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라는 조각칼이 나를 깎아낼 때

by 선비천사

몸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조각칼이 하나 들어있다. 수년 전, 예고 없이 찾아와 내 삶의 모든 색채를 앗아갔던 '우울'이라는 이름의 칼이다. 그 칼은 한동안 내 영혼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형벌처럼 느껴지고,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한 올조차 나보다 생기 있어 보이던 그 시절, 나는 그 칼날이 나를 죽이러 온 자객인 줄로만 알았다. 침대라는 좁은 감옥에 갇혀 천장의 얼룩이 기괴한 형상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며 보냈던 그 지독한 시간들. 다시는 그 어둠의 터널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나를 정교하게 빚어낸 일등 공신은 바로 그 서늘한 칼날이었다.


고통은 나를 파괴하는 듯했으나, 실상은 나라는 원석에서 불필요한 고집과 오만을 깎아내고 있었다. 우울의 심연에 가라앉아 숨이 막혀본 적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슬픔을 '의지의 문제'나 '기분 탓'이라 치부하기 쉽다. 나 또한 한때는 그랬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서 점막이 타 들어가는 고독을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타인의 작은 떨림을 읽어내는 눈을 얻었다. 이제 나는 지하철역 계단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낯선 이의 뒷모습에서 그를 짓누르는 생의 무게를 본다. 예전의 내가 타인의 부족함을 '나태'로 규정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면, 지금의 나는 그것을 '치열한 버티기'로 읽어낸다. 고통이 내 자아를 거칠게 깎아낸 자리에 비로소 '관용'이라는 넓은 빈터가 생긴 것이다. 내가 겪은 영혼의 결핍은 타인의 결심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귀가 되었고, 나의 비참함을 대면하며 얻은 낮은 시선은 타인의 허물을 따스하게 덮어줄 수 있는 손길이 되었다.


부족함이 주는 감사함 또한 그 황폐한 사막에서 길어 올린 생명수였다. 모든 것이 충족되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영혼의 기근을 겪고 나자 비로소 선명한 고화질로 다가왔다. 우울의 한복판에서 간절히 바랐던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밥 한 술을 넘기고, 아무런 자책 없이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는 일상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온 지금, 나는 창가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이 내 손등을 비출 때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평범한 오후, 편안하게 들이마시는 한 모금의 공기가 얼마나 거대한 우주의 축복인지 나는 우울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배웠다. 고통은 내 삶의 해상도를 극한으로 높여주었고,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기적'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하여 그 시린 계절은 나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밀도 있고 풍요로운 인간으로 다시 살게 했다.


반면, 그 고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내가 선택했던 달콤한 도피처들은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 우울이라는 괴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내가 붙잡았던 것은 즉각적인 육체적 쾌락이었다. 새벽까지 들이켜는 독한 술은 뇌를 마비시켜 잠시나마 생각의 지옥에서 나를 꺼내주었다. 하지만 술기운에 취해 잠든 다음 날 아침, 입안에 남은 그 텁텁하고 비릿한 후회의 맛은 어떠했던가. 매캐한 담배 연기를 허파 깊숙이 밀어 넣으며 나는 그것이 생의 환희라고 착각했다. 기름지고 화려한 음식들로 마음의 허기를 메우려 할수록, 내 몸은 무거워졌고 영혼은 비대해진 만큼 무기력해졌다. 쾌락은 고통처럼 나를 깎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야금야금 '파먹고' 있었다.


쾌락은 조각칼이 아니라 부식액이었다. 달콤한 액체에 젖어드는 사이, 나의 의지는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고 생의 감각은 무뎌졌으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엄격함은 거세당했다. 좋은 음식과 술은 혀끝을 즐겁게 했으나 영혼을 게으른 비만 상태로 만들었고, 결국 나를 생의 주인이 아닌 말초신경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쾌락에 탐닉할수록 나는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갔다. 그것은 화려한 포장지로 감싼 소멸이었고, 향기로운 꽃길로 위장한 늪이었다. 고통이 나를 정상을 향해 밀어 올리는 거친 채찍이었다면, 쾌락은 나를 안락이라는 이름의 관(棺) 속으로 눕히는 달콤한 마취제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확신한다. 나를 진정으로 살게 한 것은 나를 아프게 했던 그 날카로운 우울의 칼날이었고, 나를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 넣었던 것은 나를 즐겁게 했던 그 부드러운 유혹들이었음을. 고통은 나를 단련하여 세상이라는 광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었으나, 쾌락은 나를 어두운 방안에 가두어 서서히 증발하게 하는 유독가스였다.


물론 지금도 고통은 두렵다. 다시는 그 캄캄한 심해로 가라앉아 숨을 헐떡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만약 내 삶에 다시 시련이 찾아온다면, 나는 예전처럼 술병 뒤로 숨거나 담배 연기 속으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 통증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이번에는 내 안의 어떤 모난 구석을 깎아내어 타인을 품을 공간을 만들려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려 한다. 부족함을 기꺼이 껴안고, 통증을 통해 세상의 모든 아픈 것들과 연대하며, 그렇게 조금씩 더 '사람 냄새나는 사람'으로 조각되어 가고 싶다.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내 영혼에 선명하게 새겨진 고귀한 흉터들이고, 나를 경계하게 하는 것은 쾌락이 남긴 비겁한 잔향이다. 나는 오늘도 내 몸의 흉터들을 훈장처럼 어루만지며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강인해졌음을 느낀다. 내 삶은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아팠기에 풍요롭고, 부족했기에 감사하며, 상처 입었기에 비로소 타인의 상처를 알아본다. 이것이 고통이 나에게 선물한, 그 어떤 쾌락도 줄 수 없는 찬란한 생의 감각이다.




*같이 읽으면 좋은 글

사랑이라는 말은 입안에 남는 숨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

작가 방철호의 블로그 방문하기

[전자책]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

이전 28화시계불알이 내 수명을 깎아 먹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