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옆, 거실의 가장 익숙한 구석에는 낡은 골동품 괘종시계 하나가 서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알시계’라고 점잖지 못하게 부르곤 하지만, 내게 그 명칭은 기이할 정도로 생물학적이다. 그것은 기계의 부속이 아니라, 거대한 거인의 고관절 아래 매달린 채 쉼 없이 흔들리는 생식기이자, 내 생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려는 가학적인 박동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TV 화면에서 눈을 돌려 그 시계를 본다. 아니, 시계가 나를 부른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황동빛 추가 좌우로 가로지르는 그 일정한 궤적은 일종의 시각적 최면이다. 나는 그 금속의 왕복 운동에 시선을 포박당한 채, 내 삶이 야금야금 잠식당하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노예가 된다.
시계의 추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는다. 그 무정한 성실함이 나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째깍거리는 금속음은 정적을 깨는 소리가 아니라, 내 생의 마디마디를 잘라내는 작두 소리다. 추의 각도가 왼쪽 끝에 닿았다가 오른쪽으로 꺾이는 그 찰나, 내 망막의 세포는 사멸하고 혈관의 탄력은 미세하게 줄어든다. 시계는 밖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생명력을 동력 삼아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저 황동 추를 응시하는 시간만큼 나의 시력은 흐려지고, 나의 집중력은 휘발된다. 시계는 나라는 존재를 연료로 태워 자신의 박동을 이어가는 기괴한 기생 생물이다.
가끔은 TV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시계의 존재감이 거실을 압도한다. 화면 속 화려한 이미지들은 허상처럼 느껴지고, 오직 저 시계만이 유일한 실재처럼 다가온다. 그럴 때면 나는 시계의 최면에 걸린 채 자문한다.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저 시계의 속도에 맞춰 죽어가고 있는가. 시계는 내게 효율적인 삶을 강요하며 마감이라는 단두대를 들이밀지만, 정작 그 마감을 지키기 위해 내가 지불하는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육신의 시간’이다. 1분을 아끼려 허둥대는 순간마다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고 수명은 깎여 나간다. 시계는 내게 시간을 절약하라고 속삭이면서, 정작 내 삶의 농밀한 순간들을 숫자의 조각으로 파편화해 앗아간다.
욕실 타일 위에 떨어진 가느다란 머리카락이나 거울 속 깊어진 눈가의 주름은 시계가 다녀간 흔적이다. 시계는 밤낮없이 내 몸을 훑으며 노화라는 이름의 세금을 징수해 간다. 특히 정전이라도 되어 집안의 모든 기계가 숨을 죽인 밤, 나는 비로소 내면의 진짜 시계 소리를 듣는다. 쿵, 쿵, 쿵. 기계적 소음에 가려졌던 내 심장의 고독한 투쟁이다. 시계는 외부의 객관적인 시간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이 내면의 박동이 잦아들고 있음을 망각하게 만든다. 숫자에 매몰되어 '지금 몇 시인가'를 묻는 동안, 우리는 '나는 지금 얼마나 소멸했는가'라는 질문을 회피한다. 시계는 우리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게 하여 수명이 도둑맞는 현장을 은폐하는 가장 교활한 공범이다.
이제 나는 저 골동품 시계를 볼 때 바늘의 앞모습보다 그 뒤에서 톱니바늘이 서로를 짓이기며 내뱉는 비명을 상상한다. 그 소음은 곧 나의 비명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시계라는 감옥에 수감되는 죄수와 같다. 하지만 이 약탈자에게 저항할 방법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시계가 정한 균일한 속도를 무시하는 ‘황홀한 태만’뿐이다.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 속에 고인 온기를 들여다보느라 초침이 몇 번을 돌았는지 잊어버리는 순간, 혹은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쫓느라 황동 추가 몇 번을 왕복했는지 상관하지 않게 되는 그 찰나에만 우리는 시계의 노예 문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방 벽의 시계는 여전히 째깍거린다. 저 소리는 내 관에 못질하는 소리이자, 동시에 내가 아직은 이 소멸의 축제에 초대받아 있다는 역설적인 신호다. 시계는 내 수명을 앗아감으로써 비로소 나를 ‘끝이 있는 존재’로 완성한다. 비록 시계가 내 육신을 조금씩 갈아내어 무덤으로 보내고 있을지라도, 나는 그 갈려 나가는 가루 속에 깃든 찬란한 순간들을 기억하려 한다. 오늘 밤도 나는 저 황동 추의 최면을 견디며, 시계가 결코 가져갈 수 없는 나만의 기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개간한다. 앗아가는 수명을 슬퍼하기보다, 그 수명이 타들어 가며 내뿜는 마지막 불꽃의 농도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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