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 베란다 구석에서 죽은 듯 버티던 제라늄이 기어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생명의 신비라 부르며 찬미하지만, 식물의 생태를 아는 이에게 개화(開花)는 곧 처절한 소모의 기록이다. 꽃은 제 몸의 가장 깊은 곳에 저장해 두었던 마지막 수분과 영양을 쥐어짜 단 한 번의 붉은색을 완성한다. 꽃이 화려해질수록 잎은 누렇게 뜨고 줄기는 비쩍 마른다. 누군가의 절정은 반드시 누군가의 고갈을 먹고 자란다. 사랑 또한 이 잔인한 식물의 생리와 다르지 않음을, 나는 무너져가는 연인의 어깨너머로 배운 적이 있다.
사랑이란 말은 본래 몸서리치는 고독이 낳은 사생아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에 가닿으려 애쓰지만, 사실 '나'라는 우주와 '너'라는 우주 사이에는 광년(光年)의 거리가 가로놓여 있다. 일찍이 서정주 시인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 했듯, 우리를 사랑으로 내모는 건 팔 할이 결핍이다. 내가 결코 네가 될 수 없고, 네가 끝내 내가 될 수 없다는 그 절망적인 명제가 우리를 타인의 살결 속으로 파고들게 만든다. 그러나 살과 살이 맞닿는 순간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온기가 아니라, 도저히 섞일 수 없는 타인이라는 서늘한 벽의 재확인이다. 사랑은 결합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심연을 확인하는 유배지일 뿐이다.
오래된 연인과 낡은 식탁에 마주 앉아 찌개를 나누던 저녁을 기억한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적막을 메우던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랑한다는 고백은 사실 '홀로'라는 깊은 우물 속에 침몰하지 않기 위해 내지르는 비명이라는 것을. 아득한 태고부터 인간은 혼자라는 공포를 잊기 위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는 때로 환희에 찬 웃음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캄캄한 목구멍 속에서 터져 나오는 찢어지는 울음소리의 변주다. 우리는 서로의 외로움을 위로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고독을 응시하며 안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시린 진실은 사랑의 포식성(捕食性)에 있다. 전설 속의 살모사는 어미의 옆구리를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 어린 맹독들이 어미의 붉은 생살을 파고들 때, 그것은 존속을 위한 본능인가 아니면 최초의 배신인가. 사랑 역시 그러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나의 자아는 당신의 영혼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당신의 시간을 갈구하고, 나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당신의 감정을 소모시킨다. 당신이 나로 인해 조금씩 투명해질 때 비로소 나는 붉게 피어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봄바람이 이토록 잔인한 이유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상대의 무너짐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나의 꽃을 피우기 위해 너라는 토양을 황폐화해야만 하는 비극. "사랑해"라는 밀어 뒤에는 "나를 위해 당신의 자리를 내어달라"는 무서운 요구가 숨어 있다. 어미의 몸을 파먹고 자란 살모사 새끼가 붉은 피울음을 터뜨리며 존재를 증명하듯, 우리의 사랑 역시 누군가의 희생과 배신 위에서 비로소 그 화려한 허물을 벗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형벌 같은 굴레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기꺼이 그 굴레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혼자라는 절대적인 영하의 추위 속에서 얼어 죽기보다는, 서로를 파먹으며 잠시나마 얻는 그 뜨거운 비린내를 선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서로를 파괴함으로써만 서로와 연결될 수 있는 불완전한 종족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영혼에 낸 생채기가 흉터가 되고, 그 흉터를 나누어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라는 가냘픈 이름을 얻는다.
베란다의 제라늄은 결국 꽃을 떨구었다. 붉은 조각들이 시멘트 바닥에 흩뿌려진 모습은 마치 치열했던 배신의 흔적 같다. 그러나 꽃이 진 자리에는 옹이 같은 자국이 남았고, 그 자국이야말로 이 생명체가 타올랐다는 유일한 증거다. 사랑도 결국은 그런 것이다. 남의 피로 낯을 붉히는 봄꽃처럼 잔인하고 오만하지만, 그 상처와 배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생의 그 어떤 봄날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축복이 아니라 가장 거룩한 형태의 형벌이라는 것을.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나는 당신을 해치고, 당신에게 무너짐으로써 나는 비로소 완성된다. 이 지독한 역설이 바로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사라지지 않는 숨의 실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기꺼이 당신의 옆구리를 파고들며, 이 붉은 배신의 봄 속으로 침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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