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脂肪)을 태워 생(生)을 틔우다

by 선비천사














그날은 이른 호출로 시작되었다.

교무실 단체 메신저가 새벽을 깨웠다. 수업 변경과 긴급회의 공지.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나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강변도로에는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생활기록부 마감이 떠올라 마음이 조급했다. 차창을 닦으며 속도를 조금 높이던 순간, 안갯속에서 검은 형체 하나가 튀어나왔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타이어가 날카롭게 울렸다. 도로를 가로질러 뛰는 사람이었다. 화가 치밀었다가, 이내 멈췄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얼굴이 낯익었다. 동네에서 몇 번 마주친 이웃이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짧은 말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지나쳤다. 검은 운동복은 땀에 젖어 있었고, 숨은 거칠었다. 왜 저렇게까지 달리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병원 복도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있었고, 문틈 사이로 젊은 남자가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아들이었다. 간경화로 오래 병상에 누워 있고, 살기 위해서는 간 이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버지가 기증을 결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쉽지 않았다.


“지방간이 심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어렵습니다.”

의사의 말은 단호했다.

간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간을 맑게 만들어야 했다. 지방을 빼고 수치를 낮춰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술대에 오를 수조차 없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빼면 되는 거죠. 지방을.”


그날 이후, 그는 새벽을 달렸다.

출근 전, 아무도 없는 시간.

검은 운동복을 입고 강변도로를 따라 뛰었다. 빠르지 않았다. 숨은 거칠었고, 몇 번이나 멈춰 섰다. 허리를 숙이고 무릎에 손을 짚은 채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달리기는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체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간 속에 낀 지방을 빼내기 위해서였다.


몸속에 쌓인 기름기를 태워
아들에게 줄 간을 조금이라도 맑게 만들기 위해.


어느 날, 차를 세우고 물었다.

“계속 뛰시네요.”


그는 땀을 훔치며 웃었다.


“간 수치가 조금 내려갔다고 합니다. 아직 멀었지만요.”

숨은 거칠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수술하려면 깨끗해야 한답니다. 제 간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누군가는 몸을 줄여 체중계를 가볍게 만들고,

그는 몸을 줄여 간을 맑게 만든다.


나는 교사다.

아이들에게 노력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새벽은 어떤 교과서보다 분명했다. 지방을 태워내는 시간, 피검사 수치를 기다리는 시간, 다시 신발 끈을 묶는 시간. 그 모든 반복이 곧 한 문장이었다.


‘아들에게 줄 간을 만들고 있다’는 문장.


병원 복도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그는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마른 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그 손이 언젠가 아들의 몸 안에서 다시 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새벽길에서 속도를 늦춘다.
혹시 그가 보이면, 그가 태워내고 있을 보이지 않는 지방을 떠올린다. 몸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을 기름기와, 대신 남을 맑은 간을.


그는 여전히 달린다.
수술대에 오를 수 있을 만큼 깨끗해질 때까지.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간이 될 때까지.


새벽 공기는 차갑지만,
그의 숨은 뜨겁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줄여

누군가의 생을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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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자책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에 수록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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