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흉터는 내가 이 세상을 건너왔다는 영수증이다
창을 열자 비릿한 흙냄새와 함께 설익은 바람이 들이닥친다. 세상은 온통 분홍과 연두로 분칠 하며 생(生)의 환희를 노래하지만, 역설적으로 봄은 내게 가장 잔인한 감각을 깨우는 계절이다. 겨울 내내 동면하듯 마비되었던 신경들이 녹아내리는 대지와 함께 꿈틀거리며 살아나기 때문이다.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순의 몸짓은 경이롭기보다 처절하다. 저 여린 것들이 딱딱한 지표면을 머리로 들이받으며 겪었을 골절의 고통을 생각하면, 봄은 축제가 아니라 거대한 해산의 진통이다.
나의 봄도 늘 그랬다. 겨우내 두꺼운 외투 속에 숨겨두었던 초라한 실루엣이 얇아진 옷차림 위로 드러날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앙상하게 말라 있었는지 실감한다. 겨우내 무감각하게 견뎠던 고독이 봄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와 충돌할 때, 가슴 한복판에는 형용할 수 없는 균열이 생긴다. 아프다. 하지만 이 통증이야말로 내가 아직 화석이 되지 않았다는, 여전히 뜨거운 피가 도는 생명체라는 가장 확실한 증언이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을 지탱해 온 것은 안락한 봄볕이 아니라, 그 볕을 시샘하며 몰아치던 꽃샘추위였다. 첫 직장에서 밀려나 막막했던 그해 3월, 뺨을 때리던 차가운 봄바람은 나를 주저앉게 만드는 대신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살아야 한다"는 의지는 거창한 포부가 아니라, 추위에 떨며 마시는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의 온기에서, 그리고 그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의 가벼운 화상 자국 같은 통증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고통을 지워야 할 흉터라고 말하지만, 나는 흉터 없는 삶을 믿지 않는다. 흉터가 없다는 것은 한 번도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방증일 뿐이다. 내 몸의 구석구석에 남은 자국들은 내가 그 계절들을 건너왔다는 훈장이다. 무리한 작업으로 시큰거리는 손목, 밤새 뒤척이다 얻은 목의 뻐근함, 그리고 누군가를 지독히 그리워하다 덧나버린 마음의 상처들. 이 모든 통점(痛點)들이 좌표가 되어 비로소 '나'라는 인간의 지도를 완성한다.
이제 나는 고통을 찬양하지도, 그렇다고 저주하지도 않는다. 고통은 그저 생(生)이 내지르는 비명일 뿐이다. 꽃이 피기 위해 꽃받침이 찢어져야 하듯, 존재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통증이 수반된다.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는 평온이 아니라 정지된 죽음이다. 내가 오늘 아침 눈을 뜨며 찌뿌듯한 어깨의 통증을 느끼는 것, 그것은 내가 여전히 세상과 마찰하며 소모되고 있다는, 즉 살아있다는 가장 명백한 영수증이다.
창밖의 목련 꽃잎이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하얀 살점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프게 들린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 가만히 주먹을 쥐어본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가느다란 통증이 전해온다. 그래, 아프다. 고로 나는 오늘도 이 찬란하고도 잔인한 봄날을 무사히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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