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고 황홀한 불면의 방

by 선비천사

하얀 복도가
밤새 조금씩 늘어난다


형광등 하나
제때 꺼지지 못해

가늘게 떤다


벽을 따라
문장들이 서 있다


사람이 아니라
덧난 문장들


어깨를 스칠 때마다
등 뒤의 긁힘이
희미하게 번진다


누군가 오래전
손톱으로 남겨둔 자리


주머니 속에서
말들이
유리처럼 부딪힌다


손을 넣으면
조용히 베인다


복도 끝
누군가는 벽을 짚고


또 누군가는
잠의 깊은 쪽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문들은 닫혀 있다


그래도

발걸음이 지난다


바닥에
밤이 고이고


그 위로
붉은 것이 번진다


처음에는
피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피가 아니다


이 방에서는


밤이 오래 고이면


안쪽에서


꽃처럼


터진다


복도 어딘가에서
지금도


덧난 문장 하나가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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