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놋그릇에는 역고드름이 솟았다

- 신은 존재할까, 60년의 술래잡기

by 선비천사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의 수를 헤아리는 일은 모래사장의 알갱이를 세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다. 통계학자들은 대략 만 개 이상의 신앙 체계가 이 행성을 덮고 있다고 말하며, 기독교라는 거대한 지붕 아래에만 4만 5천 개의 세부 교파가 저마다의 진리를 외치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 숫자들은 때로 날카로운 창이 되어 서로의 가슴을 겨누고, 때로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가장 성스러운 종교는 그 수만 개의 통계표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어머니의 낡은 놋그릇 안에 살고 있었다.


한겨울, 칼바람이 문창살을 흔들던 새벽이면 어머니는 누구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 마당 끝 우물가에서 긷어 올린 첫 물, 그 서슬 퍼런 정화수를 닦고 또 닦은 놋그릇에 정성껏 담았다. 어머니에게 신은 멀리 있는 천국이나 극락의 주인이 아니었다. 장독대 위, 차가운 공기 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는 그 물그릇 앞에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비벼댔다. 지문이 닳도록 비비는 그 마찰 소리는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는 가장 낮은 기도의 언어였고, 신의 옷자락을 붙잡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어느 유독 추웠던 정월 초하루였을 것이다. 밤새 정성을 들이고 난 아침, 어머니는 비명 같은 환희를 내질렀다. 장독대로 달려간 내 눈앞에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놋그릇 속 꽁꽁 얼어붙은 정화수 위로, 하늘을 향해 꼿꼿이 솟아오른 은빛 기둥이 있었다. 역고드름이었다.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물 밑의 간절함이 응축되어 하늘로 치솟은 그 투명한 송곳. 어머니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그 얼음 기둥 앞에 연신 절을 했다. "신령님이 응답하셨다. 오냐, 오냐, 하시는구나."


과학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것은 기온과 기압, 물의 팽창이 만들어낸 희귀한 물리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 어머니의 세계에서 그 역고드름은 4만 5천 개의 교파가 가진 어떤 신학적 논증보다도 명징한 '신의 현존'이었다. 어머니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정화수를 떠놓고 온몸으로 기다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찾아온 역고드름을 보며, 자신의 정성이 닿았음을 확신하며 다시 일 년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나는 어느덧 이순(耳順)의 고개를 넘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단 하나였다.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때로 나를 무신론의 차가운 황무지로 내몰기도 했고, 때로는 이름 모를 신전의 문턱 앞에 서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닫는다. 신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를. 종교는 증명의 영역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문제'였음을, 어머니는 그 놋그릇 하나로 이미 내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깨달음이 내 안의 갈증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한다. 아마도 나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영원한 방랑자로 남을 것이다. 이 갈증은 신이 없어서 생기는 목마름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는 인간 본연의 동력일지도 모른다. 만 개의 종교가 있다는 것은, 결국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이 거대한 갈증의 만 가지 판본일 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종교의 숫자들 사이에서 길을 잃곤 한다. 내 종교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내 교파의 교리가 얼마나 정교한지를 따지느라 정작 신이 머물러야 할 마음의 빈 그릇은 챙기지 못한다. 만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신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들은 아마 성전의 높은 제단보다는 어머니의 얼어붙은 놋그릇처럼 가장 춥고 낮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아무도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지고 세상이 차갑게 얼어붙을 때면, 나는 내 마음속 놋그릇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비록 내 눈에는 역고드름 같은 기적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릇을 채우는 정성만큼은 어머니를 닮고 싶어 한다.


신은 숫자에 있지 않다. 신은 4만 5천 개의 교파 사이의 논쟁 속에 있지도 않다. 신은 오직, 얼어붙은 세상을 뚫고 솟아오르는 역고드름처럼, 우리의 지극한 정성이 기적처럼 응축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한다. 어머니의 그 맑았던 역고드름은, 오늘날 길을 잃은 만 개의 종교보다 훨씬 더 깊고 푸른 신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푸른 얼굴을 향해, 채워지지 않을 갈증을 안고 묵묵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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