒷방 늙은이로 들어앉아 수의를 준비했을 나이에,
나는 지금 쇠질을 하고 있다.
웃음이 났다.
이 풍경은 어딘가 우스우면서도, 이상하게 벅찼다.
교단에 서 있던 시절, 나는 아이들에게 늘 말하곤 했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통계를 보라고.
인구 피라미드를 그리고, 생애 주기를 설명하며
인간의 삶은 이런 흐름을 따른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내가 가르쳤던 그래프 어디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근대 이전의 인류에게 마흔은 생의 종착역이었다.
예순의 나는 이미 한 번의 생을 마감하고 사라졌어야 할 존재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고,
새로 산 등산화는 소래산 흙을 파고들 기세로 살아 있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된다.
코끝에 걸친 돋보기가 자꾸 미끄러진다.
커서를 쫓다가 고개를 들면 글자가 번지고,
안경을 벗으면 자판은 희미한 점으로 흩어진다.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안경다리와 씨름하며 오타 하나를 잡는다.
고요한 서재 안에서 벌어지는, 나만의 격렬한 싸움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이 마흔이 넘어 눈이 어두워 직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18세기 어느 대관이 올렸다는 사직 상소문이다.
그 시절이라면 나는 이미 물러났어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물러나는 대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퇴직 후, 나는 작가가 되었다.
선비천사라는 조금은 쑥스러운 이름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내 앞에 펼쳐진 것은
흐릿한 노안의 세계가 아니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문장의 신대륙이었다.
물론 몸은 정직하다.
무협 소설의 검술을 쓰다가 무릎이 시큰거리고,
밤을 새우면 다음 날 눈동자에 안개가 낀다.
조선의 선비들이 말하던 기력의 쇠함이
불쑥불쑥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큰거림이 싫지 않다.
이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두 번째 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양양의 바다를 걸을 때, 나는 생각한다.
예순이라는 나이를
노령 인구라는 숫자로 가두고 싶지 않다고.
대신 이렇게 부르고 싶다.
익어가는 문장이라고.
옛사람들이 마흔에 마침표를 찍었다면,
나는 예순에 쉼표 하나를 찍는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회교사 방철호의 삶은 충분히 아름답게 끝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사회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나만의 시선으로 마음의 무늬를 새기는 사람이 되었다.
거울 속 눈가의 주름을 손으로 짚어본다.
이 주름 속에 쌓인 시간은
어떤 사직서보다 단단하고, 유연하다.
치아는 흔들릴지언정 문장은 흔들리지 않기를,
눈은 흐릿해질지언정 세상을 보는 시선은 더 맑아지기를.
다시 돋보기를 고쳐 쓰고 자판 위에 손을 올린다.
식스팩은 아직 멀었지만,
내 마음의 근육은 이미 소래산 정상까지 닿아 있다.
조선 시대 기준으로 보면
나는 이미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
그렇게 얻은 이 덤 같은 삶을
나는 허투루 쓰지 않으려 한다.
과거의 내가 가르쳤던 세상이 사실이었다면,
지금 내가 써 내려가는 세상은 진실이다.
예순.
죽기엔 아직 이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엔 가장 깊어진 나이.
나는 오늘,
내 삶의 두 번째 페이지를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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